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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Oct 07. 2023

13화 혼자서 놀 수 있어야 한다

결국은 혼자 남는다

 


책을 읽어보거나 강연을 들어보면, 늙을수록 친구가 많아야 하고, 또 할 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더러 책을 쓰라고 하고, 강연을 하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원론적인 것이니까 말이다.


 은퇴하기 전에는 아침에 출근하여 퇴근할 때까지 나의 의사보다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 움직였다. 조직의 일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계적인 흐름이었다. 그 흐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상황이 있고, 그 상황에서 인간관계가 얽히면서 세월의 톱니바퀴는 바쁘게 돌아간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 한 달을 보낸다. 심심하거나 무기력할 틈이 없다.


퇴직한 다음 날 아침, 아무것도 알 힐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적잖게 당황했고, 허무했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샤워를 하고, 외출복을 입고 서재로 갔다. 바른 자세로 앉아 책을 읽었다. 할 일이 있다고 몸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서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졌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TV에 몰입하는 일이 많아졌다. 같은 날 퇴직한 동료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여행을 다니기로 의기투합했다. 처음에는 1004 대교를 건너 서남해의 자은도로 박지도로 돌아다녔다. 일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만끽하면서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일 년쯤 지나면서 동료들과 매달 만나던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석 달을 만나지 못하게 되고, 여행 대신에 식사 한 끼 먹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일하겠다고 시니어클럽을 찾아가 일자리를 얻은 친구는 한 달 만에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공영주차장 관리 일을 하던 친구는 반년 만에 손사래를 치며 도망쳐 나왔다.


졸지에 객지로 이사하고 보니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같이 지내던 친구들 곁을 떠나온 것이 무엇인가 죄를 지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었다. 1년 정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를 덮고 있던 무거운 것들을 다 걷어가 버렸다. 나는 혼자 남았다.


늙을수록 혼자서 노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에게 다가서는 것보다는, 나에게서 떠나가는 것들이 훨씬 많다. 자식들이 그렇고, 손주들이 그렇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기들의 영역이 넓어지는 까닭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한 해가 갔다. 예전 같으면 다이어리를 사서 일 년 계획을 세우고 세운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루지 못한 것으로 인해 자책을 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올해에는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냥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로 했다. 산에 가고 싶으면 산으로 가고, 자고 싶으면 침대에서 종일 늘어져 잤다. 책을 읽고 싶었던 날에는 장편소설에 몸을 묻었다. 세상이 편했다.


아들이 연결해 준 ‘넷플릭스’에서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개그콘서트’를 되돌려 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노트북을 두드리며 글을 쓰기도 했다. 고3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보고, 혼자서 강의도 해보았다. 혼자서 노는 방법을 익혀가려는 행동이었다.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며 외로움이 담기는지 살펴보았다. 외롭지 않았다. 해방감이 들었다. 자유롭다는 생각이 기저에 두껍게 깔려 있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점심도 거른 채, 실컷 책을 읽고 나오면서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행복일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은퇴를 앞두고 해야 할 일은 전원생활을 위한 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다. 퇴직한 다음 날부터 몸을 던질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놀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는 힘을 단련하는 것이다. 머리를 쓰고, 몸을 움직이면서 혼자 놀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숲길이든 마을 길이든 서너 시간은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다리 힘을 길러야 한다.


늙어가면서 사람들은 내게서 떠나간다. 내 옆에 남는 것은 자식들이 아니라 배우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할 것일까.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배우자도 어느 순간 내 곁을 떠나고 말 것이다. 언제나 혼자라는 말이다. 혼자서 놀고, 혼자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곱게 늙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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