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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May 30. 2021

로쟈의 방

죄와 벌에서 본 1인 가구의 주거난

40대에 다시 읽은『죄와 벌』

옛날에 읽은 책을 세월이 많이 흐른 후 다시 읽으면 당시의 감상과 지금의 감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같은 상황과 묘사도 시대 변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도 마흔 넘어 다시 읽었을 때 처음 읽었던 십 대 때는 지 못했던 부분들이 여러 면에서 새 해석 됐다.

인터넷에서 본 그림인데 raskolinikov(소설 주인공의 이름. 로쟈는 애칭이고 라스꼴리니꼬프가 원 이름)라는 것만 표기돼 있고 출처나 작가 이름은 없었다.


『죄와 벌』의 줄거리를 잠깐 훑어보면 이렇다.
주인공 로쟈는 편모슬하의 남매 중 장남으로 지방에서 상경한 가난한 대학생이다. 지방 흙수저인 로쟈가 수도권의 명문대에 다닐 수 있는 것은 고향에 있는 홀어머니와 여동생의 희생과 헌신 때문이다. 장남을 집안 부흥의 투자처로 삼아 집안 여자들이 헌신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공통의 문화인가 보다.

연금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어머니는 몇 푼 되지 않은 돈을 쪼개 아들에게 보내고, 여동생은 입주 가정교사로 번 월급을 오빠에게 보낸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노인이 노령연금을 쪼개 객지의 아들에게 보내고, 비정규직 여동생이 쥐꼬리만 한 월급을 나눠 오빠한테 보내는 상황이다. 여동생은 일하던 집의 학생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요샛말로 하면 갑의 ‘위계’에 의한 성폭행이다.

두 여자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고향의 가족보다 더 극빈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하숙집 월세가 밀린지도 한참 됐고 굶기를 밥 먹듯 한다. 결국, 휴학하고 조금이라도 돈 될 만한 물건 전당포에 맡겨 받은 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어느 순간 전당포 이자는 원금보다 커졌고, 이제는 더 맡길 것도 없다. 세상과 전당포 노파에 대한 극심한 증오에 사로잡힌 명문대생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후의 심리를 세밀하게 추적한 이야기가 『죄와 벌』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그림. 출처, 화가 이름 없이 그림만 있었다. 그림 풍으론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 같은데 확실치 않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죄와 벌>의 로쟈가 떠올랐다.


공간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


『죄와 벌』엔 지금의 한국 상황에 적용해도 별 무리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싱글맘 가정의 빈곤, 연금제도, 갑의 성추행, 흙수저 청년의 도시 주거난, 고액 등록금, 생활고로 인한 사채와 고금리 횡포, 빈부격차, 성매매, 조현병, 살인에 대한 법적 해석과 사회적 해석, 수감자들의 열악한 인권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죄와 벌』을 다시 읽으며 새로 생각한 것은, 공간이 개개인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과 도시 1인 가구가 겪고 있는 ‘주거난’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읽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치밀하고 집요한 심리묘사가 특기다. 그런 심리를 묘사하는 도구 중 하나가 공간 묘사다. 사는 장소, 공간, 쓰는 언어나 문화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읽는데도 책 속 인물들이 지내는 방이 마치 내 눈앞에 있는 듯 상해 마치 내가 지금 거기 있는 것 같다. 작가는 로쟈가 아주 협소하고 열악한 곳에 살고 있다고 여러 차례 말한다. 주인공 본인의 독백은 물론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그가 사는 공간에 대해 계속 말한다. 또 그런 열악한 공간이 주인공 로자의 우울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까지 한다. 몇 장면을 인용해 보자. 

서서 여섯 걸음이면 되고, 누워서도 방문 걸쇠를 벗길 수 있을 정도로 좁고 낮고 더러운 방은 감옥과도 같다. (중략) 여섯 걸음 정도밖에 안 되는 크기의 조막만 한 쪽방이었는데… 천장은 또 어찌나 낮은지 키가 조금이라도 큰 사람이 여기 들어오면 기분이 영 찝찝하고 머리가 천장에 부딪힐까 봐 전전긍긍할 것만 같았다….

방이 어쩜 이렇게 고약하니, 로자. 꼭 관 같구나. (중략) 네가 이렇게 우울증 환자처럼 된 것도 절반은 이 방 때문이라는 확신이 든다. (중략) 그 애 방은 정말 갑갑해서 죽을 것 같더라.

낮은 천장이라든가 비좁은 방은 마음이나 머리를 짓눌러버리게 마련이오.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 민음사, 청림출판에서 인용



집과 방에 대한 고찰


『죄와 벌』이 새롭게 읽힌 것은 수년 전 이직으로 타지인 Y 시에 거주하면서 ‘공간’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뚜렷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족 탈출'을 위해 객지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가게 열고 남은 돈에 맞춰 집을 얻느라 돈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집 구하기 최우선 조건은 ‘직장에서 가까우면서 싼 집’이었다.

다행히 조건에 맞는 집을 빨리 구했다. 8평 내외의 원룸이었다. 싱크대, 냉장고, 세탁기, 미니 옷장, 에어컨이 있고, 방과 싱크대를 분리해 놓은 미닫이문도 있었다. 외면적으론 깨끗하고 심플해서 혼자 살기에는 크게 모자람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 개의 방’인 원룸이 얼마나 불편한 공간인가는 그곳에 산 지 며칠 되지 않아 깨달았다.

싱크대는 너무 작아서 한 번에 두 가지 음식 하기 어려웠다. 왜소한 편인 내가 조금만 분주하게 움직이면 여기저기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싱크대 오른쪽 벽에 창문 하나가 있었다. 문을 열면 바깥 풍경 대신 전방 1m 거리에 또 다른 원룸 벽이 마주 보고 있었다. 영화 「E.T.」의 한 장면처럼 창을 열고 팔을 쭉 뻗으면 맞은편 주거자의 손가락 맞닿을 것 같았다. 한낮 기온이 35℃를 웃도는 여름에도 창문을 열어 놓지 못했다. 좁고 폐쇄적인 구조였던 원룸의 생활은 혼자의 시간을 즐기고 잘 보내는 내게도 고독과 우울이 잠식하게 했다.

사진은 Y 시에 살 때의 원룸이다. 신발장, 냉장고, 에어컨, 작은 농, 세탁기... 나름 빌트인이었다. 좁지만 현관 문도 따로 있었고, 오른쪽 체크무늬 커튼을 밀면 미닫이문이 달린 '어쨌든 부엌' '어쨌든 주방 분리형'의 싱크대가 있었다. 현관문 왼쪽으로 노트북과 책이 놓인 좌식 책상이 있었다. 농과 침대는 사진 맞은편에 나란히 있다. 우연히 농 뒤쪽을 봤는데 벽지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습기가 많아 빨래가 잘 안 말라서 늘 선풍기를 틀어놓고 말렸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웠다. 난방비 아끼느라 최저 온도로 살았는데도 23평 대구 아파트보다 8평의 이곳 가스 요금이 더 나왔다.

원룸을 왜 집(house, home)이 아니라 방(room)이라고 부르는지 직접 살아보면 안다. 단순하고 막연하게 크기와 구조로 연상되던 집과 방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보금자리’, ‘가정, 가족’, ‘공동체’, ‘공동체의 장소’와 같은 따뜻함과 포근함의 정서를 깔려 있었다. ‘함께’ 산다는 것이 큰 의미를 차지했다. 그래서 원룸에 아파트의 모든 시설을 집어넣어도 ‘가족이 함께 깃들이는 보금자리’란 설명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가족의 개념은 ‘부부와 자녀가 있는 법적 혈연 공동체’로 ‘최소 3인 가족’ 이기니까. 그 정의가 못마땅해도 어쨌든 ‘3, 4인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크기와 구조를 갖춘 공간’은 돼야 '집'이란 말이다.

‘방’은 사전에서 ‘일정한 규격으로 둘러막혀 있는 공간’, ‘건축물의 일부’, ‘건물 내부의 구별된 원래 거실적인 부분’ 등으로 설명돼 있었다. 내친김에 ‘쪽방’은 어떻게 설명했는지도 찾아봤다. 성인 한 명이 ‘잘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 놓은 방이라는 설명이 많았다. 보통 3㎡ 전후의 작은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로 운영되며, ‘최저 주거 기준 미만의 주택 이외의 거처’라고도 돼 있다. 방 하나를 쪼개어 쓰거나 일반적인 방보다는 훨씬 작은 생김새와 형성 과정에 따라 쪽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명도 있었다. ‘한 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단신 생활자용’ 유료 숙박시설, 빈곤계층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잠자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모 지역의 가장 오래된 쪽방촌. 구청에서 '쪽방 체험관'을 열려다 주민들 반대로 무산됐다. 기획부서는 <복지환경 도시위원회>였다.


가장 작은 크기의 쪽방에 가장 많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가장 협소한 주거 단위에 가장 길고 많은 설명이 붙어 있다는 것은 가장 많은 문제, 고통이 내재해 있다는 의미라 마음이 착잡해졌다. 집 외의 주거 형태를 설명할 때는 그래도 ‘사는’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으나 쪽방은 한 사람이 ‘들어갈 크기’, ‘잘 수 있는 크기’로 공간의 규모에 집중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쪽방은 사람이 주거용으로 오래 살 만한 곳은 아니고, 보증금도 낼 수 없는 극빈한 사람들이 비와 눈을 피해 들어가서 겨우 잠이나 잘 수 있는 '대피소' 같은 공간이라는 의미 아닌가.

인터넷 부동산에 나온 원룸 좌) 현관 문 열자마자 변기. 우) 싱크대 옆에 변기


『죄와 벌』의 주인공 로자가 사는 곳은 쪽방형 하숙집이다. 내가 살던 원룸은 아파트 ‘거실’보다 작은 공간에 아파트의 전체 구조를 흉내 낸 구조다. 로자의 쪽방과 내가 살던 원룸, 집의 사전적 정의를 읽다 보니 생각이 자연스레 ‘1인 비혼(미혼) 가구’가 겪는 한국의 불평등한 주거 복지정책으로 흘러갔다.

경제적․정서적 변화 등의 원인에 따라 1인 가구 증가율이 다인 가구 세대를 추월하고 있다. 그런데 주거 형태는 다인 가구와 비교해 지나치게 좁거나(고시텔, 원룸), 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이 지나치게 과도한(오피스텔) 양극화로 나타난다. 자신의 소득 수준에서 적당한 임대가 불가능하다는 현실 반영이다. 나도 Y 시에 살 때 처음엔 좀 더 넓고 안락한 오피스텔을 알아봤지만 비슷한 평수에 월세가 거의 세 배 차이라 바로 포기했다.


국가가 지정한 삶의 모델, 4인 가족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세자금 대출 지원 중 영세민 전세 자금은 연 2% 이율, 근로자 서민 전세자금은 연 4.4~5,5% 이율이다. 시중 은행보다 현저히 낮은 이자로 대출이 가능하다. 지원 대상에서 비혼(미혼) 1인 가구는 ‘우선 제외’된다. 이는 다자녀 법적 혼인 가족 중심으로 모든 복지제도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비혼(미혼)의 1인 가구는 인간적인 기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집을 빌리기도, 사기도 불가능함을 반영한다.

이 글을 쓰면서 여러 통계 자료를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의 자가 보유율은 4인 가족은 70%대, 3인 가족은 63%대, 1인 가구는 30%를 겨우 넘는다(2018년 기준). 여기서 항상 모든 평균치를 높이는 상위 소득자 값을 빼면 1인 가구의 자가 보유율은 실지로는 30% 훨씬 아래일 것이다. 모든 복지제도가 그렇듯 주거정책에서도 1인 가구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이런 현실을 반영해 ‘행복주택’ 같은 1인 가구형 임대주택도 내놓았다. 그러나 그 대상이 너무 한정적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가 정한 우선 지원 대상은 ‘대학생,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다. 대학생은 졸업한 지 2년 이내, 사회 초년생은 만 19~39세로 소득 활동 2년 이내, 신혼부부는 결혼한 지 7년 이내인 사람들이다. ‘입주 전까지 혼인 사실을 증명’만 하면 된다는데 얼핏 봐도 신혼부부가 가장 유리한 조건인데 실제 경쟁률도 그렇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쟁률을 보면 청년 122 대 1, 신혼부부 28 대 1, 고령자 14.1 대 1로 소득을 고려했을 때 신혼부부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전체 공공임대주택 경쟁률은 303 대 1인 경우도 있어 공무원 시험이나 대기업 입사 경쟁률은 저리 가라 수준이다. ‘임대주택은 로또 확률’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신혼부부에게 주거비용을 지원해드립니다>


대상: <2017년 혼인신고한 무주택자로 아내가 '만 44세 이하'이고 중위소득 200% 이하인 가정>

4인 가족의 자가 비율이 가장 높고 임대주택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당첨 기준과 확률만 보더라도 현행 주택 지원 정책의 근거가 ‘대학 졸업 후 2년 안에 취직해서’, ‘40세 이전에 결혼’하고, ‘2인 자녀’를 낳은 다인 세대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가 집을 볼모로 개인 삶의 모델을 정해 놓은 셈이다. 결국 대학생이 아닌 20대, 대학을 졸업하고 2년이 넘은 미취업자, 소득 활동이 3년 넘은 30, 40대 무주택자는 국가의 도움을 받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도시의 원룸, 고시텔에서 사는 월세형 주거자 중 상당수는 저소득의 비정규직, 장시간, 야간 노동자가 많다. 회사까지 이동이 편한 도심 근교나 지하철 인근에 집을 얻을 수밖에 없어 소득 대비 주거비 지출이 높다. 정부가 정한 나이, 수입 기준에 모호하게 걸린 청, 장년(중년)의 월세 주거자는 평생 월세로 살 가능성이 크다.
100세 시대에 1인 가구의 증가율은 다인 가구 증가율을 월등히 앞서가고 있다. 이 불공정한 게임에서 '홀로' 살아남으려면 40대가 되기 전에 위장 혼인신고와 위장 입양이라는 편법이라도 써야 할 판이다.

(이 글을 쓴 1년 뒤 실지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388479&code=61141511&cp=nv

경제난과 미혼, 이혼, 무출산 등으로 앞으로 누구나 다 1인 가구가 될 가능성이 훨씬 많아졌다. 1인 가구에 대한 차별은 앞으로 부양과 간병 등 미래의 부담이 남은 가족의 부담으로 전가, 가중될 수 있다. 개인과 가족의 문제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문제, 국가의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다.
국가가 긍정적 삶의 모델을 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제도화해 차별하는 것이 개인 삶에 대한 공권력 간섭으로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국가가 사회 구성원 각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믿음을 주면 결혼이나 출산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삶의 형식의 일부이지 절대 정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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