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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장금 May 17. 2020

병원 밥차 배식, 제발 도와주지 마세요

밥차의 배식을 도와주지 않는 것이 배식이 원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아침 7시, 낮 12시, 저녁 5시. 병원 밥차는 시간을 칼처럼 맞춰서 병실의 복도에 등장한다. 1명의 조리사님이 끌고 온 밥차를 보고 병실의 환자 보호자나 복도를 지나던 환자들이 자기 밥을 빼온다. 조리사님이 혼자서 그 많은 환자들의 밥을 배식하면 힘들까 봐 너도 나도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병원 밥차의 배식을 도와주지 않아야 한다. 제발 부탁이니 배식을 도와주지 않는 게 배식을 도와주는 거라 강력하게 호소하는 조리사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병원의 아침 식사는 7시에 시작된다. 밥=기상이다.


병원 급식은 수저를 주지 않는다.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았던 입원 첫날은 수저가 없어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하나 구입해 나무젓가락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퇴근한 남편이 저녁에 수저를 갖다 줬다. 저녁을 먹고 수저를 씻어 개인 사물함 서랍에 고이 넣어 두었다. 다음날, 식사 왔습니다 소리에 눈을 떴다. 정확히 7시. 알람이 따로 필요가 없다. 기상과 동시에 비몽사몽 식사를 했다. 병원은 야행성인 나와 전혀 안 맞다. 병실 사람들은 9시에 자고 4시에 일어난다. 생활 패턴을 갑자기 바꾸려니 참 적응하기 힘들다.


점심은 12시에 도착한다.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던 밥차가 오늘은 12시 5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복도에 나와서 밥이 왜 안 오냐고 한 마디씩 한다. 이내 도착한 조리사님이 취사에 문제가 조금 생겨 늦었다고 죄송하다를 연발하신다. 다른 여느곳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한끼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점심을 먹으려는데 수저가 없다.


아침 먹고 수저를 함께 식판에 담아서 반납한 게 생각났다. '또 븅신 티를 냈네... 어쩐다. 급식실에 찾아 가볼까? 다른 때 같으면 몰라도 급식실 역시 코로나로 인해 관계자 외 출입을 철저히 차단할 텐데... 어떡해야 하나?' 복도를 빼꼼 내다보니 밥차를 가져온 조리사님이 보인다. "이만코 저만코 해서 수저가 필요한데 어쩌면 좋을까요?"라고 했더니 밥차 한켠의 빈 공간에 고이 드러누워 계신 수저 2벌을 보여주신다. "이 병동의 아침 밥차에서 나온 거라 가져왔어요. 이런 분들이 많아서 수저가 나오면 항상 챙겨 옵니다." "아 ~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당뇨식을 신청했는데 일반식이 왔어요


병원 급식은 복잡하다. 급식을 신청할 때 일반식으로 죽을 원하는지 밥을 원하는지를 묻는다. 당뇨 등 식이가 필요한 특별식은 별도 관리를 해준다. 병원은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눈에 보이는 의료 인력 외 영양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료 인력도 있다. 종합 병원은 영양팀장 이하 몇몇의 영양사가 있을 것이다. 코로나만 아니면 급식실에 들러 나도 영양사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냐고 인사를 하고 싶은데... 사실 얼마나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안 봐도 뻔히 알기에 나의 오버스런 인사가 방해될까 봐 가지 못하겠다. 병원의 식사는 아침은 7시 점심은 12 저녁은 5시로 칼처럼 시간을 맞춰서 온다. 침대에 누워 티비만 보고 있는 병실의 사람들에게 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이에게는 밥이 유일한 즐거움이고 어떤 이에게는 고역이며, 또 어떤 이는 오늘 해치워야 할 업무인 것이다.


식사가 오면 보호자들이 병실에서 우르르 나오신다. 밥차를 가져온 조리사님들을 도와서 밥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다. 조리사님은 아무거나 가져가지 말고 제발 차례로 기다리라는 말을 매번 하신다. 아무거나 빼가면 일반식과 특별식이 바뀌는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뇨식이 일반인에게 가는 배달사고가 나면 조리사님들은 병실을 뒤져 당뇨식을 찾는 게 아니라 다시 식당으로 가서 새로 당뇨식을 담아 오신다. 당뇨식을 받은 일반 환자는 그게 당뇨식인지 모르고 이미 식사를 시작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서 다시 당뇨식을 담아온 조리사님이 짜증을 내신다. 차례를 기다려서 받아가면 헷갈리지 않을 텐데 아무리 식판을 마음대로 가져가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도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 병실에 잠시 식사를 넣어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미 많은 식판이 사라지고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당뇨 환자의 식사가 일찌감치 사라졌다. 환자와 보호자는 고정적이지 않고 수시로 바뀌는 탓에 아무리 이야길 해도 통제가 안 된다고 배식 운영의 괴로움을 토로하셨다. 


밥차가 오면 너도 나도 우르르 나가서 마음대로 밥을 가져오지 않아야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병실에 차례차례 식사가 도착한다.
조리사님이 혼자서 힘들까 봐 배식을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조리사님 말처럼 도와주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며칠 아침을 꾸역꾸역 먹다가 아침밥보다 훨씬 달콤한 늦잠을 선택했다. 별로 하는 일이 없으니 점심만 저녁만 먹어도 충분했고 차라리 잠을 더 자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밥도 보약이지만 잠이 더 보약이다.  


http://www.ep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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