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본질本質 -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살면서 꼭 생각해봤으면 하는 여덟 개의 가치를 내놓는 박웅현의 두 번째 가치는 본질本質이다. 본질을 말하겠다던 그는 불쑥 피카소의 그림부터 던져 놓는다. <The Bull>.
나는 시작부터 무너진다. 완전히. 책을 놓고 그림을 들여다본다. 왼쪽 상단의 그림에서 우측 하단의 그림으로 가는 과정에서 소는 사라진다. 단순한 선만 남은 이것은 소일까?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에르메스HERMES라는 브랜드가 실은 지면 광고 카피라고 한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던져 놓으면 어쩌라는 거야. 아, 그렇구나. 있어 보이게 하려는 좀 치졸한 술책이로구나. 박웅현. 이 광고쟁이는 광고에서 하던 방법으로 강연을 하고 책을 쓰는 거로구나. 그렇다면 그만 읽어야지. 자존自尊을 가지라며? 현재의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했잖아? Be Yourself! 너 자신이 되라며 나같이 알량한 독자들을 모두 다 빨아들였잖아. 좀 투덜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었다.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다? 자세하게 그려놓은 소에서 단순한 선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소는 소이다? 그렇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 본질本質! 그렇다면 먼저 말한 자존自尊도 변해서는 안될 본질이겠구나. 박웅현, 이 사람 사람을 흔들어 놓는 힘이 있는 사람이네.
조선시대에 살던 사람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뚝 떨어졌다면 어떨까? 질주하는 자동차,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스스로 밥을 지어내는 전기밥솥, 스마트 TV, 컴퓨터.... 어쩌면 그는 숨을 쉬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기가 막혀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가 정신을 차리고 눈여겨본다면 희한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들처럼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어머니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갓난아이들. 그는 말할 것이다. 뭐 똑같잖아. 세상은 변했어도 사람은 사람이로군.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변하는 세상에서도 우리가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본질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기준점을 내 안에 두고 세상을 향하는 자존自尊에서부터 시작한다고. 그렇다면 자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다 본질인 것일까? 공부의 본질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사회에 나가서 경쟁력이 될 실력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을 본질로 삼아서는 안된다. 훗날 나의 삶에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내가 움켜쥐어야 할 본질인 것이다. 그렇다면 본질은 자기 판단이다.
내가 아는 국문과 선배는 시험을 보다가도 갑자기 필이 꽂히면 시험지를 뒤집어 뒷면에 소설을 쓰는 것이 일쑤였다. 그는 학점을 받지 못했고, 후배들보다 늦게 졸업했다. 그러나 선배는 졸업하기 전에 자신이 꿈꾸던 소설가로 등단했다. 졸업보다는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데 방점을 찍은 선배의 본질은 바로 그것이었다.
이쯤 해서 나는 깨달았다. 박웅현이 시작부터 피카소의 그림을 던진 이유를. 제대로 된 본질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빼내야 한다는 것을.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절대 변하지 않는 것. 박웅현이 피카소의 그림을 던져놓은 이유는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소의 표정, 자세, 울룩불룩한 근육은 변하는 것이지만 소의 형태는 변하지 않는다.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담겨 있는 소의 모습말이다.
본질이라는 챕터를 읽고 본질이라는 삶의 가치를 지켜내겠다고 마음먹은 독자들에게 박웅현이 쥐어주는 덕목은 무엇일까? 피카소의 그림 <The Bull>,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라는 에르메스 HERMES의 광고 카피, 자신이 걸어왔던 걸음을 통해 본질이 무엇인가를 또렷하게 형상화했던 그가 말하는 결론. 그가 원하는 독자들의 자세.
"본질을 발견하려는 노력과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포기할 줄 아는 용기, 그리고 자기를 믿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타를 만든다고 했던 클래식 기타 회사는 다 망했고, 음을 만든다고 했던 클래식 기타 회사는 모두 살아남았다."
본질을 지켜내야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뿐인 '나'라는 자아가 곧게 설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