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니까 시작할 수 있었다.
결국 퇴사를 했다.
퇴사까지의 엄청나게 많은 빡침과... 사연이 있지만
아직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까지는 더 시간이 필요하다.
여하튼 좋지 않게 퇴사를 했지만 퇴사를 하고 난 지금은 개운하다.
장기 백수생활을 끝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딜 들어가든지 마지막까지 버티자고 생각했다.
정말 나는 할 수 있는 최선까지 버텼고
주변의 인정을 받으며(그래 그만해도 돼) 끝냈다.
입사를 했지만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 진건 회사라는 어떤 공간에 소속됐다는 안정감 하나뿐이었다.
그 어떤 만족감도 없었다.
나는 사실 엄청나게 열악한 분야를 하고 싶었다.
박봉에 아주 영세한 규모밖에 없는 분야였다.
그리고 희망하던 끝에 발을 담갔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건 절망뿐이었다.
알기 쉽게 대학에 비교하자면,
나는 학교 하나 안 보고 무조건 가고 싶은 학과만을 바라보고 재수, 삼수, 사수를 해서
간신히 어디 산골짜기 아무도 모르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단지 내가 원하는 학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데 학교장은 또라이었고 학교 운영 따위엔 관심도 없고 등록금으로 자기 사리사욕 채우는 인간이었고
학교는 꼴통 그 자체였다. 다들 그냥 돈 내면서 4년 다녔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고
학교가 이상하다는 것을 모른 채 순응하고 좌절되어있어서 개선의 여지라곤 1도 없다는 걸 알았다.
어디 가서 남들이 아무도 모르는 학교라는 건 알고 있었다. 오히려 학과만 찾던 나한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들어간 학과조차 만족하지 못하고 현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학교(회사)를 보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학과보다 이젠 학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학교장으로 운영되는 회사가 아니라 학교가 정상적인 곳으로.
사람마다 가치를 두는 게 다르지만,
나는 그 좁은 바닥과 온갖 그 나물의 그 밥과 거기서 거기인 업계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물론 좋은 총장이 정상적으로 학교를 운영했다면 나도 영세함을 참으며 있었겠지만
지금은 솔직히 그 학과엔 발도 붙이기 싫을 만큼 정 떨어지고 현실을 직시해버렸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만족도 할 수 있다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는 걸,
열정으로 참아내라기엔 너무나 미친놈이 많다는 걸 데어보고서야 알았다.
남들이 초봉 높은 직업을 선택해라, 안정적인 기업을 가라, 들어가서 부서 이동 노리고 일단 회사 보고 가라
그런 말들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뛰어들어서 내가 겪고 나서야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시간낭비고 어떻게 보면 참 교훈을 얻었다.
나는 남들 말을 잘 안 듣는다.(귀는 얇지만)
그래서 아마 내가 해보지도 않고 포기했으면 평생 동안 원망하고 아쉬워했을 거 같다.
내가 해봤고, 이젠 알았고, 지금은 조금 지쳤다.
아예 그 학과를 포기했냐 한다면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언제나 2 지망 3 지망이 있으니까 나는 조금 돌아갈 생각이다.
이전에 아주 장기적인 백수 때는 그냥 막연히 불안했다.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방향도 모르겠고 그냥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만 싶어서 발버둥 쳤다.
지금은 오히려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끝나고 나니까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취직 준비를 하면서 공부를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더 하고 싶었고 미련이 있었던 공부에 대해서.
아무 데나 빨리 들어갔으면 이 시간이 끝났으면이 아니라
지금은 천천히 오랫동안 있을 수 있는 곳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훨씬 어려워진 건 사실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정말 다른 이유 하나도 없이
돈 때문에 다녔다.
딱 하루, 월급날을 위해서
받았고 미친 듯이 썼고 텅 비었다.
한 달 한 달을 그렇게 버텼다.
그래서 빈털터리가 되고 시간이 많아진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을 쓰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