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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Mar 28. 2024

그림자를 판 사나이

그림자-구별짓기의 표식


6년 전에 읽고 쓴 글로 주문을 잘못해 '주니어' 용이 왔다.


<그림자를 판 페터 슐레밀>

아델베르트 폰 사미소. 아롬주니어.


책 표지 제일 위쪽에는 '책벌레만 아는 해외 걸작'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책을 알아본 나는 졸지에 '책벌레'가 됐다. '벌레 같은' 인간은 참 기분 나쁜 욕인데 '책벌레' '공붓벌레'에는 칭찬의 의미가 들어 있으니 확실히 '글' 우대 세상의 단면 같다. 심지어 '일벌레'란 말에도 칭찬의 이면엔 약간의 경멸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가난한 백수, 그림자를 팔다


먼 항해에서 내린 페터 슐레밀이 가진 것 중 돈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곤 친구가 써 준 취업 추천장이 다이다. 페터는 자신을 채용해 줄 백만장자의 집에 찾아 그의 비위를 맞추며 구직에 전전긍긍하던 중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그곳에선 파티가 열리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마술 같은 장면을 펼치있었다. 참가자들이 뭐가 없다거나 부족하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그 남자는 양복 주머니 안에서 작은 면봉부터 양탄자, 안장 깔린 말 몇 마리까지 척척 꺼내 놓는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고 큰 것들이 어떻게 그 작은 주머니에 다 들어갔는지, 그는 뭐 하는 사람인지 놀라거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채용 확답을 못 듣고 나오던 중 그 이상한 남자가 따라와 "도 줄지 않는 황금주머니를 줄 테니  그림자를 다오"라는 제안을 한다. 안면도 없는 부호를 찾아가 비위를 맞추며 구직을 구걸하던 페터는 그 제안을 쉽게 받아들인다.

악마는 황금 주머니를 넘겨주며 1년 뒤 다시 오겠다, 나를 부르고 싶으면 그 황금 주머니를 흔들라고 말한 뒤 사라진다. 화수분 같은 황금 주머니가 생긴 패터는 예상 밖의 경험을 한다. 그러나 예상외로 황금의 단 맛은 짧고 쓸모없어 보이던 그림자의 자리는 너무 다.


황금은 페터의 인격과 신분을 상승시켜 존경과 칭송을 바치는 사람들이 그를 둘러쌌다. 그러나 그는 빛이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만 한정적으로 움직여야 됐고 자신의 실체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하고 고립된 신세가 된다. 비밀은 오래가지 못해 그림자가 없다는 것이 발각되고 그의 돈과 은혜를 받았던 모두가 등을 돌리고 그를 배척한다. 혼인을 약조했던 집에서는 파혼을 당하고 공금 횡령을 모른 척해 주었던 하인에겐 애인을 뺏기고 마을에선 추방당한다.



그림자? 구별짓기 혹은 소수자의 상징


악마가 지금 내 앞에서 화수분과 네 그림자를 바꾸자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도 페터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나도 그런 화수분을 준다면 '옛따, 잘 보이지도 않고 별 쓸모도 없는 그림자 따위'라며 냅다 바꿀 것 같다.


그렇다면 '그림자'는 이 책에서 어떤 의미일까? 그림자가 무엇인데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갑부가 단지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살던 곳에서 추방당한 것일까?

책 내용을 보면 주인공이 그림자가 없어졌다고 그 자신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일상생활, 희로애락의 감정도 그림자가 있을 때와 같다. 달라진 건 그림자를 가진 사람들 평가와 태도다. 이 책 끝에 붙은 해설서에는 그림자를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자기 존재 가치 중요성'의 상징, '인간 소외'등으로 해석한다. 나는 '그림자'가 '구별 짓기'나 '소수자 차별'의 상징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공장식 다수적 삶이 삶의 표준인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없거나 '없는 것이 있으면' 그들은 '비정상(인)'이 된다. 예를 들면 고아, 장애인, 동성애자, 한쪽 부모 가정, 미/비혼자, 난민.... 등등은 이 사회에서 남들 다 있는,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소수자들이다. 그들은 그들 자체로 아무 이상이 없고 사회적 역할도 잘 수행하지만 양쪽 부모 가정, 팔다리가 멀쩡하게 다 있는 비장애인, 이성애자, 기혼 가족들의 눈에는 '부족한 인간'들이다. 그래, 너희도 우리와 같은 사람은 맞지만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다 하고 사는 게' 없는 '이상한 소수자'인 거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어떤 장애, 주홍 글씨, 낙인이다.


그것은 마치 투명 인간과 같다. 투명한 물체, 대상은 그림자가 없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없는 사람 취급할 때 흔히 '투명 인간' 취급한다고 하지 않은가. 투명인간은 스스로는 존재할 터이지만 남에게는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불투명한' 존재다. 혼자가 아닌 둘 이상 사이는 내가 인정, 인식하는 나란 존재보다는 타인이 '인정' 해주는 내가 더 중요해진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 대다수 남과 다르다는 것은 유사함으로 모여 사는 사회에서 보편성 상실과 상호성 불가로 사회적 격리, 추방의 조건이다.


패터의 비밀을 눈치챈 사람들이 '그림자가 없다고 실토하라'그 강요하는 장면은 여러 약자, 소수자들에게 "진실을 고백해!"라며 커밍아웃의 고백을 강요하는 장면 같기도 했다. 동성애자들에게 성적취향을 고백시키고 가난한 아이와 노인들에게 가난증명서를 요구하고 너거 아버지 뭐 하시노 따위를 묻는 모든 강제적 커밍아웃 말이다.


이미지-픽사베이


돈보다 중요한 소속감


그림자는 내가 다시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과 욕망을 주었어 (93쪽)
네가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리고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그림자의 가치를 인정해야 해. 그다음이 돈이야 (155)


그림자나 그림자의 상실을 내면성으로도 해석하던데 책 속 대화를 곱씹어 보면 그림자는 오히려 어떤 외적 상징이다. '돈보다 중요하다'는 그림자는 눈에 안 보이는 영혼, 정신, 소외감 같은 내면이 아니다. 사람들이 패터를 배척한 이유는 모두가 가졌고 모두의 눈에 보이는 그림자, 즉 외면적 이유로 페터를 배척한 것이다. 그림자는 너와 내가 '같은 부류'라고 서로 인정할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이자 '내가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갈 수 있는' 보편적 인장 같은 것이다.


또 이 책은 돈의 가치나 중요성을 비하하지 않는다. 부자일수록 그림자가 더 필요하다고까지 한다. 돈보다 중요한 건 사회적 '소속감과 타인의 인정'인데 부자들일수록 그런 게 더 필요하다는 다. 많이 배우고 모으는 것들이 결국 '인정 욕구'인데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부나 지식은 별무소용인 것.


-그런 꾸며진 모습은 부자인 사람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것이었고 (45)
-이 세상에서 황금이 사람의 공적과 덕성을 뛰어넘는 가치를 갖게 될수록, 그림자는 황금보다 더욱 큰 가치를 갖게 된다는 사실 말이야(27)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그림자를 가져야  하는 거야(121)


샤미소가  묘사하악마는 흔히 우리가 만화나 영화에서 익히 봐 왔던 모습은 아니다. 약간의 마술을 부리긴 하지만 절대적 힘의 소유자로 주로 어두운 데서만 활동하거나 무섭고 흉악한 외형의 소유자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외형을 가졌다.

악마는 사람들이 그림으로 그리는 것처럼 그렇게 검은색이 아니지요 (118)


천사, 선은 노력해도 안 보이고 악마는 노력하지 않아도 늘 인간 곁을 배회한다. 악마들의 공통점은 '유혹자'라는 거다. 악마들은 인간들을 심판으로 파멸시키지 않고 유혹으로 파멸시킨다. 유혹의 속삭임은 달콤하다. '악으로 가는 길은 호의로 가득하다'는 말도 있듯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오는 뱀'처럼 다가와 갈등과 선택을 유도시키고 그게 다 네 선택과 책임이라는 자책까지 덤으로 준 뒤 스스로를 파멸시키게 한다.

  

산책하면서 만나는 사물의 그림자를 자주 찍는다


악마가 머무는 곳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이 뒤늦게 그림자의 중요성을 깨닫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 법! 자책과 깊은 절망에 빠진 페터에게 1년 만에 다시 나타난 악마는 새로운 조건으로 유혹한다.  "그림자를 돌려줄 테니 이번엔 니 '영혼'을 다오. "


악마는 페터에게 그림자를 시 대여해 줘서 다시 그가 사람들 속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단 맛을 게 하고 투명 망토로 사람들 눈에 안 보이고 편하게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신세계를 경험하게도 한다. 모습을 바꿔 가며 불쑥불쑥 나타나 끊임없이 유혹하는 악마에게 지친 페트는 "이 황금 주머니를 줄 테니 그림자를 돌려달라"라고 하지만 악마는 꼭 영혼으로 받으려 한다.


1년 전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된 페터는 악마의 유혹에 다시 흔들리지만 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다. 황금주머니와 악마를 동굴 아래로 같이 던져버린 에야 악마는 비로소 그의 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악마가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은 페터가 황금 주머니를 계속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특히 부자들이 나(악마)와 잘 지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125)


페터가 그림자와 황금주머니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 영혼을 지킨 것을 '영혼구제'나 '신의구원'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 글 어디에서도 신을 찾는 장면이 없으며 원망과 감사도 없고 대답을 구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페터 스스로가 결정하고 후회하고 책임진 것으로 이는 '신으로부터의 자기 구원'이 아니라 어떤 선택과 결과도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단독자적 선택'으로 읽혔다.



마술 신발은 오늘날의 컴퓨터 키보드


페트는 영혼은 지킬 수 있게 된 대신 무일푼이 됐고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 여전히 그는 빛이 없는 시간과 장소만 골라 다니며 고된 이동을 한다.

오랜 떠돌이 생활로 신발이 해져서 새로 하나 사 신었는데 이게 한 걸음에 7마일을 가는 마술 신발이지 뭔가! 몇 걸음 움직이니 북극이고 또 몇 걸음 움직이면 아프리카다. 얼음 산이 눈앞에 있나 싶더니 초록 풀밭으로 바뀐다.

페터는 걸음을 늦추기 위해 7마일 장화 위에 평범한 슬리퍼를 덧 신고  세계 곳곳을 쉽게 옮겨 다니며 지구의 자연과 기후를 연구한다. 패트는 사람들 속에 있을 때보다 혼자 자연을 연구하면서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페터가 우연히 얻게 된 '7마일 신발'에서 나는 요즘의 인터넷망을 떠 올렸다. 페터의 7마일 신발이 세계를 넘나들고 갖지의 정보와 지식을 채집하고 연구하는 유용한 도구라면 오늘날의 인터넷이 그렇다. 페터의 마술 신발은 컴퓨터 키보드와 별 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페터가 마술 신발을 신고 발로 이동했다면 우리는 방 안에 앉아서 마술 기계를 손으로 세계를 이동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고 보면 마술 양탄자, 마술 신발, 슈퍼맨의 마술 망토 같은 것은  이 세상과 우주를 더 많이 더 빨리 이동하고 싶은 인간 상상력의 작품인데 그것이 현실화된 것이 비행기, 우주선, 인터넷 같은 것일 게다.



체험적 이야기와 루소의 산책자적 자족감


주인공 페터는 자의적인 유목민, 방랑자가 아니다. 세계가 내 집이지만 기다리는, 돌아갈 곳은 없는 몸이다. 남들한테 다 있는 그림자의 상실로 사람들한테 배척돼서 어쩔 수 없이 난민, 망명적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림자를 팔고 나서 모든 인간관계에서 소외된 주인공 페터가 사람들을 떠나 홀로 세계 곳곳을 떠돌며 자연 연구와 관찰 속에서 내면의 평화를 얻고, 친구인 (작가) 사미소에게 자기 이야기를 널리 알려달라는 편지글 형식인 이 책은 여러모로 저자 베르트 폰 사미소의 실지 삶을 연상시켰다.


저자 사미소는 프랑스 귀족 출신으로 우리로 치면 취학 연령기에 '프랑스혁명' 발발로 독일로 망명했다. 베를린 대학에서 의학, 자연과학을 공부했고 그 뒤 시와 소설을 쓰고 펴 내면서 독일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런데 이런 망명 작가들의 일생을 전해 듣다 보면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유럽 문학사를 보면 몰락한 귀족들이 망명한 경우가 많던데 그들은 자국도 아닌 타국에서 무슨 다른 경제적 활동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공부를 하고 생활했을까? 책을 낼 동안 무슨 돈으로 먹고살고 공부했을까? 망명이라는 것이 야반도주나 같을 것인데 평생 먹고 살 금은보화를 짊어지고 도망가기는 힘들었을 것이고 인터넷 뱅킹도 없었을 시절 아닌가? 그 당시 유럽 대학은 공부에 열의나 소질이 있으면 경제적 루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공부와 취업의 기회를 개방한 것일까? 그들이 망명 전에 귀족이었거나 저명한 저술가여서일까?  


책과는 별 상관이 없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저자 소개로 돌아가니 모두가 알 만한 대표작으로 슈만 작곡인 <여자의 사랑과 생애>의 원작자이다. 주인공이 그림자 없는 운명에 순응하고 소속의 갈망과 소외감에서 벗어나 자연 연구로 마음의 평안과 자족감을 얻게 되는 장면은 세속과 떨어진 자연 속에서 내면의 평화를 찾은 루소의 도피적 삶을 떠 올리게도 한다.


이 지상에서 모든 소망을 잃었기에 그곳에서 더 이상 마음의 양식을 구하지 못한 내가 조금씩 내면 속에서 모든 양식을 구하는 일에 익숙해져 갔던....
파란만장한 사회생활이 불러일으키는 지상의 온갖 집착에서 해방된 내 영혼은 자주 대기 위로 날아올라...
나는 그들을 미워하기보다 그들을 증오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더 이상 탐지해내지 못할, 세상에서 까마득히 잊혀진 한 은신처에 있다고 생각하고는 마음 가는 대로 몽상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내면에 대해 골똘히 성찰해 봄으로써 그것에 더 나은 질서를 부여하고 그것에 남아 있는 악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된다면 내 성찰은 결코 쓸모없지 않으리라. 비록 이 지상에서 내가 쓸모없는 존재일지언정 나는 남은 날들을 완전히 낭비한 것은 아니리라.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같이 읽으면 좋을 책


황정은. <백의 그림자>

같은 그림자 이야기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른 황정은의 그림자 이야기. 이 책에선 사람이 '없는 존재'로 취급받을 때 그림자가 '일어선다'. 더 이상 살 의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그림자는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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