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우리는 밥심으로 산다
새벽부터 길을 나서는 것은 걸어야 할 걸음이 많은 까닭이다.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은 고현저수지 둑에 올라갔을 때, 알 수 없는 파장이 일었다. 밤새 수면의 시간 속에서 곱게곱게 다려놓았던 감정이 어느 순간 튀어 올랐다.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마음을 파닥거리게 하는 것은.
나흘째 외씨버선길을 걷고 있다. 주왕산을 넘어온 이래 마을길을 따라 오랫동안 걸었다.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마을길을. 오늘 걷는 길도 대부분 마을을 따라 걷게 된다. 그 길에서 마을 사람들은 세상을 만났고, 그 길을 따라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과 함께 돌아왔을 게다. 말하자면 마을 사람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그 길에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만 흐릿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몽환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미흡하지만 수면을 따라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두드리기에는 충분했다. 사람을 향한 그리움은 청송의 끝마을 진시골에 지나면서도,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영양군 지경리 마을 보호수 아래 앉아 있을 때에도 나를 흔들었다. 마을에도, 마을 길가에도 마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 적막이 감돌고, 사과밭이 짙은 안개에 싸이고 있는데도 마을 분들은 한 번도 내다보지 않았다.
시량 2리 버스 정류장에서 진시골로 들어선다. 무서울 만큼 고요한 길이다. 지경리 고개를 넘어 석보면에 이를 때까지 걸어도 걸어도 안개를 벗어나지 못했다. 농로인지 마을길인지 모를, 자동차도 다닐 정도로 넓은 길에는 그저 적막만 겹겹이 쌓여 있다. 지경리 고개를 넘어서면 청송을 벗어나 영양땅이다. 제법 넓은 밭을 지닌 지경마을에는 사과밭과 고추밭이 대부분이다. 누군가는 길가에 멋진 황토집을 짓고 살고 있다. 마을 주차장인 듯 보이는 넓은 공터에 앉아 배낭을 풀어놓고 아침을 먹었다.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면서 우걱우걱 빵을 먹었지만 내 목소리는 힘없이 안갯속으로 빨려 들고 말았다.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안개 짙은 아침에 갑자기 서글펐다.
ㅡ어쩔 거야. 이렇게 마을에 사람이 없으니.
ㅡ노인들이 일철이 지났으니 나오지 않는 거지.
ㅡ이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이 넓은 밭을 다 어쩔 거냐고.
나흘 째 걷고 있는 동안 참 많은 마을로 들어가 걸었지만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예전에 지리산 둘레길, 진안고원길을 걸을 때에는 대문가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노인들이나, 산자락 밭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 짊어지고 다니던 막걸리도 한 사발씩 나누어 마시고 사탕이며, 초콜릿을 나눠 드리며 자주 연락도 안 하는 자식들 흉도 많이 봤었는데, 도대체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다.
석보면 소재지를 지나며 이리저리 한눈을 팔다가 보건지소 부근에서 길을 놓쳤다. 넘어진 길에 쉬어 간다고 그 조용한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녀보았다. 제법 넓은 땅에 자리 잡은 석보면. 아늑하다는 느낌으로 돌아다녀보는데,
ㅡ어디 길을 찾으시나요?
한약방 간판 앞에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노인분이 묻는다. 정감이 확 풍겨왔다. 그랬다. 시인 백석이 바로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
백석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을 보였다.
의원은 여래 같은 상을 하고 관공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를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ㅡ어디서 오셨나요?
ㅡ네, 경기도에서 왔는데요.
ㅡ외씨버선길?
ㅡ네.
ㅡ밥은 드셨나요?
ㅡ이제 먹어야죠.
밥을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밥심으로 사는 거라고 했다.
ㅡ4길을 장계향디미방길리라고 하는 것도 다 밥심을 이야기하는 거죠. 디미방이라는 말은 '음식 맛을 아는 방법'이란 뜻이지요.
'디미방'은 '知味方'의 한글 표기이다. 당시에는 구개음화가 되지 않아서 '지'를 '디'로 표기한 것이다. 검색해 보니 안동에서 석보면 이시명이라는 분에게 시집온 장계향이라는 분이 후손들에게 음식 만드는 방법을 전하기 위해 한글로 적어 놓은 책으로 책표지에 적혀 있는 제목은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이다. '규곤(閨壼)'은 여성들이 거처하는 공간인 '안방과 안뜰'을 뜻하고, '시의방(是議方)'은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이라는 뜻이니 '규곤시의방'은 '부녀자에게 필요한 것을 올바르게 풀이한 처방문' 정도의 뜻이 된다.
飮食知味方음식지미방이라는 제목은 책 안에 기록된 제목인 권수제(卷首題)이며 뜻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다.
ㅡ걷는 것도 사는 것도 다 먹고 나서 그 힘으로 하는 것이지요. 저 아래로 내려가면 '음식디미방'이란 이름을 내걸고 밥을 파는 곳이 있으니 드시고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사실 걸어올 때 보았던 곳이다. 외씨버선길을 걷겠다고 집을 나설 때 호화판 먹거리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나가는 길에서 보고 만나는 사람들의 삶과 이어지는 걸음을 걷고, 그 마음으로 그분들이 보여주는 식습관대로 먹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섰던 터라 마을에서 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식당이 있다면 그들과 어우러져 한 끼 밥을 먹어보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음식디미방을 지나쳐 왔던 것이다.
옥계리를 지나고서도 마을길은 골짜기 속으로 파고들었다. 좌우로 펼쳐진 밭을 보면 예전에는 이 골짜기 안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그들은 모두 도회지로 나갔으리라.
옥계저수지 아래 비닐하우스 앞 길가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는 세 명의 사람들. 필리핀 사람들이다.
ㅡ안녕하세요. 밥 먹고 가요.
웃어 보이는 얼굴에 당당함이 묻어났다. 지나가는 사람을 밥으로 불러들이는 마음. 겨우 배달 도시락을 하나씩 들고 있으면서 밥 먹고 가라는 사람들. 낯선 외국 사람들.
ㅡ같이 먹어도 돼요?
ㅡ네, 여기 앉아요.
배낭을 털었다. 어제 영양 명보제과에서 사 온 단팥빵 3개, 간식으로 먹으려던 누룽지 4봉. 에너지 바 2개, 초콜릿 3개. 내가 가진 전부였다.
그걸 들고 포도밭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들 곁에 앉았다.
ㅡ돈 많이 벌었어요?
ㅡ벌었죠.
ㅡ집에는 언제 가요?
ㅡ돈 더 벌어서 가야 해요.
ㅡ돈 벌려면 밥 많이 먹어요. 밥을 먹어야 힘이 나죠.
내가 내놓은 빵을 집어 들던 친구가 웃음 섞인 말을 늘어놓았다.
ㅡ한국에선 밥심으로 살아야 해요.
ㅡ그럼요. 다 먹자고 일하는 거니까요.
ㅡ맞아요. 먹자고 하는 일, 맞아요. 돈 벌어야 돌아가서 처자식들 배불리 먹이죠.
그렇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처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나를 던져 왔다. 한 번도 나를 위해 살지 못했고, 밥심으로, 밥심으로만 살아왔다.
옥계저수지를 지나 힘겹게 올랐던 산길, 굽이굽이 힘들게 걸었던 임도, 작지만 깨끗하게 단장한 입암면의 거리에서 나는 나를 받쳐주었던 밥심을 생각했다.
4길 장계향 디미방길 걷기를 위한 TIP
* 선바위 관광지 주차장(무료)에 주차하고 영양에서 진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진보터미널에서 하차하여 지곡행 버스로 환승하여 시량 2리 송이곡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버스 정류장이 4길 시작점이다.
* 대부분 마을길로 이어지다가 옥계지에서 잠깐 산길을 걷다가 임도를 따라 임압면사무소로 내려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