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 22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많이 나도는 걸 보고 이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이 글 쓰기 전 앞글에서 쓴 내용이랑도 이어지기 때문에 이번에 지피지기 백전불태에 대해 함께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알다] 지 [상대방] 피 [알다] 지 [자신] 기
[100] 백 [싸우다] 전 [아니다] 불 [위태로움] 태
한문을 살짝 이해하기 쉽게 변형한 점 사과드립니다.
요즘은 한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한자도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능하다는 뜻의 가능 앞에 불 이 붙으면 불가능이 됩니다.
위태로울 태 앞에 불이 붙었으니 불태, 곧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귀에 더 와닿을까요?
백 번 싸워서 위태롭지 않게 버티는 것보다
백 번 싸워서 전부 다 승리하는 게 더 달콤한가 봅니다.
그렇죠?
제가 미국에서 막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가 생각납니다.
한국에서 모처럼 동창 친구들도 만나고 취업해서 생활해 보니 인생에서 좀 멋져 보이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지피지기 백전백승'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만일 좀 못한다고 하면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은 나처럼 하면 백전백승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았죠.
제가 잘 안 되는 거 같으면 부모님은 "어이구! 열심히 안 해서 그러네~!"
잘 되면 갑자기 폭풍칭찬 세례입니다. 계속해서 잘 돼야 한다고 합니다. 또 기대가 탁 꺾여버리면 나오는 한마디, 어이구!
그놈의 어이구 입니다. 제 이름은 어이구가 아닌데요.
한때는 제 이름이 진짜 어이구 인 줄 착각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계속 승리하기 위해서 살아가니 너무 피곤합니다.
사람이 승리를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닌데 이겨야 한다고 말하니 피곤해 만 15살 때부터 제 소신대로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의 결심을 굳혀주신 제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2025년이 된 지금도 승리를 갈망하고 지피지기 백전백승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미 잘 나가기 시작하고 첫출발을 잘 잡은 사람들은 백전백승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은 불안감이 한국사회에 유독 많은 것 같습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믿고 악착같이 나아가야만 하니 백전백승을 외치는 걸까요?
상대방(사회와 경제상황)을 알고 나 자신의 분수를 잘 파악한 후에 백전백승의 승리를 갈망하며 나아가면 그 승리의 여신이 내 편을 들지 않을 때에 좌절감이 매우 큽니다.
내가 백전백승만을 바라봐왔기 때문에 꺾이는 타격감이 백전불태로 잘 버티는 것 만 생각했을 때 보다 매우 아픕니다. 저는 여기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가 맞는 말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사회가 그만큼 많이 피로해져서
좀 쉬어가면 좋겠는데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쉬려고 하니 어려움이 닥쳐버리니
쉬지도 못하는 상황은 어떨까요?
제가 이번 주제인 지피지기 백전불태를 이전 글과 이어졌다고 언급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전 글에는 제 아버지 이야기가 살짝 나왔는데요, 그때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2025년 지금 대한민국도 수십 년 전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한 행동과 관념이 충분히 먹히고 그때 당시의 통념이었던 시절이 존재합니다. 반백년 이상 더 돌아보면 진짜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아예 다른 나라 같이 느껴질 거예요. 시대는 항상 변화하고 사회적 통념과 윤리도 시대에 맞춰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제일 사랑하는 것은 부동산입니다. 아버지도 부동산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대출도 잘하면 무기가 되었습니다. 부동산은 사기만 해도 그냥 수익 보장였습니다. 사업도 앞날을 내다보고 하는 게 사업입니다. 건설업이 붐을 일으켜 호황이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지금은 급전도 안되고 돈 흐름이 부동산에 꽉 막혀버려 내가 집을 내놓았는데 빌라라서 안 나간다, 아파트인데도 잘 안 나간다, 서울 어디는 잘 나가던데 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무리하게 레버리지 한 결과입니다.
사업도 지금은 매우 불경기입니다. 부동산 불황 + 사업 불경기가 부동산 몰빵 + 사업 희망줄을 쥐었던 사람들을 미쳐버리게 합니다. 뭔가 적자를 받쳐줄 만한 방어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전부 다 하락세면 힘듭니다. 헷지를 해두지 않은 사람들은 엄청 힘듭니다.
저도 지금은 가족에게 닥친 어려움의 여파로 인해 고생스럽지만, 지금 이 시기였기에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많은 세월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백전백승이 아닌 백전불태의 인생을 살아야겠구나 느꼈습니다. 이 글이 발간될 경우 아버지는 싫어하실게 분명하지만, 아버지께서 저에게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가르친 적이 있으십니다.
최근에는 제 예비남편에겐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가르치셨더라고요. 제가 이 말을 듣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저에겐 왜 백전백승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제가 잘 되길 바란다는 마음이었을지 모릅니다. 예비남편은 어차피 남의 아들이고, 저는 자기의 딸이니 저에게 주고 싶은 걸 주셨습니다. 사랑을 주는 방법은 잘못되어도 어쨌거나 잘 되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한다는 것이 때론 슬프게 다가옵니다. '지피'가 적의 사정을 알라는 말인데 여기서 적은 나를 해하는 적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 경제 변화 등도 포함됩니다. 나에게 언젠가엔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알아두라는 말인데요.
어떻게 고대 시대 때 이런 생각을 했는지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그때는 지금 같은 문명이 없었는데 이미 선견지명이 있는 어록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저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인생을 살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백전백승의 길은 너무 위태롭고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본디 자만하고 오만해져서 첫 마음을 쉽게 망각하는 존재인데 과연 저는 예외사항일까요?
백전백승의 밝은 미래만 바라보며 현재를 마음껏 불태우면 진짜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합니다.
기껏 열심히 태웠고 진짜 사업이 잘 되어서 10년간 잘 되어도 11년 차부터 닥쳐온 고난에 팍 꺾여버리면 너무 힘들어집니다. 그때 화를 내고 갈갈이 분을 내는 게 무슨 소용일까요? 또 기가 막히게 잘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또 잘 안 되는 구간이 옵니다. 인생은 참 야속합니다. 저도 30년 동안 3번이나 찾아온 고난인데 다른 분들은 데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단 말입니까?
보기에 너무 눈부시고 찬란한 것들, 매끈하고 탄탄한 육체, 한없이 올곧아 보이는 지성 같이 보이는 것만 추구하기에는 백전불태 하기 어렵습니다. 보이는 것은 연약한 유리창 같습니다.
부동산 시장도 제가 보니 기똥찬 게 있습니다. 이미 자산을 잘 배분하고 부채도 자산 매각해서 열심히 줄이고 계시는 분들은 끄떡도 없이 잘 사십니다. 심지어 빚 하나도 없다는 분도 딱 2분 뵀습니다. 많지 않습니다. 아들 딸에게 아쉬운 소리, 친구들과 술잔 기울이며 화난 얼굴을 하시지 않습니다. 저를 만날 때마다 잘 지냈냐 안부 물어주시고, 웃으시는 얼굴이 참 해 같이 밝습니다. 가끔씩 도움이 되는 인생 조언을 해주십니다. 물론 공짜는 없지만요. 지금 시끄러운 난리통 속에 홀로 고요한 무인도에서 사시는 분들 같았습니다. 뉴스에서는 부동산 안 팔려서 사람들 한숨 쉬고 난리 났다고 하는데!
아니, 이런 예외사항이 있다고? (비법은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생각할 바에 현명히 살아라 합니다)
어떠한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기초를 탄탄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건 돈 이야기에도 통용되는 부분입니다. 이미 체감하시는 분이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말씀해 주셨기에 제가 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 글은 그분 하고 제 미국 부모님께 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