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Multi-)가 뭐길래

유능함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

by 명형인
“Jack of all trades, and master of none.”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지만 정작 각 방면의 수준은 완벽하지 못하다.


요즘은 직장에서나 일상에서나 멀티가 대세인 모양이다.

모두들 멀티를 잘해야 한다, 멀티를 해야 시간 아낀다,

돈 모은다 등등 "멀티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말이다.

이쯤 되니 무념무상.

세상을 살아가는 찰나에 불현듯 의구심이 들더라.

이게 진짜 좋은 건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멀티는 둘둘 셋셋 모여서 하는 멀티 플레이가 아니라

혼자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멀티다. 좋은 말로 하면 유능한 인재, 즉 팔방미인이라 부른다.

이러한 능력이 기술이나 순발력을 요구하는 상황에선

아주 뛰어난 건 사실이다. 본인도 이건 인정한다.

나도 글 쓰는 작가이며, 디자이너인 동시에 과학자, 의사, 변호사 등의 다른 분야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세상살이 돈벌이가 훨씬 편해질 것이다.


그런데, 멀티에 대한 속담을 눈여겨보면 의외로 긍정적인 구절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외국 속담인 “Jack of all trades, and master of none.”(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지만 정작 각 방면의 수준은 완벽하지 못하다) 하고 한국 속담인 "재주를 다 배우고 나니 눈이 어둡다"가 좋은 예시들이다.


멀티를 하면 이익이 따를 수 있지만 반드시 손해도 같이 따라온다. 생각해보라.

업무나 몸을 쓰는 일은 몸이라도 성하면 멀티야 언제고 가능하겠지만우리의 뇌는 그렇게 튼튼하지 않다.

생각을 하나 하는 것보다 둘, 셋 이보다 더 많이 할수록 메모리는 가득 차고

신경은 과부하가 돼서 온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끝까지 가게 되면 터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갑자기 터져버린 휴화산처럼.

이렇게 멀티는 능력을 끌어올리지만 동시에 우리 몸을 갉아먹는다.

지식을 배워서 통달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웬일,

멀쩡했던 눈이 상할 대로 상해서 침침해지고 마는 것이다.


재주를 다 배우고 나니 눈이 어두워졌더라.


우리 사회에서 안 좋은 멀티는 너무나 많다.

우리가 태어날 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조기 멀티스터디(multi-study)를 시작한다.

수학, 과학, 영어, 국어, 도덕, 미술, 음악 등등..

수많은 것을 배우고 정보의 홍수에 빠져

청소년기를 보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백지장처럼 깨끗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들은 열정과 투지를 가지고

경험을 통해 한 땀 한 땀 새겨 넣은 지식의 돌판 이리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인간관계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멀티릴레이션십(multi-relationship)이 부쩍 늘게 된다. 누가 뭘 하면 내가 뭘 해야 하고 누가 맞춰주면 내가 맞춰주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자아를 배구하듯 치고받는 무한 경기를

주구 창창하다 보면 한 사람은 짝을 만나 둘이 된다.

남녀가 만나 부부생활을 하며 알콩달콩 신혼을 보내도 멀티는 끝나지 않는다.

서로의 시부모님을 챙기고 양가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도리지만,

너무 과하면 과한 쪽이 스트레스받고 덜하면 덜 한쪽이 맘속 한구석이 상하는 현실.

노년기가 되어서는 부모와 자식끼리 부모니까 따라야 하고 자식이니까 다 해줘야 한다고

서로 우기며 인생까지 멀티인생을 살려고 한다. 한마디로 할 건 다 하지만 남는 건 없는 백지 인생이다.

하긴, 나도 살면서 이렇게 백지를 펑펑 날리고 날린 적이 있긴 하지.


물론 예외는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무작정 다 끌어안고 멀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가 그렇다.

그러하듯이 본인도 이런 지긋지긋한 멀티의 굴레에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을 웃게 하고 울리는 멀티의 유능함 뒤에 가려진 이면을 확실히 정복하려면 한 가지 알아둘 게 있다.

이것은 내 경험을 토대로 한 대책이니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참고만 하길 바란다.


나는 나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다른 사람 인생은 그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모르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고 그들이 나를 몰라주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가 천지를 창조한 창조신이 아닌 이상 무엇을 알겠는가.


우리가 아는 것은 지금까지 배운 것과 경험뿐이다.


어쨌든 인생은 싱글 플레이(Single-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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