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Well-Dying’!
그렇다. 좀 잘 죽자는 거다. 잘 죽자고? 잘 죽는 게 뭔데?
어느 때부터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무더기로 몰려온다. 사람들은 일주일만 누워있다가 잠자듯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상점에서 물건을 사듯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이냐 말이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고,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는데도 회복하지 못하고 죽음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이때부터가 문제이다. 자식 된 도리, 부모 입장, 치료하는 의사로서 마지막 힘까지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배를 당하고 만다. 그래서 스스로 호흡을 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목구멍을 절개하고 호스를 삽입하여 기계의 힘으로 호흡하게 만들어 생명을 연장시킨다. 이게 어디 사람의 꼴인가.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 흉측한 모습까지 연출해 가면서 저승으로 가는 길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온몸이 완전히 무너져 기계의 힘을 견디지 못할 때까지 그 억지의 시간과 맞서야 한다.
늙는다는 것은 익어가는 것이라고 한다지만, 그게 말하기 좋은 거지 사실은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라는 걸 다 알고 있다. 그러면서 그렇게 말을 돌려 보는 거지만 그렇다고 어디 죽음이 피할 수 있는 거냐 말이다. 그래서 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죽는 것도 ‘잘 죽는’ 것이 있다고? 그렇다. 말하자면 좀 폼나게 죽자는 거다. 치료가 되고,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목구멍 깊이 관을 삽입하여 억지로 호흡을 하도록 하면서 목숨만 연장시켜야 할 것인가.
연명의료행위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하고, 회복 가능성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부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체외 생명 유지술, 수혈, 혈압 상승제 투여 등의 일곱 가지 의료 행위를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일곱 가지 의료 행위를 해서 회복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이러한 의료행위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면? 그래도 시행해야 할까.
스스로 죽게 놓아두면 안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2018년에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 시행되면서 환자 스스로 연명의료 행위를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그러나 연명치료 거부(존엄사)는 가능하지만, 안락사 즉 조력 존엄사(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가망이 없다고 판단될 때 주사 등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는 금지되어 있다. 2022년 6월에 ‘조력 존엄사법’이 국회에 발의되었는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중요한 것은 이 법안에 60대 이상의 찬성률이 86%로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좀 죽게 해 주면 좋겠다.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통증을 견디는 것이 죽음 자체보다 더 무섭다고 한다. 진통제를 쓰다가 안 되면, 마약 성분의 진통제를 쓰게 되고, 점점 강도가 높아지면 사람을 못 알아보고, 헛소리를 하게 된다. 자꾸만 강해지는 진통제는 결국 깊은 잠에 빠지게 만든다. 그렇게 누워있다가 죽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앞에서 말한 7가지의 연명의료행위를 중단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사전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가 그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이 건강했을 때 미리 연명의료행위를 거부하겠다고 신청하는 것이고, 연명의료계획서는 치료를 하던 의사와 환자, 가족이 협의하여 사후에 7가지의 연명의료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가능하게 된 연명의료결정법은 2009년 5월 21일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제정되었다. 당시 대법원은 ‘의식의 회복 가능성을 상실하고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르렀다면, 연명치료가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게 된다. 사망 단계에 진입한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기관에서 작성할 수 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에 작성할 수 있는 기관이 제시되어 있다. 내가 사는 오산시는 건강보험공단 오산지사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전문 상담사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해주고 작성과정을 도와준다. 설명을 듣고 두 번의 서명만 하면 즉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나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정식으로 등록되었다는 문자를 보내준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노인들만 작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9세부터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제 우리는 식물인간이 될지 모를 일이다. 언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의식도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자식들에게 엄청난 짐을 실어 줄 것인지 알 수 없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의미 없는 생명 연장은 하지 않아야 한다.
아내와 같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나오는데 상담사 분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본인들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큰 짐을 덜어 주었습니다. 앞으로 더 건강 관리 잘하시고 행복한 생활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보험관리공단을 나오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무엇인가 개운한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