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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뒷산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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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Aug 25. 2024

3화  '너무나 많은 여름이' 있었다.

수컷매미의 사랑노래와

AI가 그려낸 수컷 매미, 울음까지도 그렸을까.


뒷산을 걸었다. 그 거대하던 폭염도 어디쯤인가는 실금이라도 가고 있는 듯 조금 꺾인 듯한 느낌이 든다. 나무 그늘이 두껍게 내린 길을 따라 걷다가 큰 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가을이면  토실토실한 열매를 무수히 쏟아놓아 짐승들을 먹여 살리는 도토리나무, 곧 참나무 아래.


민주지산을 오르다가 선배한테 얻어들은 바에 의하면, 참나무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갈참나무는 가을 늦게까지 잎이 남아있어서 가을의 참나무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잎자루가 길고, 잎에 파도 모양의 톱니가 있고, 뒷면에 하얀 털이 있다고 한다. 신갈나무는 옛날에 짚신 바닥에 깔고 다녀서 그렇게 불렸고, 졸참나무는 잎이나 열매가 아주 작아서 붙은 이름이며,  나무껍질에 골이 파여 골참나무라고 불리다가 굴참나무가 되었다거나, 잎이 가장 커서 떡을 싸두었다고 하는 떡갈나무까지 선배는 참나무학 개론을 질펀하게 펼쳐냈다. 그리고 걸으면서 나에게 관찰을 통한 확인 습을 시켰으나 청맹과니인 나는 지금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 그냥 도토리나무이고, 참나무다.


잎이 커서 떡갈나무든, 신발에 깔고 다녀서 신갈나무든 지금은 짙은 그늘에 앉아 햇볕을 피하는 게 급선무이다. 꿩 잡는 게 매가 아닐까.


느닷없이 매미 소리가 숲을 가득 채운다. 사실은 숲에 들어서기 전부터 매미는 울고 있었지만, 이제야 느끼는 거다.


맴맴맴맴맴맴맴맴 쓰르르르르르르르 맴


꼭 이렇게 들렸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덮어버린다는 매미의 울음소리. 내가 떡갈나무  아래 앉아있는지, 졸참나무  아래 앉아있는지보다 지금 매미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에 젖어든다.


알에서 부화하여 땅에 떨어지자마자  천적들을  피해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절반 정도는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다는 매미. 어렵게 땅속으로 들어가 빛도 없는 음습한 곳에서 나무뿌리의 수액을 훔쳐 먹으며 7년을 버티는 매미.


저들의 삶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디서부터 들여다봐야 할까. 7년을 버텨내고 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매미. 온 힘을 다해 나무를 기어올라 제 몸을 감싸고 있는 허물을 벗어내고 날개를 펼치는 우화羽化를 하여 성충이 되는 매미. 나무그늘 아래 몸을 짤싹 붙이고 온몸으로 울어 짝을 부르는 매미. 배의 근육을 당겨 암컷을 향한 구애의 노래를 부른다는 수컷 매미.


그 울음소리는 도시의 생활소음을 뚫어버리고, 깊은 숲을 자신들의 울음으로 가득 채운다. 저 울음 속에 어둠 속에서 보낸 7년의 세월이 있고, 종족을 보존하려는 간절함이 가득하다. 겨우 2주 살 거면서 왜 나왔느냐고 묻지는 말자. 무더운 여름날 시끄럽게 울어댄다고 미워하지는 말자. 대를 잇겠다는 일념으로 뱃가죽의 근육을 비틀어가며 큰 소리로 짝을 부르는 수컷의 간절함. 받아주어야 하리라.


ㅡ매미 소리가 큰걸 보니 올해는 풍년이  것이네.

ㅡ아무렴 대풍이 들어야지.


운동기구를 흔들고 있는 노인들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더위의 목덜미를 흔들고 있다. 매미가 크게 울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사실일까. 아니면 어떻겠는가. 지금 매미가 울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니까. 수컷 매미가 큰 소리로 짝을 부르고 있는 것이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니까. 어둠 속 인고의 세월이 아니라, 두 날개를 가진, 그래도 조금은 폼나는 모습으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너무나 많은 여름이 내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거니까.


여름은 곧 등을 돌릴 게다. 숱한 이야기를 남겨놓으며 여름은 가을을 데려올 게다. 그러면 저 수컷 매미는 의미 있게 준비한 울음을 다 울게 까. 이 울음으로 7년을 다독거린 자신의 꿈을 이루어낼까.



우는 손

                   유홍준


오동나무 숲을 지나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 쥔

아이의 손사위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를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다.



유홍준의 시를 통해 매미는 나무에서 내 어깨로, 내 손으로 내려앉았다. 매미의 울음. 그것을 움켜쥐는 사람. 욕심일까. 탐욕일까. 매미는 울음으로, 온몸으로 우는 울음으로 사랑을 피우고, 그렇게 생을 이어간다. 다만 사람만이 자기만의 눈으로 매미의 울음을 재단하고, 치부한다.



숲길은 어느 때나 익숙한 모습 그대로다. 봄이 있었고, 봄이 오기 전에는 두툼한 겨울을 덮고 있었다. 폭염으로 가득 찼던 숲 속의 나무들은 이제 자기들의 색깔을 흘려낼 것이다.  숲에 가을이 농익어 갈 무렵, 아니 눈보라라도 몰아치는 겨울 땅속에서, 저 애틋한 사랑의 연출자 수컷 매미의 유충은 또 하나의 7년을 시작할 것이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한 숲길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숲은 언제나의 모습으로 계절을 담고 있을 거고.


'너무나 많은 여름이' 있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과 함께. 너무나 많은 수컷 매미의 울음이 있었고, 그만큼의 사랑이 있었다. 짧은. 2주 간의  짧은 사랑. 7년을 다독여 세상으로 나와 날개를 단 수컷 매미의 2주, 또는 7년의 사랑이. 숲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한 숲길에서.



사랑은 지금의 내 마음과 몸으로 하는 일이지, 과거나 미래의 꿈과 마음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지금의 몸과 마음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게으를 수도 있는, 지금의 몸과 마음으로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어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ㅡ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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