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시기
언제부터였을까요? 제가 책에 관심을 갖고 책을 좋아하게 되었던 시기가.
최초의 기억은 국민학교(저는 국민학교를 1994년에 졸업했습니다. 2년 후에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었지요.) 교실에서였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분교를 다니고 있었으며 두 학년을 합반해 가르치고 있었던 선생님은 학교가 파하기 직전, 공지사항을 알리기에 여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학급도서가 새로 들어온 날이었고 교실 앞문 옆에 꽂힌 그 책 목록을 선생님께 들키지 않고 훑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부 처음 보는 책이었고 그 책들을 어서 읽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새로 들어온 책들을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먼저 채 갈까봐 조바심이 났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드디어 선생님의 말씀이 끝났고 저는 순식간에 책장으로 달려들어 새로 들어온 책들을 손에 쥐고 선생님께 이 책을 빌려가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습니다. 다행히 허락이 떨어졌지만 가방에 한껏 쑤셔 넣은 그 책들을 가져갈 일이 걱정되었습니다. 학교와 우리 집의 거리는 당시 제 걸음으로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그나마 버스가 있어도 15분 정도 타고 가다 정류장에서 내려 또 15분 정도를 걸어야 도달하는 두메산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들을 어떻게 들고 갔는지, 그 책이 무슨 내용으로 채워졌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다음날 담임선생님께 독서카드를 가지고 가서 이 책들을 다 읽었노라고, 확인 사인을 해달라고 자랑스레 내밀었습니다. 당시에 선생님께서는 양면에 각각 20권씩 숙자가 적힌 독서카드를 만들어서 읽은 책 제목을 쓰게 하고 사인을 해주셨는데 그 목록을 가장 먼저 채운 게 저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과 반 친구들, 그리고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다른 학년의 언니 오빠들은 저의 이런 행동을 의심스러워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학년은 여덟 명 뿐인데 시험을 보면 저는 그 중에서 항상 7등을 하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으니 책을 그렇게 빨리 읽는 게 영 의심스러웠던 거지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책을 읽는 게 하나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교과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책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고 그 세계를 음미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으니까요.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제가 책을 좋아하게 된 시기가. 그 이유도 간단했습니다. 두메산골에서 자란 저는 시간이 남아돌다 못해 철철 흘러 넘쳤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