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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Feb 06. 2019

'삼중당 문고'하면 장정일!

삼중당 문고 속 우리 동네


아마 지금의 3, 40대 이상되는  한 때의 문학소녀, 소년들 집에는 문고판 서적 한 두 권쯤은 다 있지 싶다.  70년대 문고판 주류 세대가 아닌 나도 삼중당 문고를 비롯해 삼성, 범우, 을유 등의 색 바랜 문고 도서가 몇 권 있으니.

'삼중당 문고'가 사라졌다는 어떤 글을 읽다가 장정일의 시 <삼중당 문고>가 생각났다.  범우사 문고 하면 법정의 <무소유>가 생각나고, 삼중당 문고 하면 장정일이 생각난다. 그 시의 내용 대부분은 작가 장정일의 자전적 삽화인 데다, 나오는 지명과 상호가 내가 사는 곳의 이름들이라 더 친근하고 재밌게 읽혔다. 문화 예술이 서울 집중화되고 작가들도 서울 태생, 거주자가 많아지면서 책 속에서 지역적 특색을 느끼거나 지방민들이 동향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더 이상 누리기 힘들게 됐다. 나만 책 속에서 이런 촌스러운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장정일도 『독서일기 1』중 <서커스가 지나간다>에서 이런 친근함에 대한 토로를 한다.


내가 대구에 살 때 서울이 무대가 되는 소설은 읽기에 항상 껄끄러웠다. 그러나 서울로 이사 와서 서울 지리를  알게 된 후 서울이 무대가 되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처럼, 모디아노는 파리를 아는 사람에겐 기쁨을 주지만 파리에 문외한인 독자에겐 무덤덤하게 느껴진다.    


작가 이력, 소개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장정일의 최종 학력은 중졸이다. 삼중당 문고라는 시에 보면 그의 짧은 학창 시절에 대한 회상이 몇 번 나오는데  그가 다녔다는 중학교는 우리 동네 인근이다. 장정일은 우리나라 실종, 미제 사건 중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은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의 그 소년들이 다니던 중학교 선배다. 살아 있으면 아마 나 보다 나이가 더 많을 그 소년들이 개구리 잡으러 갔다가 사라진 산이 우리 아파트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 곳으로 봄, 가을의 내 주요 산책 코스다. 한 번은 나도 그곳에서 평소 가지 않던 낯 선 길로 들어섰다 길을 잃어 몇 시간을 헤맸다. 출입구를 겨우겨우 찾아 내려오니 행정 구역이 대구에서 달성군으로 바뀌어 있어서 깜짝 놀랐었다. 등산하고 내려와서 샤워한다고 세수도 안 하고 폰도 두고 빈 손으로 산에 올랐던 참이라 돈 한 푼 없어 몇 시간을 낯선 국도를 따라 걸었던 기억도 벌써 몇 년 전이구나.

산을 오르며 가끔씩 사라진 그들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사라지거나 죽은 사람은, 수십 년 후에도 없어진 그때의 나이와 모습으로 기억되는 게 당연하면서도 묘한 애상에 젖게 한다. 이 외에도 시 속에 언급된 '교도소'는 십수 년 전 살던 동네 길 건너에 있던 곳이고 '계대'는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두 세 정거장 되는 곳, '앞산'과 '문흥 서림'도 최소 몇 번은 갔던 곳이라 시에 대한 친근도나 몰입도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었다. 얼굴 모르는 동네 선배쯤 되는 셈이다.

시 속의 '계대 불문과 용숙이'는 훗날, <독서일기>에서 '안방 문 꼭 닫고 숨은' 장정일 대신 헌 책방 주인과 책 값 흥정을 해 주는 그의  아내가 된다.


보통 사람은 살면서 자기소개서,  보고서 한 장 쓰기도 힘든데, 장정일은 문학 전 장르의 글들을 다 냈고 대중적 문학적으로 일정부분 다 인정받았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나 시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장정일의 첫 소설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인데, 그 책이 그의 첫 소설인 걸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의 작가 프로필에도 그 책은 생략된 채 나온다.  작가의 요청으로 절판됐다는 글을 읽었던 것 같고, 출판사에서 받은 선인세로 인한 압박감으로 쓴 소설이라 장정일이 자기 문학사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라 거론하길 꺼린다는 얘기도 들었던 같다. 나는 꼭 그 이유 때문에 장정일이 절판을 자청한 것은 아니라는 짐작을 얹어 보지만 공교롭게도 내게는 그 책이 있고 무려 '초판본'이다. 소문에 의하면 2,600 원이라고 찍힌 이 책은 지금 희귀본이 되어 십만 원에서 삼십만 원까지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20대 초,  중반 포스트 모던이라는 생소한 명칭이 한국 문화 예술 전반을 휩쓸던 시절에 제법 그의 애독자였다. 서점 주인이 되고 싶어 장정일처럼 서적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그때 내 생애 가장 많은 도서 구입비를 지출했다. 취향과 근무 환경이 맞아떨어져 수중에 모인 책 중 하나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였다. '퀴어'는커녕 동성애라는 말도 흔치 않던 시절에 내가 읽은 한국 문학사에선 최초로 교도소 성폭력,동성애를 소재로 한 글이었다. 희곡, 시, 소설 전 장르 신춘문예 등단과  거대 출판사의 문학상을 받은 이력답게 200쪽의 얇은 이 책은 소설, 시, 희곡, 에세이 전 장르를 넘나 든다.

책머리에는 "해체란 삶 자체를 일컬음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가리켜 해체주의라고 부르기 훨씬 이전부터 나는 해체주의자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소설'로 분류된 이 책의 작법이면서 작가 삶의 태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어둡고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재기 발랄 키치 한 농담처럼 그리는 게 장정일 소설의 특장인데, 이 소설은 시종 암울한 데다 당시로는 흔치 않던 소재에, 장르 해체적 문체로 판매율도 저조했던 걸로 기억한다. 자전적 요소가 많은 그의 글 중에서도 내밀한 부분이 많다. 그가 절판을 요청한 데는 이런 강한 자전적 요소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해 본다. 실지로 책 후기에도 자전성이 어머니와 친지에 대한 누가 될까  염려되고, 그 방편으로 장르 해체, 혼종의 작법을 썼다는 말도 나온다.


김신용의 소설, 김기덕, 양익준 영화의 어떤 면에서 장정일과의 유사성을 느끼곤 했다. 국문학, 문창과, 영상 영화학 같은 문학, 영화계의 대체적 지정 코스는커녕 정규 교육도 아주 짧게 마치고 만 자들 특유의 투박함과 거침, 무형식과 무질서 속에 깃든 자유, 주류에 대한 냉소와 스스로에 대한 위악 같은 것이다. 문학과 영화를 독학으로 했다는 외부적 공통점 외에 남자, 그중에서도 특히 아버지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정서가 '내 아버지는 개새끼'라는 어린 시절의 증오를 예술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것, 장정일은 이 속에선 예외적으로 하일지나 홍상수 류의 지질한 예술가를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자기 작품 속 남자 주인공이 폭력적이고 못 난 진짜 '나쁜 남자' 일색인 것, 그게 자신에 대한 혐오의 한 반영이라는 것, 호감을 표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거나 서투르다는 것, 위선보다 위악이 차라리 진실하다는 게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라는 것이었다. 훗날 그들보다 정규 교육을 좀 더 많이 받은 박민규나 천명관에게서 장정일의 작법, 키치와 위악을 발견하기도 했다.

내가 이제 그런 류의 소설, 영화에 심드렁해진 것처럼 재기 발랄한 위악의 청년 예술가들도 환갑을 넘은 노년이 됐고 세상과 문학에 대한 그들의 증오나 태도에도 힘이 빠졌다. 이제 김기덕의 영화는 한 해에 세계 3대 영화제 상을 다 받는데도 보지 않을 것이지만, 아직 장정일의 글을 읽기 위해 한국일보를 가끔 뒤진다.


딴짓하다 수 십 년을 허송세월 하고도 여전히 내 일을 찾지 못한 나는, 이런 잡글을 쓰면서도 애초의 출발에서 딴 길로 새서 여기까지 와 버렸다. 애초의 삼중당 문고나 다시 읽어 보자.

삼중당 문고에 대한 헌사인 이 시의 백미는 마지막 시구(詩句)다.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뱃대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삼중당 문고


열 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 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 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 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 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 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대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왔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빧다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흥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고시공부 때려치우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 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뱃대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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