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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과 우울이 깊어지면 더 쎈 약이 답일까?

우울은 수용성이다

by 최장금

요 며칠 이슬아의 책을 읽다가 이훤으로, 다시 김사월의 책으로 넘어왔다. 김사월의 글이 좋다.


삶의 모든 곳엔 사랑과 미움이 있다. 삶의 밝은 면을 살아갈 때는 사랑을 배우고, 어두운 면을 지날 때는 강인함과 성장을 배운다. 밝은 날보다 우울한 날이 더 많았던 김사월이 생의 그늘진 곳에서 찾아낸 다정한 안부의 문장들을 적은 것이 "사랑하는 미움들"이란 책이다.


이 중 유난히 끌리는 안부의 문장이 있다. 김사월은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는 밤을 통과해 왔다. 그 시간 속에서 쓴 문장들은 덤덤하게 솔직하다.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쓴 말이라기보다, 자신을 붙잡기 위해 적어둔 기록이다. 그래서 더 진실한 위로가 된다. 아플 땐 누구나 자신만 힘들다고 느끼지만, 그 문장을 읽고 나면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고 숨이 조금 풀린다.


상담이란 결국 아픔의 무게를 덜어주는 일이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를 희미하게나마 걷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늘도 평온한 밤을 보내기를 바란다는 김사월의 마음을 담아 졸피뎀이란 챕터만 이곳에 옮겨본다.

불면증과 우울감 때문에 병원을 찾게 된 건 3년 전이다. 내가 병적으로 우울하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확인받았을 때는 스스로가 불쌍해서 눈물도 났지만 그것도 잠시,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우울과 불면 속에서도 일상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꼬박꼬박 약을 먹는데도 잠은 계속 오지 않고 점점 더 깊은 우울에 빠졌다. 그럴수록 병원에서는 강도가 센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 기운에 환각을 보았고 자주 기억을 잃곤 했다. 나아지려고 약을 먹는데 약의 부작용 때문에 더욱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수면제를 먹어도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다가 해가 뜨면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약이 기능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종종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켰다. 약에 취한 채로 방송을 켜서 약에서 깨면 생각도 안 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는 그랬다.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잠에서 깨어나도 몽롱한 기운은 여전했기 때문에 정오 이전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전에 사람을 만나 미팅을 하고 나면 사람도 내용도 기억하지 못했고 몸만 나가서 입만 움직이고 돌아왔다. 침대 앞에서 비틀 거라다 협탁에 놓인 유리잔을 깨트린 적이 있다. 침대와 바닥에 깨진 유리 조각이 잔뜩 흩뿌려졌다.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다가 큰 유리 조각만 대충 치우고 다시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너무 졸려서 잠을 자야만 했다. 약 기운이 가시고 난 후에도 바닥에 깔린 유리 조각을 한참 치우지 못했다. 그냥 그럴 마음이 안 들었다.

그러다 점점 약을 먹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저녁 열 시쯤 약을 먹고 열두 시쯤 잠드는 패턴을 권장했지만 새벽 세시, 네시가 넘어가도 나는 잠들고 싶지 않았고 약을 먹을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마침내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 되면 너무 우울해졌고 더더욱 먹기 싫었다. 버티다가 다음 날이 걱정되면 억지로 약을 먹고 기분이 안 좋아져서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켰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 중 하나가 수면에 도움을 준다는 졸피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염증 때문에 약을 처방받았는데, 그 약과 졸피뎀의 성분이 무언가 맞지 않아서 부작용이 염려되는 상황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졸피뎀을 끊었다. 돌고 돌아 지금은 나에게 더 잘 맞는 정신과 약을 처방받고 있다. 잠드는 방법을 잊고 잠에 들지 못했던 수많은 밤들이 떠 오른다. 너무 고독해 누군가를 찾고,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잠에 들기를 바랐다.

이제는 그런 슬픈 불편의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잠들기 전의 시간을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서 스스로를 수면으로 조심스럽게 유인한다(알면서 스스로에게 속아주는 거지만...) 따뜻하게 샤워를 하고 셀프 마사지를 하고 디퓨저에 아로마 오일을 떨어트리고 백색 소음을 켜놓는다.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열과 성의를 다한다. 그럴 수 있다는 건 내가 나아졌다는 증거다.

잠들지 못하는 많은 친구들과 불면증을 가진 엄마를 생각한다. 새벽 서너 시가 되어도 잠들지 못하며 자조 섞인 트윗을 올리고 귀여운 게시물들에 마음을 찍는 나의 친구들이 오늘은 평온한 밤을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사랑하는 미움들/김사월-


최장금) 우울증이나 불면으로 약을 복용하다가 환각을 보거나 기억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면, 그건 몸이 보내는 중요한 신호다. 특히 수면제인 ‘졸피뎀(무다라, 스틸녹스 등)’은 잠을 유도하는 대신 기억이 끊기거나,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환각, 새벽에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증상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부작용은 약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체질에 맞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졸피뎀이나 항우울제는 뇌의 신경 전달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효과도 부작용도 다르다. 그래서 모든 처방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용량과 조합을 여러 번에 걸쳐 세밀하게 조정해가야 한다.


졸피뎀 과다처방 과다복용 부작용 사례

https://brunch.co.kr/@himneyoo1/2117

할 일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뤄두고 계속 자는 건 우울하기 때문이라는 글을 트위터에서 읽었다. 그러나 트위터에서 읽은 또 다른 글에 더 마음이 간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것. 물에 씻으면 우울이 녹는다니 근사한 표현이다. 그 생각으로 정신을 차려 샤워를 했다. 흐르는 물에 샤워를 하니 우울에 물을 붓는 것만 같았다. 축축하게 젖은 우울의 부피는 좀 작아 보였다. 스킨을 바르고 드라이를 해서 뽀송뽀송해진 우울은 나를 조금은 덜 괴롭혔다. 금세 해야 할 일들이 나를 습격했다. 우선 운동을 가자. 어제는 라면을 먹었으니.

-사랑하는 미움들/김사월-


최장금) 우울은 수용성이 맞다. 샤워를 해도 우울이 씻기고, 실컷 울어도 우울이 씻긴다. 우울하면 우는 것도 좋다.


- 심리학자 프레이 박사는 수천 명의 눈물을 채집해 분석했다. 감정으로 흘린 눈물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과 독소 성분이 증가했고, 울고 난 사람들은 실제로 심박수와 긴장이 감소했다. 즉, 눈물은 “감정의 배출구”이자, 몸이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화학적 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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