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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Oct 08. 2023

14화 지공선사地空禪師로 살아보니

작년부터 지공선사地空禪師(만 65세로 지하철 공짜로 타고 다니는 노인을 있어 보이게 부르는 말)가 되었다. 말하자면 인정받는 노인이 된 것이다. 생일이 지난 다음 날 집 앞에 있는 농협으로 가서 경로우대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별 볼 일 없는 노인이 신용카드를 만들려고 하니까 여러 가지 따지는 것이 많다. 수입을 증명하라, 은행 예금 잔고를 증명하라. 치사해서 그만두려다가 은근히 오기가 생겨서 증명서류를 발급받아 제출했다. 1주일 만에 빨간색의 농협 카드를 받았다.


집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로 환승을 하려고 카드를 찍으니 “환승입니다”하면서 “삐삐”하며 신호음이 두 번 울린다. 일반인들은 신호음이 “삐”하고 한 번만 울린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괜히 신경이 쓰인다. ‘저런 늙은이들 때문에 우리만 피해를 보는 거야.', '집에 좀 있지 뭐 볼일이 있다고 돌아다니는 거야' 이렇게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경로우대를 받는 순간부터 죄인이 된 것 같다던 선배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퇴직이 다가오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자유롭게 살자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바깥세상에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로 이사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이 도시에서 10년 살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다. 편안하다. 가끔 또 다른 지역으로 3일이나 1주일 살이를 하러 다닌다. 좋다.


친구들 중에는 자신의 사업장 운영, 주차장 관리, 대학병원 환경미화원 관리, 시니어클럽이 제공하는 하루 3시간 근무하는 일 등을 하는 친구도 있다.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는데도 그 친구들은 무료하기 때문에 일을 한다고 했다.


나는 산행을 즐기고 있다.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고, 예전에 구입해 두었던 세계의 명화를 한 편씩 본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으려고 한다. 오리고기는 뺏어서 먹고, 소고기는 사서 먹고, 돼지고기는 남이 사주면 먹으라는 말은 따르지 않는다. 입에서 당기면 먹는다. 편안하고 좋다.


가끔은 전철을 이용하여 서울에 가서 논다. 지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울은 언제나 새롭고 객창감이 밀려든다. 아내와 같이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을 이용하여 서울 둘레길도 다 걸었다. 관악산, 청계산도 올랐고, 북한산 비봉능선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문제는 배낭을 메고 첫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출근하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우리 같은 지공선사들이 배낭을 메고 승차하여 불편을 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지공선사들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무료승차제도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교통비를 지원해야 하는 대상을 엄격히 선별하여 그분들에게만 적용하는 방법도 좋겠다.


지하철 무료 승차제도를 이용하여 얼마나 큰 혜택을 받을까. 서울에 살면서 오직 지하철만 이용한다면 전액 감면을 받기는 한다. 그러나 버스로 환승하게 된다면 크게 할인을 받지는 못한다.


아내와 같이 천안에 있는 태조산 산행을 하러 갔다. 우리는 마을버스 – 전철 – 버스를 이용하여 산행 들머리로 이동했고, 전철 –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경로우대를 받지 않는 아내와 경로우대를 받는 내가 실제로 지불한 금액을 비교해 보자.


전철을 무임으로 이용한 나는 마을버스 1,350원, 전철 0원,  시내버스 1,500원 합계 2,850원을, 아내는 마을버스 1,350원, 전철 800원,  시내버스 250원 합계 2,400원을 지불했다. 돌아올 때에는 나는 전철 0원, 마을버스 1,350원 합계 1,350원을, 아내는 전철 2,050원, 마을버스 100원 합계 2,150원을 지불했다. 총비용을 보면 나는 4,200원, 아내는 4,550원으로 그 차이는 350원이었다. 먄약에 돌아올 때에도 시내버스를 한 번 더 이용했다면 경로우대카드를 사용한 내가 1,700원을 더 지불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지공선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냥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경로우대카드 자체를 만들지 않고 젊은이들과 똑같이 요금을 내고 다닌다. 사람들이 지공선사라고 흘겨보아도 자신은 요금을 다 지불했으니까 당당하게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그런가 하면 한 친구는 서울에 살지만 형편상 주소를 옮기지 못해서 경로우대카드를 만들 수 없다. 그 친구는 신분증을 이용하여 1회용 무료승차권을 구입하여 타고 다닌다. 청년들에게만 주는 혜택도 많은데, 노인들이 무료로 전철을 타고 다닌다고 항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하며.


소위 '지공선사'로 살아보니까 좋은 점보다 마음이 무거운 경우가 더 많다. 내가 늙었다는 것을 매번 스스로 각인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큰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속으로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지하철이 적자라고 하는데, 노인들이라고 무조건 무료로 승차하게 하지 말고, 학생들에게 할인을 해주는 것처럼 요금의 일부를 할인해 주거나, 무료로 승차할 수 있는 시간대를 제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키오스크, 자동판매기, 테이블링 등등 정보기기를 이용할 줄 모르는 노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이 너무 계산적으로만 움직이고 있다. 노키즈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더니, 이제는 노시니어존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은 누구의 아이들이고 그 노인들은 누구의 부모들인가. 자기의 자식들이, 부모들이 문 앞에서 쫓겨나는데도 노키즈존, 노시니어존이라고 써붙일 것인가.

 

이래저래 마음 아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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