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셀프 피드백
30대의 젊은 나이에 나는 왜 암에 걸렸을까? 대학병원 첫 진료를 앞두고 자문해 보았다. 이제껏 상상조차 한 적 없는 이런 무서운 병에 걸린 이유가 도대체 뭘까?
1. 수면의 질이 최악이었다
나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는 ‘책임감’ 때문에 업무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면 새벽에라도 몸을 혹사시키곤 했다. 집안일 역시 마찬가지. 뭔가 해야 할 일이 마음에 있으면 잠을 편히 자지 못했다. 눈은 감고 있는데 뇌는 끊임없이 할 일을 기억하라고 명령했다. 한마디로 최악이었던 수면의 질. 일이 없는 날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들을 재우다 깜빡 잠이라도 든 날이면, 새벽에 눈을 떠도 이어서 잠을 청하지 않았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잠들었던 시간을 계산해 그만큼 자지 않고 자기 계발을 하며 흡족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활습관이 내 정신 건강을 지키며 긍정 육아를 가능케 한 노하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불규칙한 수면 루틴은 내 몸 건강까지 지켜주지는 못했다. 이제는 아이들도 서서히 분리수면을 시키고 잠은 안방에서 밤부터 아침까지 쭉 자자. 새벽에 눈을 뜨더라도 무조건 이어서 자자. 내가 건강해야 아이들 곁을 오래 지킬 수 있다. 자기 계발은 건강을 회복하고 해도 늦지 않다. 조급함으로 소중한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지 말자.
2. 디저트에 진심이었다
커피 맛도 모르면서 카페에 진심이었던 나는 외식할 때마다 자연스레 달달한 디저트는 필수코스로 즐겼다. 당이 암세포의 먹이라는 사실을 이 때는 알 길이 없었다. 커피와 디저트는 나의 육아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매일 쳇바퀴 같은 일상을 견뎌내는 스스로에게 주는 일종의 ‘당근’ 같은 도구였을 뿐이다. 먹을 때마다 행복감을 느꼈고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더 이상 내 안의 암세포에게 매일같이 먹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암세포, 더 이상의 벌크업은 사절한다.
3. 나 홀로 식단에 소홀했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의무감에 영양가를 고려해 밥을 차렸다.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집에 나 혼자 있을 때는 배가 안고프면 간식으로 스킵하거나 라면을 끓여 먹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나는 스스로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내 생활습관을 복기해 보니 나부터가 자신을 귀히 여기지 못한 인생이었다. 최근에 어떤 영상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내가 나의 엄마인 것처럼 나를 돌봐줘야 한다고 했다. 나를 긍휼히 여기고 토닥이고 정성껏 먹히고 입히고 재우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뭉클했다. 이제는 내가 나의 엄마가 되어 혼자 있더라도 밥만큼은 양질의 식단으로 제대로 챙겨 먹이리라.
4. 생각이 과하게 많았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입사할 때 받았던 강점 검사에서 긍정성이 1위로 나왔을 정도로 긍정회로에는 자신 있었기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다. 영화 ’ 인사이드아웃‘에서 ’ 긍정이‘뿐만 아니라 ’ 슬픔이‘도 자아에게 꼭 필요한 감정이었던 것처럼, 마냥 긍정적인 것도 건강한 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건강의 첫걸음이다. 최근 읽은 책에서도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은 몸에 해롭다고 했다. 과도한 생각들로 스트레스의 영역에서도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과부하가 올 정도의 생각은 내려놓으며 살자.
5. 감정을 많이 참았다
육아의 상황에서도, 관계에서의 불편함을 느낄 때도 할 말을 직접적으로 건강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속으로 참을 때가 많았다. 평소에 남편으로부터 아이들에게 예쁘게 말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참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육아의 영역에서만큼은 본인의 마음부터 챙기라는 조언이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엄마고 30년은 더 산 어른이니까 참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기질은 어쩔 수 없으니 고쳐질지는 모르겠지만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그래도 내가 견디기 힘든 수준의 상황까지 스스로를 끌고 가지는 말아야지 다짐해 본다.
평소에 F 충만하던 내가 T모드로 현상 분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 대견하다. 이런 상황에 기특한 감정을 느끼는 내가 웃기기도 하다. 나는 이제 더 건강해질 일만 남았다. 더 단단한 내가 되어 자신을 지키고 우리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더 사랑하며 살고 싶다. 내 몸속에 있는 암세포의 기수도 정확히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건강하지 못했던 생활습관을 돌아보고 제2의 인생을 바라보게 하심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