취준생에게도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취직이 됐었다.
아무도 말해도 모를 곳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됐었다.
원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 엄청나게 기뻐했지만 주위에 소문내기가 조심스러웠고 출근해서 조금 다녀본 후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채용되고 출근까지 남은 시간이 있어서 신나게 출근 전까지 무얼 할까 고민했었다.
내가 취직된 데는 아주 작은 곳이었기에 거의 상사와 1:1 근무였다.
첫 번째 당황은 출근 전 주말에 일을 주면서 시작됐다.
물론 합격 통보를 하며 그 부분에 대해 얘기가 됐으니까... 그 일은 했다.
그 외에 다른 미션 하나는 내가 모르는 부분이기에 출근 후에 가르쳐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여하튼 그걸 해내지 못한 나에게 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고 약간 위축됐었다.
(후에 친구들에게 물었을 때 그걸 신입에게 시키는 거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약간 긴가민가했지만 뭐 그럴 수 있겠다 정도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다음 주 주말에 다시 그 일에 대한 수정과 새로운 일이 왔다.
두 번째로 새벽에 업무 메일을 받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는 예전에 아르바이트로(정직원까지 시켜주겠다고 했던) 대표와 일대일 근무를 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저시급도 식대도 받지 못하면서 정말 사생활도 없이 현대판 노비에 걸맞은 난방, 냉방이 전혀 없는 공간에서 최악의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했었다.
일은 좋았지만 환경과 대표는 나를 못살게 굴었다.
이 때 일이 힘들다기보다 사람이 힘들다는 말을 실감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알바생이 아니라 거의 개인 수행비서쯤 되는 계급이었던 거 같다.
그 사람은 알바생의 입장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아마 머리 털나고 단 한 번도 생각 안 했을 사람이다.
무엇보다 너무나 잘난 나머지 돈 주고 부리는 사람 입장 생각해 볼 필요도 관심도 없는 태도를 절절 뿜어냈다.
상식 밖의 일들도 백 퍼센트 철저히 자기 입장에서만 행동했기에 가능했다.
내가 퇴근해도 문자를 했고 자기가 생각나는 지시사항은 새벽에도 문자를 보냈다.
나는 그렇게 태평하게 업무 시간 외엔 상사의 연락을 씹을만한 위인도 아니었기 때문에 시키는 일을 안 하면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업무 시간외에도 그냥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알바였기 때문에 나에게 수시로 사람 없을 때 내 일정 상관없이 나오라고 하는 것조차 스트레스였다.
막말로 돈이라도 주던가 최저시급도 못 받고 대표의 노예 대우를 견디는 걸 할 수가 없었고 하기가 싫었다.
그때 생각한 건 밥 주고, 내가 일하는 시간에 대한 존중이 좀 되어야 할만하겠다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아마도 그때 노이로제가 생긴 거 같지만) 2-3년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왠지 그때랑 너무 비슷했다.
대표와 일대일, 그리고 알바생을 대하는 듯한 그 태도
주말에 나는 내 약속이 있다. 업무지시는 주말 새벽쯤 왔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새벽에 밤을 새워서 하는 방법뿐이었다. 그걸 다 하고 퀭하게 아침을 맞았다.
주위에 직장인들에게 물어봤다. 정말 이렇게 견디는 일이어야 하는 게 맞냐고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이번에 신입으로 들어가서 이도 저도 아니게 1년 이내로 버티다 나오면 나는 신입의 나이를 지나고 만다. 최소 2-3년을 버텨야 경력을 쌓을 수 있는데 시작부터 너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일이 남으면 야근이라도 해서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칼퇴에 대한 욕심 같은 건 애초에 없었는데...
뭔가 휴가를 쓰면서도 계속 연락을 받고 주말에도 재택근무를 하는 미래가 그려지니까 한숨이 나왔다.
내가 일을 하면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면 일을 하면서 지켜져야 할 권리는 원래 없는 건가.
친구들은 명쾌하게 말했다.
"그걸 견딜 만큼의 돈을 주면 하게 돼"
근데 사실 내가 들어간 곳은 돈도 권리도 아무것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났다. 최저임금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입사 전에 이렇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사람이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만 앞으로 합의를 하면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연락을 했다.
어쨌든 헛된 희망도 희망이니까 잘 합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는 근무시간 정해진 부분 내에서 업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어쨌든 채용된 입장의 니가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요구할만한 상황이냐는 대답이 돌아왔고 언제 누가 마감 주말에 하래? 네가 주말에 한 거잖아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를 대체할 사람쯤은 얼마든지 있었다.
취준생은 을의 을이니까
그때 완벽하게 얻어맞은 느낌으로 나는 이 사람과는 일할 수 없겠구나 알았다.
앞으로 일할 때도 내가 내입장에서 무언가를 말해봤자 완벽히 을의 입장에서 참아야 하고 대화가 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인지했다.
상대도 그렇게 느꼈는지 그럴 거면 나오지 말라고 했다.
통보당했지만 사실은 그전에 내가 그만뒀고 뛰쳐나왔다.
아무리 취직 못한다고 취준생한테 조건 보지 말고 아무 데나 취직하라고 말해도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눈이 높아서 높은 연봉, 쾌적한 환경을 바란 게 아니라
앞으로 몇 년을 일해야 하는 직장에 있어서, 정말 못 견디게 싫은 한두 개 정도는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은 나에게 정말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이라 그렇게 하기 싫었고 상대방은 거기에 대해 고용주라는 정당성을 지녔는지 당당했다.
그 일에 대한 미칠듯한 열정으로 모든 걸 다 참거나, 그걸 다 견딜 정도의 돈으로 커버가 되면 좋은데
나에게 이곳은 양쪽 다 아니었다.
마지막에 나에게 넌 정말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이런다는 얘길 들었다.
(경력자라면 이걸 다 참아내는지 난 좀 의문스럽다. 그래서 아직도 이게 왜 사회생활인지 이해가 전혀 안되지만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사는 사람이구나 했다.)
나에게 너는 네가 뭐라고 입장만 말하냐고 했지만 어쨌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친구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다고 했다.
나는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싶다.
소중하게 다뤄주는 것까진 바라지 않는데 대체 되는 부품 말고 그냥 한 명의 직원이고 싶다.
그럼 안 맞는 거니까 일 안 하는 게 맞았다.
이미 관둔 마당에 그곳을 비난하거나 나쁜 말을 쓸 것도 아니라 어떻게 글로 쓰면 좋을까 고민했지만 그냥 이건 내가 취직하면서 겪은 내 취준일기니까 철저하게 내 입장에서 썼다.
관두니까 관두기 전까지는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무려 출근 전부터)
관두고 나니 엄청나게 개운했다. 물론 이따금 폭풍같은 눈물을 견뎌내야했다.
그러면서 자괴감이 몰려오긴 했다.
출근 전에 퇴사라니 내가 너무 못 버틴 건가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취직을 기다렸을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
그래도 직장은 내가 다니는 곳이니까... 결국 내가 결정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