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신작로新作路

마음을 이어주는

by 힘날세상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다. 커다란 트럭도 거침없이 교행할 수 있을 만큼 넓은 폭의 임도가 산굽이를 돌아가고 있다. 겨울이 제멋대로 그려놓은 도로에는 이파리를 다 떨구어 버린 나무들이 추레한 모습으로 빈손을 들고 우두커니 서 있다. 손톱만큼이나 남은 햇살은 산 그림자에 가려 황혼 녘의 붉은빛도 드러내지 못하고 숨을 할딱이고 있다. 골짜기를 파고 들어온 바람의 끝이 매섭다. 옷깃을 추켜세우다가 느닷없이 신작로를 보았다. 이제는 이름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신작로, 들판을 가로질러 일직선으로 뻗어 있던 어린 시절의 신작로가 눈앞에서 벌떡 일어서고 있었다.

동네 앞으로 넓고 반듯한 신작로가 있었다. 학교 가는 길과 반대쪽에 있었기에 학교가 끝난 후에 친구들과 신작로에 가서 놀았다. 몇 걸음을 뛰어야 건너갈 정도로 넓고, 동네 고샅에서는 보지 못했던 구경거리가 많은 신작로는 마을의 어린이들이 몰려가 시시덕거리며 자치기나 비석 치기를 하고 노는 놀이터였다. 하루가 지나가는 삶의 공간이었다. 이따금 무엇인가를 잔뜩 실은 트럭이 지나갔고, 수십 마리의 소 떼를 몰고 가는 소장수들도 지나가기도 했다. 입술을 붉게 칠하고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에 굽이 높은 뾰족구두를 신은 여자가 연두색 양산을 쓰고 지나갈 때는 알싸한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며 쳐다보았다. 걸음마다 등에 짊어진 북에서 둥둥 소리를 내던 화장품 장수 뒤를 따라다니며 그 걸음을 흉내 내고 돌아다녔다. 피리를 불고 장구를 치며 요란하게 분장을 한 악극단이 지나가던 날은 어른들까지 죄다 나와 어깨를 흔들어가며 빠져들었다. 신작로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신작로 위를 걸어 세상과 마음을 이었고, 신작로 위를 걸어가는 세월을 품고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보았던 대로, 신작로는 ‘넓은 길’ 또는 ‘반듯하게 이어지는 길‘을 말하는 줄만 알았다. 그리고 신작로 위로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라는 의미를 덧붙이기도 했다. 들판을 건너 아득히 보이는 산줄기를 향해 줄달음쳐 사라져 가는 버스를 바라보면서 신작로의 끝이 어딘지 궁금했고, 그 끝까지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버스가 헤집고 들어간 그 산을 넘어가 보고 싶었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어느 길이든 끝까지 걸어가면 서울로 갈 수 있고,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신작로는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가난에 눌려 중학교 진학을 못했던 친구들은 신작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갔다.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신작로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도회지에 나가보았다. 다른 세상을 보았다. 산굽이를 돌아서면서 사라졌던 신작로는 읍으로 들어서면서 수 갈래로 갈라졌고, 그 길마다 사람들이 가득가득 걸어 다녔다. 길가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상점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신작로 끝에는 더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신기하고 넓은 세상이.

버스를 타고 중학교를 다니면서 신작로가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새로 낸 길’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신작로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라는 것도 알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나갔던 친구들은 명절 때마다 반짝거리는 가죽 구두를 신고, 멋진 양복을 입고 버스에서 내렸다. 친구들은 여자처럼 뽀얀 얼굴이었고, 어른들처럼 머리를 길렀다. 어떤 친구는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기기도 했었다. 친구들은 모두 담배를 피웠다. 나는 친구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것들에 관해 신나게 이야기했다. 친구들이 서울역과 남대문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댈 때는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서울에 가고 싶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를 따라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사람은 공부를 해야 출세한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꿈꾸면서 공부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나는 가난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지 못했던 것은 가난 탓이 아니었다. 내가 너무 쉽게 꿈을 접어버린 탓이었다.


그렇게 나의 신작로는 뻗어나가지 못하고 산자락에 막혀 버렸다. 그때 서울로 나갔던 친구들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기도 하지만, 나는 그 넓고 넓다는 서울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말았다. 대롱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퇴직을 하고 나서 아이들 곁에서 살겠다는 핑계로 수도권으로 이사했다. 천안부터 이어지는 빌딩 숲을 보면서 들어선 수도권은 평생을 살았던 전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별천지였다. 이런 세상을 일찍부터 보았던 친구들이 명절 때마다 내 앞에서 서울 이야기를 늘어놓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든지 편안하게 갈 수 있는 버스가 줄을 이었고, 전철을 타면 서울 어느 곳이든 막힘없이 다닐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었다.

서울은 내가 보았던 신작로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4학년 담임 선생님 말씀대로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 세상으로 향하는 신작로가 항상 열려 있고, 그 신작로를 따라서 마음을 넓히고, 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산길이든, 들길이든, 넓은 길이든, 좁은 길이든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교감의 통로이다. 어느 길을 걸어도 하나의 걸음이고, 어떤 걸음으로 걸어도 또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길은 모두 다 ‘신작로’이다. 그 길은 인터넷으로 이어지고, 마음속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걷지 않아도 걸을 수 있는 막힘이 없는 신작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