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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Mar 16. 2024

6화 그렇소. 나는 스스로 죽었소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칼끝에서 바람이 일었다. 천반산 깃대봉에서 산자락을 달려 내린 시월의 바람은 구량천을 건너 죽도에 들어설 때쯤은 제법 날카롭고 뾰족해졌다.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나뭇가지마다 한 맺힌 울음소리를 내다 걸었고, 죽도 서실書室 앞마당에 이르러서는 기어이 먼지를 끌어 모아 회오리를 일으켰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거세게 휘감아 오르는 바람기둥 앞에서 여립은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


여립은 진안 현감 민인백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눈길로.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칼을 들고 있었으나, 칼을 든 손은 떨리고 있었다. 여립은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다시 거센 바람이 몰려들었다. 한림대에서 세상을 논하던 선비들의 힘이 실린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몰려 내려온 듯, 가을의 바람은 쇠꼬챙이 같은 꼿꼿함을 세우고 있었다. 그 바람 속에서 여립은 대동의 세상을 보았다.


여립은 홍문관 수찬의 자리를 미련 없이 버렸다. 동인東人은 무엇이고, 서인西人은 무엇인가. 왕은 핏줄로 이어지고, 그 아래서 빌붙어 횡행하는 관리들은 몫을 위해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으니, 죽어나는 것은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세상은 어수선했고, 결국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높고 높이 달린 과일이었다.


선조는 매섭게 몰아부쳤다. 스승을 배신한 형서邢恕(송나라 때의 유명한 학자 정이천의 제자로서 스승을 배신한 악한 인간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라고 몰아세웠다. 서인이었을 때 이끌어 준 이이가 죽은 후 그를 배신하고 동인으로 옮겨 갔다는 것이다.

동인과 서인은 물과 불처럼 상극이었다. 서로를 내팽개치며 대립하고, 반목하고 백안시하며 갈등했다. 여립은 이이와 맞섰다.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고 상대방을 짐승 취급할 것까지는 없지 않으냐고 대거리했다. 이이는 고개를 돌렸고, 선조는 그를 내쳤다.


대동의 세상은 꼭 이루어져야 했다. 너나없이 어깨를 겯고 어우러져 흥겹게 사는 대동의 세상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어울리는데 신분이 있을 수 없고, 살아가는데 지위에 따른 차별이 없어야 한다. 그런 대동의 세상은 꼭 열려야 한다.


여립은 처가가 있는 금구로 낙향했다. 싸리재 너머 제비산帝妃山 남쪽 자락에 터를 잡고 조용히 세상을 들여다봤다. 하늘의 흐름을 살펴봤고, 땅의 기운을 헤쳐봤다. 그는 탄식했다. 하늘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땅의 기운이 솟구치지 않았다.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책을 든 선비가 있었고, 풀무를 든 대장장이가 있었고, 괭이를 든 농부가 있었다. 승려가 있었고, 백정이 있었고, 봇짐을 짊어진 장사꾼이 있었다. 그들이 꿈꾸고 있는 것은 하나였다. 모두가 어우러져 덩실덩실 살아가는 세상. 대동의 세상이었다.

대동계는 온 나라를 향해 몸집을 불렸고, 주먹을 단련하고 무예를 수련하여 힘을 키웠다. 전주부윤 남언경의 부탁으로 손죽도에 쳐들어온 왜구를 일격에 섬멸하였다. 그들은 분기탱천하였으며, 하늘이라도 뛰어오를 기세였다. 금방이라도 대동의 세상은 열릴 듯했다. 여립이 택한 죽도 서실은 함성의 도가니였으며, 천반산 한림대에는 수많은 유생들이 모여들었다.


천하는 주인이 없는 공물이어야 하고, 누구든지 임금으로 섬길 수 있는 세상. 그것이야말로 여립이 꿈꾸고 있는 대동의 세상이었다.


그러나 때가 아니었다. 황해도에서 반역이라고 고변을 했고, 선조의 체포령은 즉각 발령되었다. 여립은 단신으로 제비산에 올랐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절을 했다. '저를 바쳐 대동 세상을 지키겠습니다.'


여립은 대동계를 해산한다고 말했다. 대동계원들에게 조선 팔도로 흩어지라고 했다. 흩어져 백성들 속으로 파고들어 대동사상을 전파하라고 했다. '필생금대동必生禁大同'이라 쓴 쪽지를 쥐어 주며 살아서 대동을 금하라고 했다. '필사활대동必死活大同'이 아니었다. 대동의 사상이 백성들의 마음으로 파고들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스스로 대동의 세상을 열어갈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신체가 갈가리 찢기어 온 세상에 내걸렸을 때,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불길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대동의 세상은 그렇게 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립은 조용히 제비산을 떠나 죽도로 갔다. 아들 옥남과 대동계원 둘을 데리고. 평화롭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변에는 단풍놀이를 가는 거라고 했다. 사실은 죽으러 가면서. 자신들과 주고받은 서찰들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실로 많은 고심苦心이 있었다. 많은 사람의 죽음이 필요하였다. 대동의 세상을 위해서는. 그들의 죽음이 세상에 회자되면서 사람들은 대동의 세상을 꿈꾸게 될 것이다. 지금 칼을 들어 한양으로 몰려가는 것은 설익은 풋과일을 따는 것에 불과하다. 대동의 세상은 대동계원들이 여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개돼지처럼 짓눌려 살아가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펼쳐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배운 사람들의 죽음이 필요한 것이다. 갓을 쓴 선비들의 피를 토하는 절규가 필요했다. 조선은 관료들의 세상이기에, 관료들이 대동의 세상을 펼치려 했다는 것을 죽음으로써 백성들에게 알려야 한다. 관료들이 한 명이라도 더 죽어야 그만큼 대동의 세상은 빨리 열릴 것이다. 그래서 여립은 자신의 죽도행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같은 이유로 그간 선비들과 주고받은 서찰들을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현감의 칼날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일부러 빈틈을 보였을 때, 자신이 뜻한 대로 칼을 들어준 현감이 고마웠다. 장기를 뚫고 들어오는 칼날의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이제 갈기갈기 찢겨 온 세상에 널려질 것이다.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역도의 우두머리라고 세찬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악독하게.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은 자신왜 죽어갔는지 알게 될 것이다. 대동 세상이 무엇인지 깨달을 것이다. 비난은 분노로 바뀔 것이다. 분노는 한겨울의 폭설처럼 쌓일 것이고, 뜨거운 여름날의 햇볕처럼 불타오를 것이다.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은 분명 변해갈 것이다. 그 흐름과 변화 위에서 그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여립이 되어 갈 것이다. 전라도에서, 경상도에서, 충청도에서, 황해도에서, 그리고 한양도성에서 그들은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대동의 세상을 펼치게 될 것이다.

여립은 자신이 역모가 아니라고 해명하는 대신에 스스로 죽는 것에 대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언제인지 모를 훗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대동의 세상은 반드시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임금으로 섬길 수 있는 대동의 세상이 반드시 열릴 것이다. 오늘, 자신과 많은 선비들의 죽음으로써.


여립은 현감의 칼끝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기꺼이.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요한복음 12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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