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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Jun 06. 2021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들

약으로 연명하다 약발 떨어지면 죽는 사람들



희비극적 인생과 퇴물 마초들 


이름의 받침자 몇 개를 떼고 들으면 이름이 마치 '저 자식'으로도 들리는 '정차식'이라는 가수가 있다. 중년 사내의 싸구려 고독을 블루스나 뽕끼에 버무려 맛깔스럽게 잘 불러서 노포에서의  한 잔이 절로 생각나게 한다.

6년 전, 만화 제목 같기도 한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라는 천명관의 소설집을 처음 었을 때 그 가수의 노래 중 '<살아 보자>는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세상이 원래 좀 그렇다. 다 편하고 그러면 그게 사는 거가. 뭐 힘들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그런 거지 뭐. 그렇잖아 원래가.


천명관은 좀 더 짧게 얘기했다.

고기는 질기고 소주는 쓰지만, 인생은 그마저도 달달하게 느껴질 만큼 쓰디쓰다.(110쪽)


 천명관의 소설 속 남자들은 연민도 아까운, 참 지지리 궁상의 못난 퇴물 마초들로 넘다. 하나같이 국민 평균 소득이라는 '200만 원'도 못 버는 못난 놈들인데 머지않아 쪽방촌 거주나 노숙으로 동사, 객사하게 될 확률이 높은 놈들이다. 무능력한 가장으로 집에서도 퇴출당한 예비 독거노인들로 뭐 희망할 건더기 하나 없고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는, 오늘 벌어 오늘 먹고사는 하루살이 인생들이다.


실직 후 공원 노숙 동사로 구천을 떠도는 놈 「사자의 서」, 트럭 기사가 로망인 일용직 노동자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처자식 다 떠나고 빚과 파리만 남은 실패한 귀촌지에서 이웃 축사의 개새끼와 개싸움 하는 놈 「전원교향곡」, 마누라 살인해서 수장하고 대리 운전하다 승객으로 만난 살인녀를 집에 데려오는 놈 「핑크」, 인생 뭐 별거 있나?라는 할배와 인생 뭐 별거 하나도 없는 손자의 이야기인 「우이동의 봄」.....


그런데 이 못난 놈들은 하나같이 큰 원망도 없다. 순간순간 억울하고 순간순간 분하지만 술 한 잔 하고 욕 한지기 하고 나면 '뭐 인생 별거 있나?'식이다. 천명관의 주인공들이 보이는 인생관은 희비극적이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 같은 태도다.


인생의 종착역은.... 밤새 고통스러운 기침을 하고, 맛이 고약한 소다를 한 숟가락씩 퍼먹으며 배에 구멍을 뚫어 고무호스로 오줌을 빼내는? 그래서 녹용이 빠져버린 한약처럼 쓰디쓰기만 한?(195쪽)


그러나 그 비극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산 자 모두의 몫이니 엄살떨지 말라고 한다.


얘야, 잊지 마라. 사는 건 누구나 다 매한가지란다. 그러니 딱히 억울해할 일도 없고 유난 떨 일도 없단다.

우리가 서 있는 발밑엔 언제나 슬픔의 강이 흐르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결국 우리가 도착할 곳이 어디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182쪽)


영화적 묘사, 살아 있는 캐릭터


다 잃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사람들의 극단적 결말과 비정상적 선택, 그로테스크한 장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기법과 반어 등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떠올리게 했다. 난쏘•공의 난장이 아버지가 권리는 하나 없이 의무만 남은 생에 짓눌리다 죽어서야 이 무거운 세상에서 비로소 해방됐는데 천명관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이제 죽음의 시간이구나! 비로소 육신을 벗어던진 영혼은 바람처럼 가볍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무엇이든 생전 마음에 와닿는 일 드물었으나 마침내 자유로운 영혼은 활짝 열린 하늘처럼 모든 것을 품어 안는다.「봄, 사자의 서」


 그때나 지금이나 도시빈민 흙수저들에게 '잠'으로 가는 길은 멀고 힘들다. 3교대 근무로 잠이 부족한 공장 노동자들이 낮에는 잠 안 오는 약을 먹고, 밤에는 잠 오는 약을 먹는 난장이 시대의 약물 처방은 천명관이 그리는 지금 세대에도 이어진다.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먹고, 그 후유증으로 또 소화제와 진통제를 먹고, 섹스를 위해선 비아그라를 먹고, 암 예방을 위해 비타민을 먹는다.


사랑의 세상을 꿈꾸던 조세희의 난장이는 굴뚝에서 달나라로 보내는 쇠공을 날리다 추락 자살하고, 오래 살기 위해 강장제를 먹던 천명관의 출판사 영업 부장은 오피스텔에서 자살한다. 마누라를 살인한 놈은 남편을 살인한 년을 집으로 데려와 같이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들 것이다. 고용과 실직의 무한 반복인 일용 노동자의 불안증은 신경 안정제 없인 운전대도 못 잡고, 뼈는 노동에 닳아 소주 없이는 노가다 하루살이 몸뚱이마저 버티기 힘들다. 삶과 죽음, 일과 사랑, 잠까지 '약' 없이는 안 된다. 참으로 엿같은 세상, 인생들이다.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가볍고 기발한 블랙 코미디로 표현하는 건 박민규와도 닮았다. 속도감, 흡입력, 마초은 박민규와 유사했지만 주인공 연령대가 더 높고 성별상대적으로 고루 다룬 점, 글의 힘, 주인공 캐릭터의 선명성 같은 것은 천명관이 더 좋았다. 주로 루저 남자들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하려는 의도적 가벼움에선 비슷하지만 천명관이 좀 더 페이소스가 짙다. 박민규가 집에서 라면에 소주 먹으며 하는 이야기 같다면, 천명관은 뒷골목 선술집에서 막구이 돼지껍질에 소주 마시며 듣는 이야기 같다. 개인적으론 천명관이 더 좋다.


하류층 인생들의 퍼레이드, 극단적 상황과 일상적 비속어는 습관적으로 '시부랑탕~'을 외치던 김신용의 <고백>을 떠 올리게도 했다. 읽는 내내 '이 작가의 글들은 영화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문자의 영상화가 특출다. 다 읽고 누군고?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꽤 한 영화판 경력자였다. 내가 본 영화 중에서도 몇 편 있었고 <고령화 가족>은 꽤 재밌게 봤던 영화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이야기 전개나 구성 속에서 장면 연상이 잘 연상되는 것, 대화 없이 묘사 위주로 이루어진 문장들 속에서도 작중 인물들의 성격, 움직임 등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과 현장감은 영화 작업의 장점이 발휘된 것일 게다. 특히 「핑크」는 영화적 상상력과 반전이 가장 돋보이는 스릴러 장르 드라마 같았다. '핑크'와 전혀 안 어울리는 여주인공의 캐릭터, 피 한 방울 없는 잔혹극은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가 생각났다.


 하층민 찌질이 남자들 틈에서 별책 부록 선심 쓰듯 중산층 지식인 여성 둘을 주인공 시켜 준 글도 두 편 있는데 이들도 정상은 아니다.

불면증과 환청에 시달리는 출판사 편집장, 어린 시절의 가난과 성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로 자신의 삶과 먼 가짜 이야기만 쓰는 소설가처럼 내, 외적 불화를 겪는 인물들이다. ​출판사 편집자, 소설가란 작업 군을 통해 '글'은 진실을 은폐하는데 더 유용한 것인지, 드러내는데 더 유용한 것인지를 묻는다.

「왕들의 무덤」의 정희가 자신, 가족, 이웃과 괴리된 삶만 팬시하게 쓰는 것은 불행했던 과거를 은폐하기 위해서인데 정작 천명관은 불행한 주인공들만 잔뜩 모아 쓴다.


천명관 소설의 정서적 공통점은 못난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가족의 부재, 가장의 경제적 무능력이다. 연민 없는 사랑은 오래가긴 힘든데 사랑 없는 연민은 사랑 없이도 질기게 오래간다. 가족이 그런 연민 중 하나 아닐까? 천명관 소설 속 가족들은 하나같이 다 파탄 났고 그 이유의 중요한 배경은 '돈'이다. '돈'은 뼈에, 마음에, 가족. 집에 '구멍'을 만들고 한 번 뚫린 구멍은 메꿔지지 않은 채 점점 크고 깊은 수렁을 만든다.

 

천명관은 절망에 빠진 인간들의 현재적 상황을 전시만 하지 그 사연, 내막은 생략한 채 비극적 상황을 풍자적 유머로 대체한다. 혹자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절망의 목격담만 잔뜩 보여 주고 그들의 희망, 대안은 왜 없는데?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결말과 희망적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 구성은 고통과 절망은 개별적이며 하루 살이 흙수저 인생들에게 '전망'이 없는 게 현실이라는 작가의 비극적 인생관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에 기반을 둔 가벼운 사소설, 신변잡기적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금에 아직도 이런 '절망의 목격, 재현'을 보여 주는 글이 있다는 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봄에 죽는 사람들


개인으로는 장르물 같은 표제작보다 첫 번째 이야기인 「봄, 사자의 서」와 마지막 장인「우이동의 봄」이 더 인상적이었다. 만물이 소생하고 탄생하는 희망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봄이 작중 인물들에겐 '죽음'과 더 가깝다. 그들에겐 화려하기 짝이 없는 봄은 도무지 현실감이 없다. 그것은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하고 먹어 보지 못하고 가 보지 못하는 세상만 나오는 잡지 광고의 한 장면 같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꿈에서조차 될 수 없는 재벌들 얘기만 주야장천 나오는 TV 드라마와도 같다. 봄은 잡지나 TV 속과 너무 다른 자신(들)의 이질감을 더 크게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인생의 시작과 끝이 교차하는 '봄'을 글의 첫 장과 마지막 장으로 배치한 건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첫 장 「봄, 사자의 서」가 봄날에 길에서 죽은 자가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야기라면 마지막 장「우이동의 봄」은 죽을 날을 받은 놓은 자가 마지막 봄을 보내는 이야기다.


아름다움 속에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손자의 눈과, 나만 억울한 게 아니니 유난 떨지 말라는 할배의 인생 체험이 애잔한 웃음과 위로를 준다.


봄볕이 내리비치는 공원은 생명의 조화로 가득 차 있지만 새들은 결코 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10쪽)
절망과 관능이 뒤섞인, 찬연한 봄날이다.(11쪽)
꽃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215쪽)​


 '재미'와 '상상력'이 소설의 원초적 조건이라는 걸 생각하면 천명관의 소설들은 그 조건에 충실하다. 어떤 문장들을 읽으면 그 문장들이 눈앞에서 영상화되는 현장감과 작중 화자에 독자의 감정이 이입화 되는 공감대 형성력도 뛰어나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와 저잣거리 인생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이 사회적 물음이 더해져서 더 깊고 풍부한 장편으로 다시 보기를 기대해 본다. '자살'과 '노숙', '객사', '가족 파탄'이 개인적 죽음이나 파탄만은 아닐 것이므로-


 쓸데없는 궁금증 하나- 천명관이 만난 이쁜 여자들 중에 '경숙'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있었나? 이 소설집에는 '가난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늘씬한 몸매에 하얀 피부를 가진(197쪽)' 이쁜 여자 둘이 각각 다른 글에 나오는데 공교롭게도 이름이 다 '경숙'이다. (「동백꽃」, 「우이동의 봄」)


어떤 작가의 책을 처음 읽고 다음 책도 다시 읽고 싶어지면 재미있는, 혹은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천명관의 소설집에 나오는 남자들과 잘 어울리는 노래 한 곡 올린다.

https://youtu.be/RQ9qz9IamG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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