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마음으로 걷는 걸음
영양에서 진보로 가는 군내버스를 타고 선바위 관광지에서 내렸다. 선바위 관광지의 아침은 쓸쓸했다. 제법 큰 몸집으로 서 있는 관광호텔이 문을 닫고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는 까닭도 있을 테지만,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임에 틀림없다. 텅 비어버린 곳. 그게 한 때는 관광호텔까지 거느렸던 '관광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곳이라면 오늘 하루 여행을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참 허퉁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외씨버선길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적어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고, 듣고 싶었다. 오늘도 나의 걸음은 무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하였다.
석문교를 건너 산촌생활박물관으로 가는 숲길은 혼자 걷는다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배웠던 이병기 님의 '아차산'이라는 시조가 생각났다.
고개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시인은 호젓한 고개를 넘어가면서도 휘휘한 줄 모르겠다고 했는데 '빨간 딸기', '패랭이꽃'이 길동무를 하여 그랬을까. 그러나 내가 걷는 아침 숲길도 가을을 펼치고 있는 나무들과 들꽃들이 이따금씩 얼굴을 내밀었지만 나는 자꾸만 쓸쓸함을 넘나들었다.
영양산촌생활체험마을은 이제 막 열린 아침에 싸여 있다. 누군가가 타고 왔을 차량 1대가 쓸쓸히 아침을 맞고 있다. 댓돌 위에는 밤을 지새운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나뭇가지는 축축하게 젖은 채로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을 휘어잡고 있는 것. 고요이다.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가 깊게 가라앉은 고요를 흔들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한밤을 보낸 사람들은 이 적막과 고요에 몸을 내맡겨 보고 싶었으리라.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는 깊은 산골에서 솟아나는 고요는 얼마나 되는 세월의 켜가 쌓였을까. 한라산으로 스며든 빗물은 30년을 침묵하고, 단련하고, 정화하여 맑고 신선한 물이 된다고 하는데 오늘 산촌생활체험마을에 쌓인 고요는 얼마의 시간을 축적하고 있을까.
감천교를 건넜지만 우리를 데리고 온 길은 말없이 앞서 간다. 분명 마을이라는 느낌이 흐르고 있었지만 집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떠올려 준 것은 아직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집이었다. 마당에는 이미 풀밭이었고, 지붕도 반쯤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한때는 넉넉한 살림이었을 것 같았다. 집채가 크고 마당은 넓었다. '사람이 살았었구나.'
낯선 사람들의 삶이었지만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웃고 울며 살아온 이야기, 부대끼며 복닥복닥 이어왔을 식구들의 숨소리가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게 분명할 텐데 지나가는 걸음으로만 걷은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농촌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 앞에서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걸을만한 길을 꿈꾸며 여행을 시작했다. 이기적이었다. 새카맣게 불타버린 산등성이를 넘어가며 그래도 온 힘을 다하여 푸른 잎을 피워 올린 참나무를 바라보며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를 구별하려고 했다. 화마를 견디어 낸 힘의 근원을 찾아보는 것보다, 숲이 복원되는 하나의 과정에 비중을 두어 받아들이는 것보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 중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만 바라보며 걸었다. 마을이 제 모습을 잃어버리고, 싱싱한 곡물이 자라야 할 기름진 옥토가 묵정밭으로 메말라가고 있는 아픔 앞에서 팍팍한 다리만 두드리며 아름다운 길만 생각했고, 걸을만한 길만 걷고 싶어 했다.
감천마을로 들어서면서 느리게 걸었다. 외씨버선길이 아니어도 걷는 사람들을 위한 둘레길은 일반적으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며 이어간다. 느릿느릿 들판을 가르며 건너가는 길이거나, 헐떡거리는 걸음으로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길이거나, 꼬불꼬불 강물을 따라 비틀거리며 이어지는 길이거나 사람과 사람을 이어놓는 길이다. 그렇다면 오늘 걸어가는 오일도 시인의 길은 감천마을에 감돌고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31번 국도를 따라 진막골로 넘기고, 반변천 굽이도는 물줄기를 거슬러 영양읍으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따라 나는 걷고 있고, 그 이야기 위에 알량한 마음을 적셔보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걸어도 혼자 걷는 게 아니다.
감천마을. 오일도 시공원의 빗돌에 기대어 앉았다. 책을 들고 앉아 있는 시인의 어깨에 머물고 있는 햇볕을 만져 본다. 따스하다. 일제 강점기를 살아갔던 시인의 가슴이 어찌 잔잔했으리. '차디찬 서리의 독배毒杯'를 들고 '무자비한 바람'의 '칼질'을 당해야 했던 시인은, 시인의 분노는 '성역의 새 아침'을, '흰 정토淨土'를 꿈꾸었으나 해방의 기쁨도 채 누리기 전에 간경화로 눈을 감았다.
시인의 마을이라서가 아니라 마을이 드러내놓는 남다른 질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걸어온 마을을 다시 한번 더듬어 봤다. 송소고택을 비롯한 양반들의 고택이 즐비하던 청송의 덕천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그려낸 소설가 김주영의 문학 세계를 담고 있는 진보면 월전 마을, 현재 전하는 최초의 한글 음식 조리서 <음식디미방(표지에는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이라고 쓰여 있다)을 지었다는 장계향의 석보면 두들마을, 그리고 입구에서부터 아름다운 숲을 안고 있는 청송의 감곡마을. 모두가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자리 잡은 터 위로 불어오는 바람의 결이 다르고, 마을 사람들이 엮어내는 이야기의 각이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을을 이어걷다보면 알량한 걸음이지만 만져지는 울림이 있다. 이 울림으로 찍어가는 하나의 방점은 걸음이 아니라 마음이다.
감천 마을을 지나 31번 국도를 따라 걷다가 감천 1교를 건너면 포장도로를 버리고 반변천을 따라 걷는다. 활시위처럼 휘돌아가는 하천을 따라가다가 들깨를 털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보았다. 초콜릿과 사탕을 한 움큼을 내놓으며 그것을 핑계 삼아 곁에 앉는다.
ㅡ혼자서 일하시네요.
ㅡ영감은 힘들어서 못한다카니 내 혼자 하는 기라.
할머니의 온몸에 고생의 흔적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열일곱에 시집와 그 많은 시댁 식구 다 걷어 먹이며 눈물과 핏물로 일곱 남매를 다 가르쳐서 내보냈다고 한다. 이제는 걷는 것도 힘에 부치지만 자식들이 좋은 집 짓고 잘 사는 것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했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지만 같이 밥 먹어 줄 남편이 있어 그 힘으로 세상살이를 이어간다고 했다.
삶은 여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걷어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힘겨워서 눈물로 걸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행'이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들여다보면 패키지여행처럼 마음 편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삶이 여행이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어느 작은 영역일지라도 여행처럼 설레던 때는 있지 않을까. 혼자서 들깨를 털고 있던 할머니도 새롭게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감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홀로 앉아 깨를 털고 있는 지금, 집에서 골골대고 있는 남편과 저녁 밥상을 마주하고 앉을 생각이 여행의 설렘은 아닐까.
여행이 얼마만큼의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그 여행이 길을 걸어 채워진다면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걸어야 할 것 같다. 발로 걸으면 피곤하기만 길도 마음으로 걸을 때, 걸음걸음마다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지 않을까.
진막골에서 표대산 자락을 넘어가는 길은 땀을 조금 흘려야 했다. 그러나 저기 저 발아래로 목소리를 높여 흘러가는 반변천의 이야기를 듣는 걸음은 상쾌하고 비옥하다. 이럴 때마다 마음은 영양가 높은 도파민이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혹은 기대감이 생길 때 분비되어 행동을 유도한다는 도파민. 그래서 성취를 앞두고 설렘을 느끼거나, 새로운 자극에 끌리게 하는 도파민.
거기서 여행은 시작한다.
5길 오일도 시인의 길을 위한 TIP
* 영양버스터미널 부근 이면 도로에 주차하고 영양버스터미널에서 진보행 버스(06:00, 06:45, 08:10,08:30, 09:00~)를 타고 선바위 관광지에서 하차하여 걷기를 시작한다.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
* 중간에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없으므로 사전에 물과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