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는 사람 Feb 11. 2019

장기 여행자, 귀촌자 중에 왜 몸 노동자는 잘 없는가?

집시맨과 자연인


   술렁술렁 편하게 읽기 좋아 장 보러 가던 길에 들린 찻집, 잠자리에서 주로 읽던 책엔 이런 말이 나왔다.  

한동안 ‘잘 나가던 일을 그만두고 떠난 사람이 쓴 여행기’란 홍보 문구가 유행했다.


  나도 수년 전 저 문장과 거의 똑같은 내용의 글을 끄적거려 본 적 있어서 좀 반가운 마음으로 -웃으며 읽었다. 저 문장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런 이들이 너무 많아져 이제 출판사 편집자가 ‘제발 그런 이력을 자랑하는 원고는 보내지 말아 주세요’라고 하소연할 정도란다. 그런데 그런 붐을 만들고 일조한 게 또 출판사 편집자 아닌가 싶다.

  용감하게 떠나는 그들의 전직은 전문직 화이트칼라 아니면 예술계 종사자였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일 년 이상의 해외 장기 여행을 한 이들은 돌아와 멋진 풍광과 아련한 감상이 잘 버무려진 여행기 하나씩 냈다. 책 표지나 속지의 작가 프로필엔 대체로 이런 문구가 박혀 있었다.    

'잘 나가던 전직 카피라이터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떠난 세계 방랑기’    


  전직 직종이 카피 라이터에서 사진작가, 디자이너, 광고회사원, 마케터, 대기업 사원 등등으로 바뀔 뿐이지 소개말은 대충 저랬다. 요새 약간 달라진 게 있다면 저자 직종 중 남의 책 만드는 일을 하던 편집자, 디자이너, 웹툰 작가 군이 늘었다는 것이고 그들이 출판사(월급쟁이)를 때려치우고 직접 자기 글을 쓰거나 펴내는 일이 많아진 정도다. ‘다른 차이’가 아니라 ‘비슷한 것 속의 덜 비슷한 차이’ 쯤 되겠다.    

    아마 내가 그런 책을 내게 됐다면 이렇게 소개 됐을 것이다.

'못 나가던 잡부가 전전긍긍 끝에 나와 동네 백수가 되어 골목길 마실 중에 나온 잡문'

  

  그 시절 내가 읽은 여행자들 이야기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나는 왜 아침마다 이렇게 열심히 머리를 감는가? 출근하지 않으면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각성이 밥벌이를 그만두고 떠나게 했다는 말이었다. ‘일하기 싫음, 출근하기 싫음, 돈 벌기 싫음의 3대 절박함’이 ‘머리감기’란 한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잘 나가지도 못하면서 그 ‘머리감기 싫음’에 깊은 공명을 느꼈다. 그러면서 밤에는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긴 여행길을 떠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잘 나가지도 못하는 직장에 개근하는 자신에게 자멸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 여행가와 책들은 열심히,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묘한 죄책감과 열등감을 주는 면이 있었다. 흠모와 자멸감을 반복하던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용감하게 사표를 던진 사람 중 왜? 공장 노동자, 보험 영업자, 서비스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농민들은 하나도 없을까? 그들은 잘 나가지도 못하면서 뭘 그리 열심히들 출근하고 있나?   

사진 <픽사베이>

  그렇게 장기 여행을 하고 돌아온 이들은 퇴사 전사(前事)와 여행 후일담을 적은 포토 에세이 한 권씩 내거나 물 좋고 공기 좋은 마을 한 곳에 공방, 찻집, 게스트하우스 하나씩은 차렸다. 한두 사람 모이다 도시 귀촌자 부락을 만들고, 농사짓고 살던 조용한 시골 마을은 아트 한 카페촌, 낙향한 예술가들이 모인 예술촌으로 승격되었다. 그럴싸한 가게를 차려 놓고도 ‘우린 일과 돈에 목매달지 않아. 그러려고 여기 지리산 밑, 제주도 왔거든’ 같은 도연명식 표정과 말투로 자연을 벗하는 문화 전도사가 되어 척박한 시골에 예술혼을 불어넣고 있었다. 하도 그런 사람 천지라 제주도로 간 서울 처자가 동네 귤밭에서 품앗이 노동으로 살아가니 외려 이상하게 보고 자꾸 묻더라는 어느 인터뷰 기사도 있더라.

 “넌 왜 이런 일 해? 카페 안 해?"

  남에게 보여 주는 명함 인생을 피해 서울서 먼 제주도까지 왔더니 그곳에도 '귀촌 후 명함' 같은 그들만의 리그가 있더라는 것이다. 소똥 냄새나 바다 비린내는 향긋한 커피 냄새와 '한 그릇 만 오천 원' 하는 귀족 라면 냄새로 바뀌었다. 땅과 바다에서 땀 몸으로 살던 주민들은 도시 돈맛에 뛰어들거나 떠나게 되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일이 이 마을, 저 마을로 전염되었다.    


  진정 귀촌마저도 농영자금 대출받아서 거대 특작물 농사짓는 사람들과, 저렇게 아트 한 영혼들만 가고 사는 시나리오, 연출밖에 안 되는 것일까? 시골이야말로 정말 가난한 사람, 가족 없는 사람, 미혼 여성은 도시보다 더 살기 힘든 곳이기도 한데, 왜 그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현실은 다 편집해 버리는 것일까?

아! 물론 언론과 베스트셀러란 것은 항상 '보기 번듯한' '그림 좋은 것'만 전시해 놓는 법이다. 실패한 많은 사람보다 극소수 성공한 '서민갑부' 류를 전 국민의 롤모델로 만드는 기획이라 여행 후의 세상 부적응기, 실패한 귀농 귀촌 사례는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여행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제 귀농, 귀촌마저도 쇠락한 도시 빈민, 하급 노동자 비빌 곳은 없다.    

영상 속의 원조 자연인- 영화 <김씨 표류기>

  용감하게 사표를 던지는 사람들은 돌아와서 뭔가 다른 것,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의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긴 용기와 실천의 자산, 재산이었을 것이다. 사표를 던진 그들에게도 여행이 끝난 후의 불안감은 있었겠지만, 그동안 그들이 이루고 속해 있던 곳(것)이 돌아온 후 새로 하는 일들의 밑거름, 연결이 되곤 했다.  공장에 다니고 장사를 하고 흙을 파는 사람들은 섣불리 용감했다가 비참하게 전사할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불안이 떠나지 못하게 했다. 떠나는 자들이 자기 영혼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남은 자들은 믿을 게 자기 몸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더 많은 명성과 부를 가질 수 있음에도 그 모든 것을 무용(無用)으로 만들고 본연의 자아를 찾아 바다 근처로, 산 아래에 삶의 터를 새로 마련하고 일구는 사람들은 진정 존경할 만하다. 대다수가 도저히 자신의 능력으로 도착하기 힘든 '자본주의의 주인'이 되기 위해 온 인생을 심신이 썪도록 소비, 허비할 때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게으르게 쓰고', '마음을 낭비하는' 삶은 진정 멋진 일이다.

그러나 나는 잘난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게으르게 쓰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멋지고 존경스러운 모습 말고, 못난 사람들도 그렇게 그만두거나 떠나는 모습도 좀 보고 싶다. 쓰고 걷는 것도 일종의 계급, 선민의 전유물이 아닌 걸 보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블루 칼라의 리얼 여행 모델은 ‘꽃보다 남자/누나 시리즈’나 ‘테마기행’(덧2)이 아닌 몇몇 ‘집시맨’(덧3)이며, 귀촌 모델은 ‘한국기행’도 ‘곰배령’(덧4)도 아니고 ‘자연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여자 자연인’ 없음에 여자로 사는 것의 지난함을 다시 한번 느끼곤 했는데, 드디어 <나는 자연인이다>에도 여자 자연인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덧 1) ""속 인용 문장 - [한동안 ‘잘 나가던 일을 그만두고 떠난 사람이 쓴 여행기’란 홍보 문구가 유행했다.]

이지상, "중년독서". arte. 2019

덧 2) 테마기행- EBS. <세계테마기행>

덧 3) 집시맨- MBN. <여행생활자 집시맨>

덧 4) 곰배령- MBC. <MBC 스페셜 '곰배령 사람들' >. 2009

매거진의 이전글 저렴한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