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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H Sep 26. 2021

도쿄 회사원은 점심에 무얼 먹나 (1)

마루노우치



사람은 먹기 싫어도 매일 끼니를 챙겨야 하고,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 이상 회사원들은 점심을 사 먹어야 한다. 물론 매일 도시락을 챙기는 옵션도 있긴 하지만 나는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인간이 아니다. 지금은 전면 재택근무라 오피스 라이프, 특히 점심시간과 커피 브레이크가 그리워서 이 글을 써본다. 



회사 오피스는 마루노우치에 위치해 있다. 마루노우치(丸の内)는 현재 일본 황궁과 도쿄역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다. 황궁은 원래 에도막부의 에도성이 있던 자리로, 그 방어용 해자 혹은 성벽의 안쪽 지역(성벽을 의미하는 曲輪-쿠루와-를 원을 뜻하는 丸-마루-라고 부르기도 함)을 마루노우치라 부른다. 굳이 서울 지명에 빗댄다면 사대문 안 지역에 가깝지 않을까. 참고로 '마루노우치'는 성곽 내 지역을 가리키는 일반적 명칭으로, 일본 전국에 동일한 지명이 여럿 존재한다. 


1590년대에 에도성을 축조할 때까지만 해도 이 마루노우치 지역은 도쿄만(湾)의 일부였고, 매립이 진행되면서 이 지역에는 다이묘들이 에도에 상경할 때 머무는 집들이 지어졌다고 한다. 1868년 메이지유신 당시에 에도막부는 유혈사태 없이 에도성을 유신세력에게 양도했고, 이후 막부의 쇼군이 기거하던 에도성에서 천황이 기거하는 황궁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도시의 명칭 또한 유신 당시 천황이 기거해오던 교토를 기준으로 에도를 두 번째 수도로 지정하면서 도시의 명칭이 에도(江戸)에서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로 도쿄(東京)가 되었다. (중국 명나라 시대에 수도 천도를 단행하면서 북경과 남경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게 연상되기도 한다) 


도쿄만 매립 역사를 보면 전근대 시대에도 매립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아래 지도를 보면 갈색으로 표시된 곳이 원래 육지였던 곳이고, 보라색 지역이 1880년 이전에 매립된 곳이다. 워낙 매립된 지 오래되어 일본인들도 이 지역이 매립지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도에서 왼쪽 위에 해자로 둘러싸인 곳이 황궁이며, 황궁에 인접하여 길게 뻗은 보라색 매립지대가 바로 오오테마치~마루노우치~히비야~긴자 지역이다. 마루노우치는 메이지유신 직후 육군이 점령하여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등 약 20년 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고 한다. 그러다가 1890년에 육군 병영이 이전하면서 이 지역을 미쓰비시에게 팔았고, 그 이후 빨간 벽돌 건물 등 근대 유럽을 연상시키는 건물들을 짓는 등 부동산 개발이 이루어졌다. 1914년에 일본 교통의 중심인 도쿄역이 준공되면서 마루노우치 지역은 명실상부 일본 경제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 지역은 지금도 대부분의 부동산을 미쓰비시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미쓰비시 계열사들의 본사가 대부분 위치해 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 위키피디아 마루노우치 일본어 페이지)


도쿄만에 인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도쿄에는 매립지가 다수 존재하며, 매립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지닌 마루노우치와 그 일대(오오테마치~마루노우치~히비야)는 서울로 따지면 광화문~시청~을지로 일대와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구 권력의 중심에 가장 인접해 있는 오피스빌딩 밀집지역이라고 할까. 실제로 각종 정부청사가 밀집해있는 카스미가세키(霞が関)와도 가깝다. 미쓰비시에서 부동산 재개발을 하면서 오피스 빌딩들의 저층을 상업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기에 최근 지어진 건물들에는 대부분 마루노우치 분위기에 맞는 레스토랑들이 많이 입점해있다. 최근 새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더라도 1층과 지하는 대부분 음식점들이 입점해 있어 일대 직장인들의 끼니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금전적, 시간적 측면에서 보면 매일 점심을 식당에서 먹기에는 무리가 있다. 


식당에 가서 먹기
지하 식당가나 야외 푸드트럭에서 파는 도시락 사다 먹기 
편의점에서 때우기 

 

보통 회사원들이라면 이 3가지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거의 매일 회사 사람들이랑 식당에 가서 먹었는데 여기서는 혼자 먹고 싶을 땐 혼자 먹고 대충 때우고 싶을 땐 대충 때우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런 느낌. 물론 회사마다 문화나 분위기가 다를 수도 있다. 우리 회사 같은 경우는 코로나 이전에도 아침 출근시간이 비교적 자율적이었고, 점심시간에도 꼭 프로젝트 멤버랑 먹기보다는 본인 스케줄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분위기였다. 점심시간을 동기나 여타 회사 사람들과의 인적 교류 시간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미팅이 계속 잡혀 있거나 할 일이 많으면 도시락을 사 와서 먹으면서 한다거나. 


도쿄에서 출근하면서 가장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던 건 회사원들을 타깃으로 하는 식당들이 판매하는 도시락. 이 식당들은 10시~11시면 도시락을 쌓아놓고 점심 영업을 준비한다. 가격대는 메뉴에 따라서 다양한데 진짜 저렴한 곳은 600엔 정도부터 시작한다. 물론 600엔이면 밥양이 많고 반찬이 튀김류인 경우가 많아서 탄수화물 폭탄 도시락인 경우가 많다. 영양 밸런스를 생각한다면 800엔~1200엔 정도 선에서 도시락을 구입할 수 있다. 쌓여 있는 도시락 양을 생각하면 매장 내 식사보다는 도시락 장사가 점심영업의 메인이라 볼 수 있을 정도다. 아예 도시락 테이크아웃만 전문으로 점심영업만 하는 매장도 있고, 점심 도시락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는 푸드트럭도 있다. 푸드트럭 장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도쿄 내에 여러 군데 있는 모양인지, 매일 푸드트럭이 달라졌다. (체감상 같은 곳에 주 1-2회 정도 방문해서 장사하는 느낌?) 푸드트럭의 경우 대개 600엔-800엔 정도였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 실제로 연수 중에는 도시락을 자주 사다 먹었는데 사진은 딱 한 장 밖에 안 남아있어서 아쉽다. 


도시락 진짜 많이 먹었는데 사진은 이거밖에 없다. 카레도 맛있었고 위에 토핑들도 맛있었는데 이날 이후로 이 푸드트럭을 본 적이 없다...


편의점에서 때우는 식사도 한국에 비하면 식사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다. 빵이나 삼각김밥은 기본이요, 도시락이나 샐러드도 양과 영양소, 가격대에 따라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당질 제한(탄수화물 제한) 식단을 찾는 수요가 많아서 단백질과 식이섬유 메인인 도시락도 눈에 띈다. 닭가슴살이나 두부봉, 프로틴 음료 등도 어딜 가나 기본적으로 볼 수 있는 상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한국에 있을 때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면 말라비틀어지고 쩐내 나는 쌀에 자극적인 반찬 때문에 한입 한입 먹으면서도 몸이 썩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일본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은 그런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정도. 재택근무인 지금도 가끔씩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샐러드류와 탄수화물 제로인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나베 종류를 애용한다. (원래 탄수화물을 매 끼니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


세븐일레븐 식품매대. (출처: https://md-next.jp/13575) 최근 일본 편의점 업계는 신선식품 폐기량과 신선식품 배송과정의 탄소배출량 감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식당에 가서 먹는다고 하면 돈카츠 라멘 카레부터 시작해서 중화요리나 태국요리,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 선택지가 꽤 다양하다. 오피스 밀집 지역이라 직장인들이 타깃 고객층이기 때문에 대부분 800엔~1200엔 정도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한국처럼 초저가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는 거의 없고,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가 저렴한데 이것도 200엔 정도였던 것 같다. 종로에서 식사에 저렴한 커피까지 1만 원 정도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물가는 비싼 편이다. 편의점 간식이나 근처 디저트 가게에서 주전부리를 생각 없이 사 먹다 보면 하루에 끼니 때우기로만 3000엔 쓰는 건 일도 아니다. (회사 바로 근처에 에쉬레와 피에르에르메 매장이 있어서 당 떨어지면 마카롱이나 마들렌을 사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도 사서 들고 들어오곤 했는데 1000엔은 우습게 깨진다.)


회사 옆 건물 지하상가에 있는 식당. 그리스? 지중해? 중동? 그쪽 계열이었던 것 같다. 맛은 무난하게 맛있었던 기억. 
회사 옆 건물 지하상가에 있는 마파두부로 굉장히 유명한 중식당에서 파는 국물 없는 도삭면.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마파두부집. 사진에 안 보이지만 안에 부드러운 두부 한 모가 통째로 들어있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요즘도 스트레스받을 땐 이 마파두부가 당긴다. 
회사보다 도쿄역이 더 가까운 오피스 빌딩의 한식당 부대찌개. 가게 이름이 수라간이었던가.. 한국 맛이었다. 감동 ㅠㅠ
도쿄엔 카레가 메인이 아니어도 메뉴에 카레라이스가 있는 가게가 꽤 많다. 여기 카레는 치즈랑 어울리는 부드러운 맛. 
회사 건물 지하 정식집. 여기 밥이 참 맛있다. 이 날 먹은 건 유자소스 가라아게 정식이었던가? 맛있었다. 
위와 같은 식당 다른 메뉴. 가지와 돼지고기를 일본 된장으로 볶은 것. 맛있지만 간이 좀 많이 셌던 기억이... 
회사 근처 런치메뉴 파는 이탈리안 식당. 연수 프레젠테이션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팀 런치! 
매일 바뀌는 오늘의 파스타가 단돈 1,000엔. 얘가 오늘의 파스타였던 것 같다. (아닐 수도)
회사 건물 지하 태국 식당 그린 카레. 안 그렇게 생겨서 꽤나 칼칼한 맛. 다 먹으면 은근히 배부르다. 
위에 식당이랑 같은 가게 다른 메뉴. 사진만 보면 맛있어 보이는데 얘는 그저 그랬던 기억이.. 


사진을 보니 또 마파두부가 먹고 싶다. 재택근무가 편하긴 하지만 오피스 출근하던 시절이 그리운 이유는 아마도 점심식사가 아닐까? 동기들이나 회사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던 점심식사와 그 시간들은 온라인 교류로는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100% 재택근무로도 회사는 돌아가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주 1-2회 정도 오프라인에서 얼굴 맞대고 일을 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예상하는 것도 인간 대 인간의 교류는 줌이나 팀즈로는 절대 대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팀원들과 주 1회 팀 런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 커버 사진은 어느 여유로웠던 날 회사 근처 가게에서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으며 찍었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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