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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Sep 29. 2023

12화 손주들은 자란다

      

ㅡ할아버지, 오늘 마켓데이하는데 할아버지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사드릴게요.

학교에서 돌아온 손녀를 영어학원에 데려다주는데 내 손을 잡으며 명랑한 얼굴로 물어온다. 학원에서 그동안 받은 쿠폰을 이용하여 아이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가져와 팔고 사는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는 학습이다.

ㅡ그래? 무얼 사달라고 할까?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보이며 아이의 말을 받아준다.

ㅡ제가 힌트를 드릴게요. 노트도 있고, 색연필도 있어요. 그리고, 종이접기 세트도 있고, 보드게임도 있거든요. 어떤 게 좋아요?

손녀는 속사포를 쏘아댄다. 이때 무관심하면 안 된다. 아주 간절히 필요한 것처럼 응대해야 한다. 그게 손녀를 대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ㅡ다 좋은데, 할아버지는 채아가 골라서 사주면 좋겠는데.

ㅡ네, 좋아요. 제가 알아서 사다 드릴게요.     


손녀는 중국에서 유치원을 다니면서 유창하게 구사하던 중국어를 귀국한 지 한 달 정도 지나면서 남김없이 반납했다. 그리고 한글을 스스로 터득했다. 글자를 읽기 시작하니까 책 읽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책을 붙들고 살았다. 예쁜 인형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책만 사달라고 졸랐다. 덕분에 책 좀 사 날랐다.

ㅡ저는 세상에서 책 읽을 때가 제일 좋아요.

밥도 안 먹고 책에 묻혀 산다.      


나는 손녀 앞에 슬몃슬몃 책을 들이밀었다. 사자성어, 속담사전, 한국사, 그리스・로마 신화 등을 내밀며 독서의 방향을 끌어주려고 했다. 손녀는 블랙홀처럼 책을 빨아들였다. 흔한 남매, 엉덩이 탐정, 13층 나무집, 먼 나라 이웃 나라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당근 마켓에서 조달하기도 했고,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원하는 책을 읽게 했다. 도서관에서 마법 천자문을 보더니 중국 유치원에서 배웠던 한자(漢字)가 기억났는지 흥미를 보였다. 당근마켓에서 마법 천자문 전 권을 사주었는데 열심히 읽었다. 그 여세를 몰아 한자 8급 시험에 합격했고, 얼마 전에는 7급 시험에 합격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들이 학원에 다닌다고 말하며, 자기는 안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 것이 수영, 피아노, 영어 놀이터이다. 딸은 선행학습은 받아들일 수 없고, 영어 놀이터는 놀이 개념인데, 영어를 사용하여 노는 것이라서 보낸다고 했다. 손녀는 신나게 다닌다. 손녀의 꿈은 캐릭터 디자이너이다. 좋은 캐릭터를 탄생시키겠다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고, 만화의 그림을 유심히 본다. 동시를 한 편씩 필사해 보라고 했는데,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시켜도 안 한다고 한다.      


일곱 살 손자 녀석은 엉뚱하다. 기억력이 아주아주 뛰어날뿐더러, 상상력이 기발하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 애늙은이다. 여섯 살 때, 지 엄마가 여섯 살인데 지금도 얌전하지 못하냐고 하자, 이 녀석은 “엄마는 서른여덟 살인데도 잔소리를 하네” 이렇게 능글맞게 덤빈다.


종이접기를 하거나, 레고 만들기를 할 때 보면 어른도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을 만들어 낸다.      

ㅡ할아버지, 체스 한 판 해요.

어쩌다가 체스를 가르쳐 줬는데 이제는 체스 학원을 다니며 열심이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리며 공부 지옥으로 몰아넣지 않는 딸이 고맙다. 마음껏 뛰어놀고, 자기들이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게 한다. 블록을 가지고 놀면서도, 주제를 설정하고 그에 맞게 놀이를 하게 한다.


엉뚱한 상상력으로, 부드러운 친화력으로 살게 하려는 딸의 양육 방법이 좋다. 그래서 구김살 없이 자유롭게 커나가는 손주들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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