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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장금 May 30. 2020

남편이 고기반찬을 만들어 병문안을 왔다


교통사고로 입원후 계속 병원식을 먹고 있다. 병원 밥은 아주 컨추리 하다. 자극적인 게 없다. 그리고 아주 건강식이다. 소위 말하는 불량 식품이 하나도 없다. 오래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다. 그에 비해 학교 급식은 매우 세련?(현란한 소스 범벅)되고 고열량 저 영양의 불량 식품도 많다. 학교 급식이 건강식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근 들어 아이들의 기호가 너무 반영되다 보니 자꾸만 본질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병원 급식은 식단의 구성으로 볼 때 1끼 식사비가 매우 저렴한 것 같다. 급식비를 조금만 더 인상하면 식단의 구성이 확 달라질 텐데 매일 꾸준히 3끼 고정으로 지출되는 비용이니 몇백 원 올리는 것도 매우 신중하며 자주 동결되는 듯하다. 


학교는 현재 학생 무상급식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급식비를 전액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과거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직접 받을 때는 운영이 매우 힘들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물가 상승비를 고려해 급식비를 조금만 인상하자고 제안하면 학교 운영 위원회에서 매번 쉽사리 통과되지 않았다. 모든 가정의 형편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급식비가 적으면 메뉴 구성에 제한이 많다. 학생들은 원인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만으로 급식을 평가한다. 영양사가 그만큼 힘들다.


병문안을 온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밥은 어떠냐고 묻기에 "한 끼 식사비가 엄청 저렴한가 봐. 급식비가 넉넉치 않은 게 식단에 보여. 영양사님들이 힘들겠더라." 병원에 입원한 동안 아침을 먹어볼까 했는데 평소 안 먹던 아침이라 잘 안 넘어가더라. 그래서 며칠 먹다가 아침은 다시 취소하고 점심, 저녁만 신청해서 먹고 있어." 

 


그런 대화를 했는데 일욜 아침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점심때 장어 구워서 갈게."

"뭔 장어를 구워와, 병원도 올 필요 없다. 그냥 쉬어."

"장어 벌써 굽고 있는데?"

"그래? 그럼 출발하면서 전화해. 병원 들어올라모 또 열재고 기록해야 하니 내가 큰길에 나가 있을게."



조금 있다가 남편에게 "1층에 있으니 내려와"라는 카톡이 왔다. 병원까지 들어오지 말랬더니...

내려가니 병원 로비에 있는 남편이 보였다. 

손에 조그만 반찬통 하나를 들고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커다란 종이 가방을 들고 있다. 

가방 안에는 반찬통이 여러 개 있었다.

"이게 다 뭐꼬?" 

"고기반찬 많이 안 나온대서 내가 만들었어."

"만들었다고? 산 게 아니고?"

"어 ㅎㅎ, 아침부터 쌔가 빠졌다"

"아이고 잠이나 자지 뭐하러..."


가방을 열어보니 돼지고기 장조림, 쇠고기 숙주볶음, 장어구이, 상추쌈에 고추, 마늘 된장이 들어었다. 평소 반찬도 안 만들어 본 사람이 이런 걸 어떻게 다 만들었대? 장조림에는 메추리알과 통마늘 꽈리고추까지 들어있다. 햐... 이걸 만들라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을까? 재료를 사러 마트를 갔을 것이고, 집에 와서 씻고 썰고 굽고 조리고. 인터넷을 보고 자세히 연구했는지 마늘도 하나도 물러지지 않고 간도 맞고 맛있네. 근데 햐... 이걸 언제 다 먹나? ㅎㅎ


병실로 돌아와 가족 톡에 인증샷을 보냈다. "진수성찬이다. 맛있당. 고기 폭탄에 속이 놀래겠다"라고 했더니 딸아이가 "아빠가 열심히 연구했다. 울 아빠 최고!!"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남편이 해 온 반찬을 보니 문득 신혼 때 생각이 난다. 아침이 분주한 나를 위해 남편은 매일 아침밥을 차려줬다. 툭하면 밥보다 늦잠을 선택하던 나는 거의 아침밥을 먹지 못 했다. 남편은 내가 밥을 먹든 먹지 않든 꼭 식탁에 내 밥까지 차려 놓았다. "아 제발 밥 좀 퍼놓지 마, 먹고 싶으면 내가 퍼 먹으면 되는데 왜 매일 펐다가 도로 넣었다가 쓸데없이 그래." 


그렇게 나는 언제나 효율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남편은 배려가 앞서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함께 차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그날따라 전날 저녁을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유난히 배가 고파왔다. 그날 역시 늦잠을 아침밥과 바꾼 날이었다. "에이~ 아까 아침 차려줄 때 먹을걸, 배가 고프네."라고 했더니 남편이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하면서 아침 식탁에 있던 밥과 반찬을 가지런히 담은 도시락통을 건네준다. 살짝 놀랐지만 한마디 더 했다. "도시락만 챙겨 오면 뭘로 먹으라고? 수저를 챙겨 왔어야지." 그랬더니 아무 대꾸 없이 가방에서 다시 나무 젓가락을 쓱 건네주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서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아침 도시락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남편은 예나 지금이나 자상하고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다.   


며칠 후, 남편은 병원에 또 취나물을 무쳐서 가져왔다. 내가 없는 동안 사 먹으면 될 텐데 이 기회? 에 딸내미랑 둘이 빈 부엌에서 요란을 떠나보다. 비주얼은 된장 무침인데 새콤한 맛이 난다. 식초를 넣었나? 취나물의 독특한 향과 식초 된장이 혼합된 난생 첨 먹어보는 오묘한 맛이 좋다.


자기야 ~ 반찬 해줘서 고마워. 

정말 감동인데 나로 인해 당신이 피곤한 건 싫어.

그러니 행여 다음 휴일에 또 반찬 만든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늘어지게 자. 그래야 내 맘이 편해요. 

나를 배부르게 하지 말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오.

고마워. 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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