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삼시 세끼’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명한 배우들이 시골에 있는 집을 빌려 놀면서 매일 세끼를 해 먹는 내용이다. 그들은 오직 세끼를 먹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저녁에 먹을 것을 고민한다. 식재료를 얻기 위해 땀을 흘리기도 하고, 바닷가에 가서 낚시를 하기도 한다. 하여튼 그들의 모든 행동은 세끼 식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워낙 뛰어난 배우들인지라 일거수일투족을 웃음으로 포장하여 시청자들은 그들이 식사 후에 어떻게 놀고 있는가, 매 끼니 밥을 짓는 과정과 그들이 어떤 메뉴로 식사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때로는 어린아이들처럼 놀고 있는 그들의 유치함을 즐겼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 총각이었는데, 참 재미있는 분이었다. 수업시간에 우리가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욕도 아주 가끔 사용하였는데 거리감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질문을 했다.
ㅡ눈을 감고 생각해 봐라. 너희들 살기 위해서 먹느냐, 아니면 먹기 위해서 사느냐?
우리는 먹는 것이 중요했지 선생님이 물어보신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던 까닭이었다.
지금 대답해 보라고 해도 사실 어려운 질문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며 물어본다면 있어 보이기 위해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 대답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사람이 꼭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일까. 고개를 돌려서 생각해 보면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닐까.
살기 위해서 먹는다면 그렇게 비싼 요리를 먹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몸에 좋은 영양소를 고려하여 채식 위주의 맛없는 식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식생활은 어떤가.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것들만 찾아 먹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볼 때 틀림없이 우리는 먹기 위해서 사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입맛이 없다는 말을 종종 한다. 배가 부른 까닭이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늘 배가 고팠다. 아니 하루 종일 배가 고팠다. 부엌으로 들어가 대바구니에 담아 놓은 보리밥에 식어빠진 된장을 넣고, 뒤꼍에 있는 밭에서 상추를 뜯어다가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손주들을 보면 고급진 간식에다 고기반찬이 넘쳐난다. 요즘 아이들은 배고픈 줄을 모르고 자란다. 비싼 음식점에서 고급 요리도 자주 먹는다.
요즘 세상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엥겔지수’라는 것이 있다. 독일의 통계학자 에른스트 엥겔(Ernst Engel)의 논문에서 유래한 말로, 일정 기간 가계 소비지출 총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로서, 가계의 생활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엥겔은 엥겔지수가 25% 이하이면 소득 최상위, 25~30%이면 상위, 30~50%이면 중위, 50~70%이면 하위, 70% 이상이면 극빈층이라고 정의했다. 극빈층은 돈을 벌어 오직 먹는 데만 앞장서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소득이 적다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생활비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은 넘을 것이다. 그만큼 잘 먹고사는 것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자꾸 줄어들고, 먹는 일은 늘어나다 보니 몸이 무겁고, 소위 성인병이라는 것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는 양은 줄이고, 질은 높이는 식습관을 보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먹는 것이 시답잖다. 매 끼니마다 배고파서 먹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침은 언제 먹었는지 모르겠다. 과일이나 한 조각 먹으면 그만이다. 점심은 일부러 한 공기는 먹으려고 하지만, 이것도 다 먹지는 못하는 때가 많다. 저녁은 적당히 배를 속이는 정도로 먹고 만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배가 고프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같이 모여서 먹는 자리라면 평소보다는 더 먹게 되지만,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
‘먹는 즐거움’이라고 하지만 늙어가면서 이 말은 멀어져 갔다. 이제는 먹기 위해서 살지는 않는다. 틀림없이 살기 위해서 먹고 있다. 그래도 가끔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난다. 참 고마운 일이다. 아직 입맛은 가라앉기는 했지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끔씩이지만 순댓국이 생각나고, 짜장면이 먹고 싶은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