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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끽 Jul 19. 2021

강아지 산책과 알아차림

아침 출근 셔틀을 기다리느라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나는 늘 첫 번째에서 5번째 이내로 도착하는데, 내 뒤에도 10명쯤 줄이 이어져 있다.

그 길은 강변북로로 바로 빠지는 초입이라 우리 버스 말고는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한창 공사 중인 옆 건물에서 일하는 노동자, 간혹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 더 가끔은 운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오늘은 귀엽게도 어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금방 지나갔으면 내 시선도 짧게 끝났겠지만 이상하게 그 강아지는 줄 서 있는 우리를 구경하듯이 적당한 거리에서 털썩하고 앉았다. 바로 옆에 화분이나 전봇대도 없는 넓은 인도 한 가운데서. 응가나 쉬가 마려운 것 같고. 사람이 소파에 기대어 앉듯이 배를 살짝 보이며 엉덩이로 그렇게 털썩하고 앉았다.



에헤라~ 이놈, 생긴 건 작고 귀여운 하얀 강아지건만 알고 보면 할아버지쯤 되는 개가 아닐까. 할아버지까진 아니더라도 그 눈빛에선 최소 중년의 그것이 느껴졌다.

산책을 시키던 아주머니도 당황하셨는지, '얘가 왜 이래.'하며 목줄을 아주 약하게 스을적 당겼는데 개는 꿈적하지 않았다. 멀뚱멀뚱 줄 서 있는 인간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동물원의 동물들도 이런 기분일까. 나는 출근하느라 생존을 위해 줄을 서고 있는데, 이걸 구경하는 얘는 뭐랄까... 기분이 묘했다.


아주머니도 10여 명의 출근줄 옆에서 당황스러우셨을 거다. 그런데도 개를 재촉하진 않았다. 다만 '얘가 왜 이러지' 정도일까. 몇 분이 지나고 개가 슬쩍 한발짝 한발짝 엉덩이를 털며 뒤뚱한다. 목줄이 걸리지 않도록 그에 맞춰 또 살짝씩 움직여 주었다.



그 미세한 줄의 흐름 위에 아주 기분 좋은 가벼운 리듬이 있다. 개는 앞으로 나아가려 킁킁하다가 별안간 자기가 왔던 길로 휙 방향을 틀었다. 스텝이 꼬일 만도한데 아주머니는 다시 그 개의 스텝을 예의주시하며 적당한 텐션으로 줄을 가볍게 움직인다. 개의 미세한 움직임과 예상 못 한 방향 전환까지 단번에 알아차리고 그 리듬에 맞춰준다. 목줄과 개, 개와 아주머니. 목줄과 내 손의 텐션, 너무 늘어나지도 팽팽하지도 않게 조율하는 그것.



반려견이 없는 나이지만 얼마 전 지인의 강아지를 함께 산책시키며 그 손맛을 느낀 적이 있다. 처음엔 도통 얘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도 모르겠고 서로 당기기만하니 어떻게 힘 조절을 해야 할지 몰랐다. 수없는 밀당 끝에 어느 정도의 텐션을 찾기까지는 끝없이 그 개를 살펴보는 게 필요했다.



아주머니도 그렇지 않을까. 얘의 미묘한 움직임도, 나아가 감정까지. 세심한 주의로 바로 알아차리는 것.

요가 수업에서 처음 들었던 말. 어색한 말인데 곧 그렇게 하게 된다.



'알아차림'



요가에선 내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알아차리는데, 강아지와 산책에서는 강아지를 알아차리는 거구나. 엄마들도 아기를 알아차리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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