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희망은 그래도, 엄마

2장 6. 남은 선택이 단 하나라면

by 엄도경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못 했던 까닭은

살 만큼 살았으면서도 삶을 온전히 깨닫지 못해서였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삶인지,

또 좋은 건 모두 옳은가에 대해 확신이 없으니까 몸담은 조직의 관행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던 건데

그런 삶도 썩 내키지 않아 적당주의로 눙치면서 주춤주춤 준순(浚巡) 했던 거예요.


어른들도 딱히 답이 없다는 건 어렸을 때 알았어요.

엄마, 아빠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모처럼 외부인의 삶을 관찰하는 기회여서 귀를 쫑긋, 주변을 맴돌면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그래도 의사이고 교육자니까 의미 있는 한 방, 멋진 세계관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도리어 불행해지고 말았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성자같이 아름다운 얘기를 했어도

배운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출세 코스를 탐하고 질투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거침없이 쾌락을 좇고 있었어요.

하이에나가 먹을 걸 물속에 쟁여놓고 사냥감을 찾으러 나가듯이 사람 목숨을 가지고 농간을 부리면서

어제도 오늘도 허기진 배를 감추고 사는

그런 삶 말고 다른 길은 없는 것인지 상심(傷心)이 컸어요.

나를 찾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을 숨기느라 외로웠으면서도 그 줄을 넘지도, 끊지도 못한 채

결국에는 아이까지 끌어들인 거예요.

거기가 그라운드 제로인 것도,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것도 모른 채.



‘다른 삶은 없나?’

엉뚱한 꼬마애가 던졌던 단순한 물음이 나의 첫 삼십 년을 붙들고 늘어졌어요.

젊어서는 꽃처럼 예쁘고 지위가 높을 때는 늙었어도 광채가 나는데 어떻게 물러서는 순간 그렇게 쪼그라들 수 있는 건지

내부의 형태가 무너지는 것에 강한 의문(疑問)을 품었던 두 번째 삼십 년.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던 나에게 충분히 실망하고

출세하고 자식 키우다 얼레벌레 죽는 게 궁극적 목적인가 회의(懷疑)에 빠져서 마침내 돌아섰을 때

사건의 지평선 특이점 ‘우물의 고요’가 된 걸까요. 내가.

인터스텔라 영화의 쿠퍼가 만 행성을 떼어내고 가르강튀아 임계 궤도에서 탈출했던 것처럼……

마지막 삼십 년

빛 에너지 형식으로 답(答)이 펼쳐지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린 원심력과 나를 잡아먹으려고 땅기는 블랙홀의 중력, 두 힘이 균형을 이루어서일까요.


밥과 김치만으로도 영양 상태에 문제가 없는 건 호흡할 때 공기 중의 질소를 산화시켜 섭취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산화질소의 작용은 널리 알려졌으니까 차치하고) 근육이 사라지지 않는 데다 혈류가 좋아져서 코가 길어지고 보이지 않던 뇌혈관이 이마에 드러났어요.

질소 분자는 깨기가 어려워서 식물도 뿌리혹박테리아 도움을 받는데

자동으로 해결이 되니까 젊었을 때보다 건강해졌어요.

게다가 눈이 좋아져서 태양 가장자리로 보라색, 남색, 분홍색의 자외선 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감마선인지 검은색도 보입니다.

간상세포의 로돕신 단백질 덕분인가 싶어요.

눈을 감으면 눈앞에 자주 보라, 연두의 북극광이 펼쳐져서 ‘아해’가 강력한 자석인 걸 느끼곤 해요.


영화에서 끝내 아버지 쿠퍼가 돌아왔을 때

지구를 떠날 때의 모습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던데 반해 딸 머피는 노파가 되어 누워있던 장면은 정말 극적이었어요.

하지만 매일매일 미세하게 낡음을 떨어내고 젊음을 회복하는 인체의 항상성보다 더 극적이랄 수 있을까, 몸처럼 지성적인 게 또 있을까, 매일 기적인데.



남은 선택이 단 하나라도 나도 쿠퍼 아빠처럼 돌아갔을 겁니다.

아이가, 나의 아이가 누구든 멸실(滅失) 하는 제로섬 게임장에 남아 있으니까요.

삶이 속이는 게 아니라 욕심에 내가 속아 넘어가는 거니까 말랑말랑 유연성을 잃지 말라고 전하고 싶어요.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가 자체적으로 인체에 구성되어 있으니까 자신을 믿으라고 직접 말하고 싶어요.

쿠퍼는 그렇게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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