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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뒷산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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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Jul 15. 2024

2화 내가 걷고 싶은 맨발 걸음은

MS사 AI  Copilot이 그려준 그림


숲세권이라던가. 집에서 몇 걸음 걸으면 산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사 올 때에는 매일 걷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살고 보니까 일주일에 한 번 가기도 쉽지 않다.



숲길은 참 좋은데 산이 너무 낮은 까닭이다. 겨우 160 미터 높이이고, 그것도 완만하게 이어지고 보니, 호흡이나 종아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말하자면 재미없다.



산을 재미로 다니냐고 하겠지만, 기실 그런 점도 많다. 산길이 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산길을 걷는 느낌은 분명 다르다. 그래서 걸어보지 않은 산을 찾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산에 대한 갈증이 끓어오를 때에는 어느 때고 뒷산으로 간다. 오늘도 해가 기울어 갈 무렵에 뒷산으로 들어간다. 눈을 감고 걸어도 될 정도로 익숙한 길이지만, 낮은 산이라고 소홀한 걸음은 걷지 않는다. 제대로 입고, 신고 나갔다.


부드러운 흙길인지라 맨발로 걷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가히 맨발 걷기 열풍이다.


약수터 부근에 있는 의자에서 신발끈을 묶는데 어떤 여성분이 불쑥 묻는다.

- 남들은 다 벗는데 댁은 신발끈을 묶어요? 맨발로 걸으면 좋다는데.

- 아, 예, 뭐 저는 그냥 걸으려고요.

자세히 보니 내 연배로 보인다.

- 나는 발바닥이 아파서 못 걸어요. 걸으면 좋다는데.

- 그래요? 전 그냥 신발 신고 걸으려고요.



꼭대기 쪽으로 올라가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차디찬 겨울에도 걷는다는 사람을 TV에서 보았다. 운동기구가 있는 펑퍼짐한 꼭대기는 맨발의 왕국이었다.

"굳이 걷지 않아도 맨발로 땅을 밟고만 있어도 효과가 있다는데?"

"그렇다고 하더라고. 뭐 어싱이라든가. 발바닥을 자극하는 점도 있지만, 내 몸과 땅이 접촉했을 때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기에 좋다는 거야."

"그래서  맨발로 땅을 딛고만 있어도 좋다는 거로구만."

운동기구를 하나씩 붙들고 서 있는 노인들이 어디선가 들었다는 말을 내놓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 산에 오르든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건강을 위해가 아닐까.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오르고, 신선한 아침에 숲의 정갈함을 따라 오르기도 한다. 해가 기울어가는 저물녘의 숲이야기가 궁금하여 오르는 사람도 있다. 언제 어떻게 오르든 모든 것은 건강으로 수렴한다. 단순히 오르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지키는 일이 되겠지만, 사람들은 이 숲길에서 맨발로 걷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맨발로 걸어보고 싶었다. 신발을 벗어 들었다. 발을 내딛는데 발바닥이 따끔따끔하다. 부드러운 흙이 있는 곳만 골라서 딛는데도 작은 돌부스러기나  큰 모래알이 밟히는 까닭이다. 참고 걸어본다.

발바닥으로 몰려오는 아픔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더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아프다기보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ㅡ 이래서 맨발로 걷는구나. 이거 할만하네. 자주 걸어야겠다.

혼자서 중얼거린다. 기분이 좋다.



ㅡ 뭐 하고 있어?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자주 만나는 친구다. 구리에 살고 있어도 일부러 만나러 간다. 우리가 자주 가는 음식점이 하남에 있는데 전철로도 2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도 간다. 식당 여주인도 어쩌다 동갑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되었다. 강서구에 사는 친구와 같이 만나 넷이서 시시덕거린 이야기에 살을 붙여 [늙은이들의 술판]이라는 것을 썼다. 그 식당도 곧 문을 닫는다.

ㅡ뭐 그냥 뒷산을 걷고 있지.

ㅡ 맨발로 걸어 봐. 그게 좋다고 하던데.

ㅡ너나 걸어라. 남들이 좋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나는 싫어.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태연히 말했다.

ㅡ아우야. 거짓말 말아라. 어디서 형을 속이려 들어.

ㅡ뭐래! 등산화 챙겨 신고 잘 걷고 있는데.

친구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산악자전거 훈련장 근처를 지나오는데 벨이 울린다. 친구가 카톡으로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받으면 거짓말이 들통날 것이고, 안 받으면 우선은 넘기겠지만, 앞으로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ㅡ신이시여, 어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일단 받았다.

ㅡ너 지금 바로 발을 보여봐.

ㅡ아니, 형님 갑자기 발은 왜요?

일단 형님 어쩌고 하면서 너스레를 떨며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는 등산화를  신었다.

완전 범죄가 아닌가. 그리고 발을 보여줬다.

ㅡ어떠냐, 이래도 못 믿어?

치사한 친구 같으니라고. 어디서 만나면 형이라고 부르지 마.

ㅡ너야말로 나 보면 그냥 지나가. 알았냐?

어떠냐. 이 친구야. 셈통이다.

ㅡ너 지금 신발 벗고 발바닥을 보여봐. 신발 벗는 것부터 다 보여랏.

ㅡ형님, 제가 잘못했어요. 그저 죽여주시옵소서.

나는 친구가 보여주는 화면을 보고 깔깔 웃었다.

친구도 맨발 걷기를 하고 있었다.

 


그 후로 한 달  정도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매일은 못해도 1주일에 세 번 정도는 3~40분 정도 걷는데 발바닥 각질이 다 사라졌다. 웬만한 길은 걸을 만하다. 


숲세권에서 사는 것은 여러 가지로 좋다. 늙어서는 더욱 그렇다. 병원 가까이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숲 가까이 사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내가 걸어야 할 맨발 걸음이 숲길에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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