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을 봤다. 폭설이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한파를 몰아치던 주말, 극우 유튜브들이 좌빨 영화라고 큰소리치자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거두어들였다는 그 '서울의 봄'을 기어이 봤다. 그리고 치솟는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랬을까. 정말 그랬을까.
권력에 눈이 멀었던 그 천인공로할 전두환은 말할 것도 없으니 그렇다고 하자. 이마에 그 찬란한 별을 달고 반란의 총을 들었던 장성들도 권력에 눈이 멀어서 그랬다고 하자.
그런데 전두환의 반란을 진압하겠다고 나섰던 그 많은 별들은 그렇게 무능할 수가 있었을까. 별을 두 개, 세 개, 네 개씩 달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감고 있었다는 말인가. 전두환의 속셈을 정말 몰랐단 말인가. 그래서 전두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대화를 해보면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하나회라는 사조직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렇게 무능하게 자신의 부하에게 그렇게 능멸을 당할 정도로 그 별들은 다 똥별이었다는 말인가. 그들이 제대로 판단하고, 줏대 있게 행동했다면,,,,,,,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오로지 끓어오르는 분노만 부여안고 영화관을 나왔다.
그날, 12월 12일, 그 치가 떨리도록 부끄러운 밤이 지나는 동안, 비무장지대는 참 고요했다. 광화문에 탱크가 진입하고, 전방 사단의 병력을 빼돌려 권력을 움켜쥐려는 천인공로할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그때 전방에서 군복을 입고 있었던 나는 전쟁대기 상태로 전투화 신고 쪽잠을 자고 있었지만, 철책은 고요했다. 후방의 국민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땀 흘려 일하며 이 땅에 피어날 민주주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의 봄은 꽝꽝 얼어붙고 있는데도.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국민들이 이마에 달아준 별을 무기로 삼아 그들은 친인공노할 일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의 봄은 군홧발에 짓밟혀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통한의 아픔을 잉태하고 있었다.
분노는 스크린을 박차고 영화관을 뛰쳐나왔다. 하늘에서 불을 뿜어냈고, 땅에서 온몸으로 뒹굴며 분노는 무섭게 번져갔다. 세상에서 세상으로, 도시에서 도시로 뛰어넘었으나 분노는 분노로 그쳤다. 그나마 어떤 지역에서는 피를 쏟아냈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흔적도 없이 가라앉아 버렸다. 그리고 모두 다 망각했다.
저벅거리는 군홧발 소리를 듣지 못했고, 헬기에서 총을 쏘아대는, 분노에 가득 찬 국민들을 향에 총을 난사하는 그들을 대통령으로 받들었고, 국회의원에 앉혔다. 자기 손가락으로 붓두껍을 찍으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영화 '서울의 봄'보다 더 분노를 일으킨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고 말하는 그들의 후예들과 그들을 맹신하는 사람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 무섭다.
서울에는 봄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