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련 Oct 21. 2018

3_ 아직도 모르겠다.

딸-깍. 스위치를 킨 순간 무서웠다. 지금이 때가 아닐지도 몰라. 





잘 모르겠다.


나에 대한 평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바보처럼 무디거나,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예민하거나. 중간은 없다. 둘 중 하나다. 나를 무디다고 평하는 사람은 대부분 오래된 친구들이고, 예민하다고 평하는 사람은 일로 만났거나, 안면을 튼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터놓자 친구가 말했다. 그건 오작동하는 네 '스위치' 때문이라고.  




딸깍. 


스물의 나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고, 선배들이 부르면 빠지지 않고 자리해 있었다. 연을 맺는다는 게 후에 어떤 책임감을 가져오는지 알 턱이 없었기에 그저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렇게 한 해가 흘렀고 내 어깨에는 작은 짐 하나가 생겼다. 한 학번 선배들이 만든 작은 소모임. 동아리 인준도 받지 못해 형태 없이 불안했지만, 가장 많은 동기들과 후배들로 항상 시끌벅적했던 그 무리를 책임지게 됐다. 하지만 선배들은 모두 군대로 떠났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나만 남게 됐다. 


동아리 인준을 위한 행정업무와 60명이 넘는 사람들을 매주 모으는 일. 학번이 훨씬 높은 다른 동아리 회장들의 배척을 고스란히 느끼며, 뭐든지 처음이었던 행사들을 마무리짓기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가 대수라고 몇 달에 한 번은 앓아누웠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어수선했던 행사를 겨우 마무리짓고 뒤풀이를 위해 모인 술집. 동기 하나가 할 말 있다며 내 손을 붙잡았다. 지친 얼굴을 하고도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법을 몰라 모든 걸 끌어안는 내가 한심하고 바보 같다고 했다. 급기야 답답한 마음에 불쑥 잡으라 건넨 손마저 잡을 줄 모르는 모습이 이제는 조금 원망스럽다 했다.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말에 물기가 서리더니 결국 소리 내며 울었다. 나를 대신해 많은 손들이 울었다. 흘러넘치는 감정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사실은 저만큼이나 소리 내서 울고 싶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렇게 젖은 손들이 내 어깨 위로 얹어진 날, 나에게 '스위치'가 생겼다. 




딸-깍. 


'스위치'가 없던 나는 무던을 넘어 무감각했다. 특히 남에게 드러내기 싫어하는 내 작은 모습들을 꺼내야 할 때 면, 회로 하나가 날아가 버린 듯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가치를 입증받아야만 했던 성장환경과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이었다. 평소엔 극단적으로 외향적이며 밝은 모습을 보이다가도 그 작은 고장들이 쌓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가 오면,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되어 혼자 며칠을 앓고 나서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슨 운을 타고난 건지, 이렇게 까다로운 내 주위에도 나보다 훨씬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숙한 나를 위해 감정 스위치를 만들어주고, 손이 여럿 미끄러지는 미숙함에도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 무렵 나는 학생회장이라는 더 큰 짐을 어깨에 지게 됐고, 내 주변인들은 가끔씩 강제로 스위치를 눌러 상처가 커지지 않도록 이미 생긴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스스로 스위치를 눌러 내 못난 속마음을 꺼내게 됐다. 그들은 그런 나를 탓하기보다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나의 미숙함을 돌봐줬다. 




딸깍. 딸깍.


하지만 스위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았다. 스위치를 누르는 일은 쉬이 익숙해지지 않고 타이밍을 종종 놓쳤다. 업무와 일정에 바빠 너무 늦게 누르거나, 익숙한 패턴에 지레 겁먹고 너무 일찍 눌러버리거나. 전자는 나를 힘들게 했고, 후자는 주변을 힘들게 했다. 게다가 타이밍을 놓친 스위치는 평소에 꺼내야 할 감정보다 격하게 흘러 다시 주워 담을 시간도 주지 않았다. 모두 나를 이해해주던 그때와 달리 복잡해진 인간관계, 매일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갖게 된 자연스러운 사회적 위치.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요에 따라 스위치에 손을 올리고, 미숙함보다 두려움에 손을 내리게 된다. 


부디 어른이 되면 제 감정을 제어하기 위한 도구 따윈 필요 없게 되길 기대한다. 이 공기에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날, 그때에 따라서. 나와 타인이 모두 상처받지 않게. 바보처럼 무뎌도,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예민해도 모두 나라는 사람 안에서 자연스럽게 규정될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2_ 푸른 도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