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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삶

<죽은 자의 집 청소>

by 보는 사람

어느 SNS 글 밑에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당신은 어두운 그림자보다 빛이 돋보인다'라는 댓글을 보았다. 내 어머닌 나를 걱정, 집착만 했지 기도는 영 안 한 모양이다.

누가 “세상에 얘기는 이 두 가지밖에 없어. 모두의 축복 속에 태어난 환희 가득한 출생과 햇빛 등져 불을 켜도 어두운 방에서 혼자 쓸쓸히 죽은 이야기. 넌 어떤 얘기를 볼래(읽을래)?”라고 한다면 필시 어두운 죽음의 이야기를 골랐을 것이다. 어느 연예인이 수중 분만을 했네, 라마즈 호흡법으로 애를 낳았네 같은 기사엔 고개를 흔들며 안 봐도 장례업체, 염장이를 취재한 글이 나오면 눈이 쓱 갔다. 조산사보다 염장이 얘기에 더 관심이 가는 거, '산 자의 집 꾸미기' 보다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란 제목에 혹한 것들은 다, 기도가 부족한 내 어머니 탓이다.


언젠가 친구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죽음 예행연습을 하는 어느 예능프로를 보게 되었다. 진행자는 출연자들에게 이런 미션을 주었다. “당신은 며칠 후 죽게 되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됐습니다. 단 며칠 간의 자유 시간은 있습니다. 그 며칠간 당신의 모습을 그려 보세요”.

나와 친구들도 죽기 전의 마지막 며칠에 관한 상상을 얘기했다. 출연자들과 내 친구 대부분은 좋아하는 장소(여행지)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있다.... 등 평소 ‘마음엔 있으나 마음껏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 염원을 말했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도 참 재미없게 보내고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나도 죽기 전에 집 청소를 하고 있었다.


상상 속의 나는 두 가지 정도 일을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안 대청소였다. 짐을 최대한 정리해 버리고 줄여 가족이든 익명의 시신 수습자든, 내 뒤처리에 최대한 손이 덜 가도록 분주했다. 두 번째는 각종 고지서와 금융 서류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공과금을 챙기고 갚을 돈을 확인해 최대한 정리한 뒤 장례 수습비를 찾아놓고 유족이나 기관이 내 사후의 금융 절차가 간소하도록 이런저런 메모와 서류를 챙겨 책상에 올려놓는 모습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죽고 나면 다 그만인 걸 죽는 마당에 뭘 그런 걸 챙기냐며 혀를 찼다. 죽는 순간까지도 ‘하고 싶은’ 거보다 ‘해야 할 일’에 매달리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한심했지만, 나는 내가 살던 흔적의 ‘청소’를 최대한 해놓고 가고 싶은 거였다.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에는 이렇게 나처럼 자기가 죽은 뒤의 시신과 짐에 대한 처리를 걱정한 사람이 사망 전에 그 비용을 특수전문청소업체에 문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나도 내가 병이나 자살로 얼마 살지 못할 상태라는 걸 인지한 상태에서 그런 업체에 대해 알게 됐다면 비용을 물어봤을 거 같다. 내 과거의 흔적, 민폐에 대한 강박이 좀 있는 나는 책 초입에 나오는 ‘분리수거’라는 글의 상황이 잘 이해되었다.


저자는 오늘도 의뢰를 받고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하러 간다. 고독사의 대게가 그렇듯 도시의 한 원룸이다. 사망자는 가방에서 이력서와 많은 약 봉투가 발견된 20대 여성이다. 여느 고독사의 집, 방처럼 쓰레기 더미도 없고 너무 깨끗하다 못해 좀 이상하다. 화장대 위엔 사진이 빠진 두 개의 빈 액자가 있고 찢어진 사진들은 분리수거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다. 모든 분리수거통엔 쓰레기가 잘 구분돼 있고 심지어 자신의 죽음에 쓰인 도구마저 분리수거통에 잘 넣어놓고 갔다! 정리 강박증 사망자를 보며 저자는 생각한다.

‘자살 직전의 분리수거, 얼마나 막강한 도덕과 율법이 있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마저 이토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는가,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내 같은 경우엔 착함은 아니 바름, 내 존재의 흔적 소거, 민폐에 대한 강박이다. 그 강박이 가끔 나를 찌른다.


이제 고독사라는 단어는 익숙해도 사후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전문청소업체’에 대해선 아직 생소한 분도 많을 것 같다. 이 강렬한 제목에 끌려 이 책이 출간된 직후 도서관 신청을 바로 해서 신착 도서 문자를 받자마자 찾아왔다. 무거운 제목과는 상반된 소녀풍 웹툰 스타일의 표지에 갸웃거리며 읽었다. 읽다 보니 르포 에세이로 알았던 책은 퓨전 사극풍의 소설이고 내용도 내가 기대했던 게 아니라 좀 이상해 표지를 다시 보니 <죽은 자의 집 청소>가 아니다. <유품 정리사>라는 소설이었다. ‘그래, 죽은 자의 집 청소하는 사람이 유품 정리사지 뭐....’라며 지 맘대로 읽은 내 눈알을 한심해하며 엉뚱한 책을 의무감으로 다 읽고는 원래의 책은 잊었다. 그 뒤 신문 서평 코너, SNS에서 이 책이 꽤 회자되는 걸 보며 다시 생각났다. 내가 읽기 전 지인들에게 미리 몇 권 선물로 돌리던 차에 나도 마침 선물로 얻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삶


내가 저자의 업인 특수 전문 청소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한때 좀 챙겨 보던 <단비 뉴스>에서 본 ‘유품 정리사가 말하는 노인 이야기’라는 기사에서였다. 지금은 ‘특수청소(전문)업체’라는 직업이 직업 사전이나 검색에도 나오지만, 그 기사를 볼 때만 해도 생소했었다. 특수청소업체에서 하는 일은 고독사, 자살, 범죄 현장, 극단적으로 쓰레기가 많이 쌓인 집, 동물 사체가 있는 곳처럼 주로 불행한 죽음이 발견된 곳의 청소다.

단비뉴스에서 메모해둔 기록을 보면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은 2002년 일본에서 처음 생겼다. 한 이삿짐센터 대표가 유족이 유품 정리를 힘들어하는 것을 본 뒤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전문업체를 만들었다. 그 후 그는 일본 내에 여러 개의 지점을 냈고 일하면서 본 경험을 엮어 <유품 정리인은 보았다>라는 책도 냈다.


그 기사를 읽은 뒤 어느 직업 소개 프로의 인터뷰에서 이 업종에 관한 인터뷰를 또 봤다. 청소 업체의 대표는 이 업종 이전에 장례업체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했었다. 한 장례식에서 검안 의사로부터 고독사라는 생소한 이름을 처음 듣는다. 의사가 고독사는 일본에서 처음 생긴 말인데 특수전문청소가 일본의 신 유망 직종으로 앞으로 미래 산업이 될 거라며 적극 권했다.

한국에선 특수전문청소업이 생기기 전엔 사망자의 유품과 집을 정리하는 게 장례업체 일의 일부, 마무리 작업이(었)고 일본은 이삿짐센터 운영자가 처음 시작했다는 출발 배경이 좀 달랐다. 단비 뉴스는 여러 특수청소업체의 대표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경험한 고독사 청소의 여러 양상을 실었다.

이 특수전문 업체 종사자들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삶, 죽는 자가 늘어날수록 활기를 띠는 비즈니스’(죽은 자의 집 청소 138쪽)라는 묘한 상황의 직업인들이다.


2016년경 한국에도 유품 정리 전문업체가 생겼고 그중 한 업체는 연평균 100여 업체를 청소하는데 건당 2, 3일 걸리는 작업 시간을 감안하면 거의 매일 죽은 자의 집 청소를 하는 거라고 했다. 그때 기사를 통해 특수전문 청소의 비용은 사망자의 시신 발견 날짜, 집 평수, 짐(쓰레기) 양에 따라 다르게 계산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사비 계산과 비슷했다.

당시 이 기사를 보았을 때 죽은 자의 유품과 집을 청소해주는 특수한 직업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한 의뢰인의 얘기였다. 업체 대표는 어느 날 한 의뢰인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의뢰인은 집의 면적과 치울 쓰레기 분량에 대한 정보는 함구한 채 비용만 묻다가 전화를 끊는다. 얼마 후 경찰로부터 연락이 온다. 자살 사망자의 마지막 통화자로 이 업체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어서라고.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다가 같은 얘기를 그때 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당시 이 일화를 얘기한 청소 업체 대표의 이름이 ‘김원’으로 돼 있다. 기사의 내용과 내가 책 속에서 본 내용이 같아 ‘김완’의 오타인 동일인 아닐까 싶다. 당시의 기사에서 쓰인 유품정리사가 고인의 유품과 청소를 같이 정리하는 포괄적 단어였다면, ‘특수청소전문업체’는 ‘청소’에 더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유품 정리사란 직업명엔 있는 어떤 정서, 감정의 뉘앙스가 특수청소업체엔 없다. 건조하고 업무적이다.



미문이 흠-글의 메시지보다 욕망이 돋보인 글


[모두가 좋다고 하는 글(영화)을 그리 좋지 않게 읽었을 때 굳이 누가 어쨌냐고 묻기 전엔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다...... 다수가 좋다고 말할 때 다른 생각을 가진 소수는 대게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하게 되는데 여론은 이 침묵을 계산하지 않는다. 계산하지 않으면 없는 의견이 되고, 없어 보이면 없는 사람이 된다. 무로 산정된 이 침묵과 잔여가 어느 순간 산술로만 측정되는 세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전체인 것처럼 합산된 여론은 믿을 게 못 된다는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ㅡ행간. 이신정]

[우리나라엔 성역이 세 가지가 있다. 유재석, 김연아, 소방관ㅡ그냥, 사람. 홍은전. 봄날의 책들]


‘아주 많은 다수가 좋다’고 하면 어느새 그 대상은 ‘누구에게나’ 다 좋은, 좋아야 하는 것이 돼서 이견을 달지 못하게 되는 것, 나쁘진 않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라고 말하면 루저, 비주류의 튀어 보고 싶은 관종으로 비하된다. 혹은 저항 자체를 무력하게 하는 영웅, 대작의 씁쓸함. 영웅과 대작을 만들어준 대중은 내가 만든 우상이 언제나,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하긴 힘들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한다. 영웅에게나 자신에게나 무익한 태도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보고 나는 저 두 문장이 떠올랐다. 이 책은 시의에 부합한 담론의 가치가 많은 책이지만 내가 본 상찬 일변도의 리뷰, 서평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제목이 훨씬 담백한 <그냥, 사람>이나 최근 성범죄 고소를 당한 저자의 <임계장 이야기>가 훨씬 좋았다. 후자는 그 좋은 자기 글을 배반한 행동 때문에 더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글은 무겁고 암울한 제목과 달리 다소 감상적이었다. 글을 읽으며 험한 육체노동을 오래 한 남자,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의 문체론 너무 유려한 미문인데? 싶어 표지의 저자 약력을 보니 ‘시’를 전공했고 글 밥도 오래 먹은 사람이다. 아, 그래서 문체가 이렇구나 했다. 너무 공들인 문체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여겨졌다. 문체가 좀 건조하고 담백했으면 오히려 더 좋았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마치 소설 속 한 장면 같은 문학적인 묘사가 자주 반복되자 미문의 문체가 논픽션을 잘 만든 픽션 영상으로 재현해놓은 느낌이 들었다.


‘두 자리였던 붉은 숫자가 점점 겸손하고 낮은 숫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눈 어둡고 심약한 물고기여, 두려움을 해치고 그곳에 가야만 비로소 이 지독한 심해의 압력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런 문장을 처음 몇 번 봤을 때는 무거운 사회 인문 에세이에 이런 식의 문학적 서술도 괜찮네! 했지만 이게 매 페이지, 챕터마다 반복되니 오히려 일관적 흐름을 훼방하는 역효과가 났다. 꼭 필요해 보이지 않는 장식적인 인용 일부도 글 행간의 감동, 감흥을 감소시켰다. 글은 좋았지만, 에세이가 아닌 <82년생 김지영> 같은 르포 스타일의 소설, 사회물 시나리오로 장르 변경해서 작업했으면 더 좋았겠는데 싶었다.


오늘은 김완의 책을 얘기 하니까 홍은전의 책은 다음에.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와 홍은전의 <그냥, 사람>을 비슷한 시기에 같이 읽었다. 같이 읽으며 후자를 더 높게 평가한 것은 저자의 감성을 최대한 배제한 건조한 문체의 감동이 내겐 더 크고 좋았기 때문이다. 두 책 다 무겁고 필요한 주제를 잘 다뤘지만 <그냥, 사람>의 촉촉함 제거한 글이 현장, 현실의 재현성에서 더 좋았다.

김완의 글이 대중성, 작품성을 적당히 다 잡은 대중 영화 같다면 홍은전의 글은 목적이 뚜렷한 다큐 영화다. 김완의 글이 실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 쓰기라면 홍은전의 글은 실화, 경험 그 자체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기록이다.

글에 대한 욕망이 더 크게 보이는 글이 있고 ‘주제’에 더 집중한 글이 있는데 김완의 글은 저자의 쓰기 욕망이 더 크게 느껴졌다. 욕망 나쁘거나 틀린 건 아니다.


가난과 빚, 병을 비관한 ‘일가족 살해 후 자살’ 같은 뉴스에 대한 두 저자의 반응은 좀 다르다. 김완은 이를 ‘유독 가족주의의 질긴 끈을 놓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종종 일어나는 비극’이라는 개인, 가족주의적인 한국적 정서의 단점으로만 언급하고 지나간다. 반면 홍은전은 남자 가장의 부채나 사망, 이혼 후에도 남은 가족이 기본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같은 사회, 국가 제도의 시스템 문제 인식하고 반복적으로 제기한다. 문제제기, 문제의 환기에 대해선 두 책이 다 나름의 좋은 역할을 하지만, 대안이나 공동체적 토론의 담론으로 들어가면 홍은전의 글에 점수를 더 줄 수밖에 없다. 이는 김완이 홍은전보다 사유나 성찰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글쓰기의 목적과 방법이 다른 데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자의 집 청소>에 보면 한 현상에 대한 그 사회의 사고, 접근법을 생각하게 하는 단어가 나온다. 한국이 홀로 죽어 뒤늦게 발견된 자에 대해 ‘고독사’라는 단어를 쓴다면 일본은 ‘고립사’라는 단어를 쓴다. 한국이 ‘고독’이라는 개인적, 감정적 단어로 접근한다면 일본은 ‘고립’이라는 사회적 상황에 더 주목한 것이 같은 죽음에 대한 다른 단어에서 드러난다. 내용이 그릇, 스타일을 바꾸는 거보다 스타일로 내용을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고 빠를 때도 있다. 화려한 프랑스 도자기 접시에 시래기를 담아도 되지만, 옹기나 목기 접시에 담으면 내용이 더 살지 않는가. 내게 김완과 홍은전의 글은 그런 단어의 차이, 스타일로 비교됐다.



마음, 생각 글 말고 몸 글, 생활 글


아쉬움부터 먼저 말해서 책의 감상이 좀 박해진 면이 있지만, 읽을 만한 가치는 있는 글이다. ‘글의 성격과 어울리는 문체나 사유의 방향에 대한 개인적 선호나 취향의 아쉬움이지만, 이런 걸 더 좋아하는 독자도 있을 거다. 십자가, 목탁 든 종교 장사꾼들의 개 풀 뜯어먹는 한가로운 설교 조의 힐링 에세이보다 이 책이 주는 고민, 배울 거리가 훨씬 많으니까. 내 마음 전시나 사랑과 평화 류의 종교 팔이 에세이만 베스트셀러가 되는 거보다는 이런 생활, 체험 에세이가 많이 나오고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다음 문장 같은 건 생각이 아닌 몸,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성찰이니까.

고독사한 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단전, 단수 고지서. 책 속에서 발췌.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다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다. 고급 빌라나 호화 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들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고지서는 불운을 불러오는 부적’ (저자가 청소한 고독사 집의 공통점은 각종 체납고지서, 단전 단수 경고장이 쌓여 있는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도 넉넉하다 못해 넘쳐나는 것은 우편물뿐이다.... 그런 고지서와 독촉장에서 가족은 연락을 끊어도 채권자는 끊임없이 안부를 묻는다. 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 아닐까?..... 돌려받을 돈이 있는 자는 그 누구보다 빚진 자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아 있길 바랄 것이다. 빚을 모조리 회수하는 그날까지.’

죽은 자의 직업과 자살을 감행한 도구가 때때로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낯선 것을 찾기보다는 자기에게 익숙한 것, 일상에서 가까운 것을 자살 도구로 선택한 것이다. 컴퓨터의 랜선(케이블)을 뽑아 목을 매단 자살자는 IT 엔지니어, 팔에 독극물을 주사해 죽은 남자는 중고교 과학실과 기업연구실에 납품하는 화학약품 판매자, 농부는 농약으로.....

'구더기야말로 죽음에서 생명을 얻는, 가장 역설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책은 사망자의 집을 청소한 경험을 얘기한 1장 13 챕터와 특수한 직업인으로 사는 저자의 심경, 직업적 습관, 일상을 얘기한 2장 11 챕터, 총 24 챕터로 구성됐다. 나는 이 중 초입 부분인 <캠핑 라이프> <분리수거> <가난한 자의 죽음>이 가장 좋았고 남은 챕터는 호오의 격차가 있다.


특수한 직업적 경험에서 온 사유와 성찰인 아래 문장 같은, 사회적 고민이 더 많이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인터뷰 동영상엔 그런 대답이 많았다.

‘공과금 체납으로 전기, 가스가 끊겨 청소할 수도 없는 집을 보며 이 죽음을 순수한 자살로 받아들여야 할까? 목숨을 끊은 것은 분명 자신이겠지만, 이 도시에서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권유인 타살...’

인터뷰 영상은 책과 내용은 같았지만, 그 서술의 톤은 달랐다. 인터뷰에선 책 보다 건조한 기사체의 말투였다. 형식, 스타일이 내용을 바꾼다. 인터뷰를 보며 김완은 건조체의 문장으로도 이 책을 잘 썼을 거로 보였다. 그는 미문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과 사회 고발의 비중보다는 개인적 쓰기의 욕망이 더 커서 그런 문체를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문체나 목적은 저자의 자유므로 어느 게 더 우위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책 속의 죽음에 대한 문학적 묘사, 감성적 문체보다 아래 인터뷰에서 본 건조한 문장에 더 큰 울림을 받았다. 완은 유려한 문체만큼 말도 잘했다. 글은 잘 쓰도 말은 어눌한 작가들도 있잖은가. 책의 내용이 복기되는 몇 내용을 인용하며 마친다.

-유독 자살 전에 전화가 많이 온다. 죽기 전에 견적을 묻는다. 많이 오는 전화 중의 하나가 자살하기 전의 사람.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4년째 1위이다.
-5~10월 사이가 유독 고독사가 많다. 가스, 수도 공급 중단 우편물, 압류 딱지. 캐피탈 관련한 딱지들이 우편물에 더 이상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꼽혀 있다.
-고독사는 고령자보다는 50대 남성이 제일 많다. 그 뒤가 40대... 서울시 복지재단에서 조사한 고독사 통계와 일치한다. 일본은 7, 80대 남성 고독사가 많은데 한국은 4,50대 남성이 많고 2,30대도 많다. 고독사는 연령과 무관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이다.

-2019년 1인 가구의 비중은 29.9%로 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무연고 사망자는 5년간 77.4%로 증가해서 2,477명이라고 한다.
-고독사, 자살 현장에 가서 일하는 꿈을 많이 꾼다. 밤에 구더기를 위생 봉투에 많이 담는 꿈을 꾼다. 무엇을 봐도 죽음과의 연관성을 찾고 있다. 공시 철이 오면 공무원 시험 치고 자살자가 늘어난다. 자신이 꾼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고 본인을 너무 차갑게 몰아세우지 말고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죽은 자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처음엔 마스크를 끼지 않는다. 온전히 맡아야 온전한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우울증 약 같은... 그 사람의 생전의 흔적, 그 사람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을 때 정서적 충격을 많이 받는다. 젊은 여성들이 자살을 많이 한다. 자기감정을 다루는 데 많이 지친 분들이 많지 않았을까.--홀로 죽었을 때 그 이후를 쉽게 상상할 수 있게 된 게 확실히 달라졌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죽음의 형상들, 죽음이 남긴 자리를 상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죽음의 관념이 달라지진 않았다. 손과 발로 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훨씬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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