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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Aug 29. 2023

6화 더는 벨로미가 되지 않기로 한다.

아들을 위하여



TV 채널을 돌리는데 케케묵은 코미디 영화를 방영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상영하였던 조폭 관련 코미디 영화 ‘가문의 영광’이다. 한때 ‘가문의 ~’ 시리즈는 ‘가문의 영광, 위기, 부활’ 등 여러 편이 제작 발표되어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던 영화이다. 여수의 조폭 집안인 여수 장 씨의 형제들이 자신들이 갖지 못한 학력의 한을 풀기 위해 자신들의 막내 여동생과 서울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엘리트 청년과 결혼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내용이다.      


영화를 보다가 대학 연극반 시절 <벨로미> 역할을 했던 영국의 극작가 톰 존스 Tom Jones의 희곡 『철부지들 The Fantasticks』이 생각났다. 지금도 활발히 공연되고 있는 걸작이다.     


결혼 적령기의 아들(마트)과 딸(루이자)을 둔 허클비와 벨로미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아들과 딸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결혼시키기로 약속한다. 자식들은 부모의 의견에 무조건 반대로 행동한다고 믿고 높은 담을 쌓아 마트와 루이자가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자식들은 부모의 말에 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틀림없이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식들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아버지들은 전문 배우를 고용하여 루이자 납치극을 벌이고, 마트가 루이자를 구하게 하여 마트를 영웅으로 만들어 사돈을 맺자고 한다. 이들이 벌인 납치극은 성공을 거두었고, 마트와 루이자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아버지들이 꾸민 납치극으로 마트와 루이자의 사랑은 확인되었고, 아버지들은 결혼을 기대하지만, 아버지들이 벌인 납치극의 내막을 알고 난 자식들은 부모들과 대립하게 되고, 마트와 루이자는 부모 곁을 떠나 방랑하게 된다. 세상살이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두 사람은 다시 돌아와 아버지들과 만난다.      


20대 초반에 아버지 역할을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허클비를 연기했던 친구와 나는 우리 아버지들이 보여줬던 모든 일을 소환해 놓고 파고들었으나 우리는 아버지들이 되지 못했다. 결국, 제대로 된 허클비와 벨로미를 형상화하지 못하고 말았다. 70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다시 벨로미를 연기하라고 한다면 적어도 아버지의 속마음은 제대로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은 올해 서른여섯 살이다. 스물다섯 살 때부터 취업을 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다. 부모 된 나는 당연히 그때부터 결혼을 할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아들은 결혼의 ‘결’자도 꺼내지 못하게 하더니 서른다섯이 되면서부터는 결혼하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혼자 밥을 먹고 있다.      


다시 벨로미가 되어 ‘어설픈 납치극’이라도 한판 벌여야 할까, 중국의 어느 아버지처럼 등에 며느리를 구한다는 팻말이라도 달고 돌아다녀야 할까. 머릿속이 온통 아들의 결혼에 관한 생각뿐이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젊은 여성들을 보면서 이렇게 좋은 처자들이 많은데 어찌하여 아들 녀석은 자기 배필을 만나지 못하는지 통 알 수가 없다. 누가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젊은 여성들을 흘깃흘깃 바라보고 다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벨로미의 마음인 것이다.      


벨로미역을 맡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ㅡ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입니다. 한데 이 자식 놈들이란……. 전 무 아 니면 최소한 쑥갓을 심었다고 생각하는데, 아, 이건 아카시아 나무가 나온단 말이에요.     


그렇다. 자식들은 부모의 뜻대로 자라나지는 않는다. 어릴 때는 부모가 전부인 것처럼 따르지만 나이가 들면서 제 영역이 넓어질수록 부모 곁에서 멀어지게 되고, 급기야는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식들이다. 나도 그런 자식이었다. 그런데 내 자식이 내 말을 안 듣는다고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다행인 것은 서른다섯이 되면서부터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노력은 한다는 것이다. 자기 일에 치여 있으면서도 골프, 여행, 캠핑, 러닝 등의 취미생활을 놓지 않고, 그 바쁜 틈에서도 내가 마주 앉혀주는 여성분도 만나보고, 주변에서 물어다 주는 소개팅 자리에도 열심히 다니기는 하는데 어찌 마음이 통하는 여성분을 못 만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쪽이 좋으면 저쪽이 싫고, 저쪽이 좋으면 이쪽이 싫은 건 뭐란 말인가. 도대체 월하노인은 왜 이렇게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자라지 않은 벼 이삭을 빨리 자라라고 뽑아준다는 말로, 좋지 않은 방법으로 어떤 일을 자꾸 부추긴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에 아들에게 자꾸 결혼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바로 조장이 아닐까. 그렇다고 벨로미처럼 ‘허튼수작’을 부릴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아들의 인생은 아들의 것이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깊이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결혼은 하든 안 하든,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연금’이라는 아주 효성이 뛰어난 또 하나의 아들이 있어 풍족하지는 않지만 살아갈 만큼의 생활비를 매달 꼬박꼬박 주고 있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손주들 과잣값 정도는 쥐여 줄 만하다. 저는 저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부모 입장이 되고 보니 늘 자식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지만, 더 이상은 벨로미는 되지 말고, 그냥 지켜보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닐까. 자식들은 자라면서 전지전능한 것 같았던 아버지가 실은 별로 내세울 게 없는 필부 匹夫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부모들은 자식이 커가면서 똑똑해지고 자신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자신의 날갯짓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가문의 영광』에서나 『철부지들 The Fantasticks』에서나 부모들이 바라는 결혼은 잘 이루어진다.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영화와 연극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아들의 결혼도 그럴 것이다. 결혼이 이루어지는 과정, 그것이 짜릿한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는 벨로미가 되지 않기로 한다. 그냥 들여다보는 하나의 관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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