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눈빛이 빛난다. 버튼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매섭다. 화면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자세로 벌써 한 시간이 넘게 포켓몬 가오레 게임기 앞에 앉아 있다. 500원짜리 동전 3개를 넣고 신나게 버튼을 두드리다가 집에서 전용 가방에 가득 담아 온 네모난 칩을 두 개씩 번갈아 끼워가며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교환기에서 바꾼 동전을 한 주먹 쥐고 앉아 있는 나는 퍽이나 재미없다.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이 첫째이고, 또 하나는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손자에게 말을 붙일 수가 없는 탓이다. 새싹이 돋아나는 개울가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자치기나 땅따먹기를 하고, 굴렁쇠를 굴리며 뛰어다니는 것이 싫증이 나면 애꿎은 개구리를 잡아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그 꼼지락거리는 감촉을 즐기던 것이 어린 시절의 놀이였던 늙은이에게 포켓몬 가오레 게임은 다가오지 않았다. 두 시간 가까이 보내는 동안 손자와 나눈 대화는 없었다. 손자는 기계와 놀았고, 나는 폰을 열고 저장해 둔 수필을 읽었다.
손에 든 동전이 바닥이 나서야 일곱 살짜리 손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게임기 앞에서 물러났다. 가오레 칩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는 손자에게 물어봤다.
ㅡ 가오레 게임이 재미있어?
ㅡ 그럼요. 오성(五星)을 못 잡아서 아쉽기는 한데, 재미있기는 했어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오성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ㅡ 배고프지? 무얼 사 먹을까?
마트 식당가를 돌아다니며 적당한 먹거리를 찾아보았다. 육개장, 칼국수, 순두부 등은 손자가 싫다고 할 것 같았다. 수제버거 가게가 있어서 들어갔다.
게시해 놓은 상품 목록을 보면서 손자는 치킨버거와 소고기 왕 버거를 사자고 한다. 문제는 내가 이런 것을 사 먹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갑자기 대만 타이중에서 중국어를 몰라 주문과정에서 벌인 해프닝이 슬그머니 떠올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햄버거 가게에는 직원 두 사람이 근무하고 있었다. 별로 바쁜 것 같지도 않은데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서 주문하려고 하는데 “카드로 결제하실 분은 키오스크에서 주문하세요”라고 쓰여 있는 안내판을 가리킨다.
키오스크에서 좀 더듬거리면서 치킨버거와 소고기버기를 주문하고 카드로 결제를 했다. 영수증과 주문번호가 출력된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천장에 달린 모니터에 주문번호가 나오고 버거를 받아가라는 방송이 나온다. 얼른 가서 버거 두 개를 받아왔다. 햄버거를 허겁지겁 먹는 손자를 보다가 목이 막힐까 봐 걱정되어 물었더니, 손자는 주스를 마시겠다고 한다. 직원에게 음료를 달라고 했더니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라고 한다. 별로 할 일도 없으면서 손님이 원하는 주스를 꺼내주고, 돈을 받아가면 될 일이 아닌가.
요즘 세상은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이다.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숨이나 쉬며 흘러가는 세월의 수레바퀴를 바라볼 뿐이다. TV에서 쏟아지는 드라마는 배배 꼬아 놓아서 전개되는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젊은 연예인들이 여러 명이 둘러앉아 시시한 잡담 같은 것이나 주고받는 것만 틀어댄다. 방송에서 노인들은 시청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갈수록 노인들은 설 땅이 없어진다. 키오스크를 이용한 주문은 온몸으로 부끄러움을 뒤집어쓰면서 익혀두었다고 해도 아직도 어색하다.
서울숲에 갔을 때 일이다. 점심 식사를 먼저 하고 서울숲을 돌아보기로 했다. 사전에 알아둔 식당을 찾아 골목을 몇 바퀴 돌아다니다가 겨우 찾았다. 식당 앞에 대기하는 사람이 없어서 의기양양하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빈자리에 앉았는데 직원이 출입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기분이 상하려고 하는 그때,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가게 앞에 “테이블링”이라는 작은 모니터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ㅡ테이블링은 일종의 순번을 받는 앱입니다. 여기 패드를 이용하여 손님의 전화번호를 입력을 하면 손님이 입장하실 시간에 카톡으로 연락이 되는 시스템입니다. 어떤 가게는 전화 예약을 받지 않고 앱으로만 예약을 받는 곳도 많습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순발력이 늦은 늙은이로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 힘들고 어렵다. 이러한 추세는 엄청난 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기계화도 좋지만 서비스 업종에 사람이 사람을 맞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손님이 주문한 커피를 받아오고, 마시고 난 그릇을 반납해야 한다. 직원은 손님들이 이용하는 탁자 근처에 오지 않는다. ‘손님은 왕이다’는 말이 있었던 때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