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길 최시형 동학길

08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by 힘날세상

이곡교를 떠난 길을 따라 걷는다. 마을 사람들이 먹고살만한 밭뙈기를 '김태미들'이라는 이름표를 달아 마을 입구에 내려놓고는 몇몇 집이 흩어진 듯 모여 있는 마을 가운데를 비집고 들어선다. 컹컹 짖어대는 개 한 마리쯤이야 아랑곳하지 않고 길 한 갈래를 쭉 갈라서 일월면 사무소로 보내고 갑자기 쏟아질 듯 달려 내려온 산자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다.


좁은 골짜기를 따라 힘들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반변천으로 내려보내며 훗날 낙동강의 이름을 얻으리라고 다독인다. 바삐 걷던 걸음을 멈추어 토닥토닥 밭을 만들고 마을에서부터 기어이 따라오던 두어 집을 떨구어 놓는다. 이제 정말 산으로 들어갈 걸음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쥐고 있던 것 다 내려놓고 홀로 쓸쓸한 걸음을 걸으려는 것이다. 깊은 숲길을 이어 도계2리로 내려가는 길은 무등길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산등성이를 넘어가면서도 지친 기색 하나 없고, 홀로 걸으면서도 외로운 표정 한번 짓지 않는다.


길은 무정하지만 날카롭지는 않고, 길은 멈추지 않는 대신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몸뚱이로 사람의 이야기를 실어 여기로 저기로 나눠준다. 홀로 걷다가도 둘로 나누어지기도 하고, 다른 길을 받아들여 한 몸이 된다. 그렇게 길은 이야기를 모으고 나눈다.


도계2리 마을 정자에 앉아 내려앉는 햇볕을 받아 다리 쉼을 한다. 한여름에는 마을회관 에어컨 바람을 버리고 부채 하나 들고 나앉을 노인네들도 더러 있을 것 같았다. 정자 앞을 졸졸 흐르는 개울도 여름에는 힘도 세어지고 목소리도 제법 키울 것 같았다. 모정茅亭이라기에는 세련된 모습이다. 유모차 같은 것을 밀며 겨우 걸어가는 할머니는 정자에 다가서지도 못하고 유모차에 달린 의자를 펼치고 길가에 앉아 한숨을 쉰다. 몇 걸음 걸어 쌓인 날숨을 한꺼번에 내뱉고 있다. 배낭에 넣어 다니는 초콜릿과 사탕을 한주먹 쥐어줬다. 그대로 받아 허리춤에 넣는다. 영감님을 생각하는 것일까.

ㅡ아들이 보고 싶은데 안 와.

ㅡ아들이 어디 살아요?

ㅡ몰라.


도계2리를 만들어낸 것은 딱 봐도 산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였다. 굽이치고 돌아 흐르다 보면 산자락을 파고들어 손바닥만큼의 평평한 땅을 내놓게 되고, 먹을 것을 찾아들어온 사람들은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땅을 파고 집을 지어 부지한 삶을 이어간다. 허리 굽혀 땅을 파서 가족을 먹여 살렸고, 한 삽이라도 더 파서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어느 날 허리를 펴고 보니 옆집이 생겼고, 마을을 이루었다. 도계 2리를 지나서 위로 올라갈수록 골짜기는 더 좁아졌고, 손가락처럼 갈라진 좁은 골짜기마다 한 집, 두 집 터를 잡았다.


안쓰러운 몰골로 홀로 앉아 있는 농가는 제법 넓은 밭을 지니고 있었으나 두꺼운 외로움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아무리 땅만 바라보고 산다고 해도, 들녘에서 어린 시절을 자랐고, 도회지에서 사람들 틈에서만 살다 보니 이렇게 깊은 산골의 삶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몇 집이 모여 마을회관을 세워 놓은 동네에서는 정겨움이 느껴졌었는데.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깊은 곳까지 불러들였을까.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


꼬불거리며 느릿하지만 어딘가 긴장감으로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우마차길은 오리리에서 웅크린 마음을 풀어놓는다. "오리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한 간판을 세워놓았으나 누구도 맞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육각정자만 골짜기로 몰려드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래도 둘러싼 산줄기들은 모두 납작 엎드려 순색의 파란 하늘을 활짝 펼쳐 놓았다. 오리리 사람들이 숨을 크게 들이쉴 수 있도록.


수비면에 사는 딸네집에 다녀온다는 아주머니를 육각정자 앞에서 만났다. 큰길에서 내려 2km 남짓 걸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ㅡ우리는 차도 없고.

ㅡ불편해서 어떻게 해요?

ㅡ사람 사는 게 다 그러지 않은교?

아주머니의 말에서 체념이라기보다는 달관의 느낌을 받았다.


오리리에서 외씨버선길은 임도를 따라 다시 힘겹게 산등성이를 넘어간다. 적막한 산길로 이어지는 이른바 최시형 동학길.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이 영양 일월산 골짜기에 숨어들어 동학을 전파하였다고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이름 붙인 최시형 동학길.


동학사상은 최제우가 창시한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라는 ‘시천주주侍天主呪’와 ‘후천개벽後天開闢’을 핵심으로, 신분·성별·연령·빈부 차별을 부정하는 평등과 인간 존엄을 강조한 사상이다. 최시형은 '시천주侍天主'를 천제를 마음으로 받는다는 '양천주養天主'로 받아들이게 되고, 3대 교주 손병희는 천도교를 창시하면서 '인내천人乃天', 즉 천제를 사람과 동격으로 받아들인다.


오늘날 동학이라면 가장 먼저 전봉준을 떠올리고, 그가 들어 올린 깃발에서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최시형은 최제우의 명예회복과 동학의 자유로운 포교활동을 보장받는데 중점을 두고 전봉준의 봉기에 참전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설득으로 결국에는 참전하였다.


행동의 방식은 차이가 있을지라도 동학의 궁극은 평등과 인간의 존엄이 아닐까.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서 홀로 집 짓고 살아가는 사람, 길가에 앉아 오지도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사람, 딸을 만나러 큰길까지 걸어서 나가는 사람, 도회지에 살면서 깊이 숨어 있는 산길을 걷겠다고 찾아오는 사람 모두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평등하고 자유롭게, 그리고 아름답게.


산등성이를 넘어온 외씨버선길은 문암리를 마을회관을 지나면 31번 국도와 나란히 이어진다. 좁은 개울가를 따라 이따금씩 지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아픈 다리를 두드리며 걷는다. 용화 1리에 외따롭게 자리 잡은 용화보건지소를 지나고 나서도 최시형동학길은 어떻게든 자동차도로를 피하려고 애쓴다. 개울을 따라 좁게 만들어낸 길을 한참 걸어야 한다. 지루하다고 느껴지고, 무릎은 당장 걸음을 멈추라고 퍼부을 즈음 일월자생화공원에 이른다.


산등성이를 넘어가지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 홀로 걸어야 하지만 먼저 걸어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든 남아 있을 길. 일월자생화공원 뒤쪽 고추밭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작은 삼층석탑. 용화동 삼층석탑. 신라 때부터 자리 잡았다는 작은 석탑에 담긴 소망은 그대로 동학의 정신일 게 분명하다. 근원이나 이력도 모르는 작은 석탑이나, 동학에 담긴 고귀한 믿음을 지키려고 했던 이름 없는 농투성이들, 골짜기 깊숙한 곳에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양 사람들, 누구든 이 길을 걸었고, 걸어갈 사람들을 관통하는 것이 행복이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