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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May 10. 2018

문학동네 vs 열린책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번역 비교




저에게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스토옙스키"라고 말합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접한『죄와 벌』을 읽고는 어려워서 치를 떨었던 제가 어쩌다 도끼 옹(극존칭으로 줄여서 부르겠습니다)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20대 초반에 서점에서 역시나 우연히 발견한 열린책들의 빨간색 도끼 옹 전집을 접한 후 빠져들게 되었을 겁니다. 그렇게 치를 떨던 도끼 옹의 전집이 18권(빨간색 전집으로 18권)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백야 외』를 우연히 구입해서 읽어보니 생각보다 좋아 그때부터 전집을 사 모으고 전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었던『죄와 벌』이 다르게 읽혀 깜짝 놀랐습니다. 이래서 고전을 두고두고 읽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도끼 옹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언급한 19세기 러시아 문학도 많이 찾아 읽으면서 러시아 문학에 푹 빠져 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끼 옹 작품의 매력이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 딱히 정의가 내려지지 않습니다. 매번 달라지기도 하고, 이상하게 몇 페이지씩 넘어가는 장황한 대사들도 좋고, 촘촘한 내면 묘사와 당시 러시아인의 기질(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또 할 말이 없지만요)을 느껴보는 것도 좋고, 뭔가 전개가 엉성하면 나름대로 이상하다고 비판하는 것도 좋고, 그냥 다 좋았습니다.


그래서 열린책들에서 나온 전집을 두 질이나 갖춰놓고(전집을 내줬다는 사실 하나에 감격해서 도끼 옹은 무조건 열린책들로만 읽었습니다), 반복해서 읽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좋아하는 책은 출판사별로 갖춰놓는 저도, 종종 도끼 옹 작품이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열린책들 판본을 맹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학동네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습니다. 이미 도끼 옹 전집을 두 질이나 갖춰놓고 있는 저는 다른 번역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어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문학동네 번역을 읽어보고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맹신하고 있던 열린책들의 번역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21년 만에 읽었습니다. 출판사가 바뀌면서 같은 책을 다시 번역한 김욱동 님은 "평소 모든 번역은 줄잡아 10년 단위로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했습니다. 더불어 "이 작품을 거의 새로 번역하다시피 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새로 벽지를 바르고 장판을 간 것이 아니라 서까래를 갈고 벽을 허무는 등 집 자체를 새롭게 뜯어고쳤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원문을 살펴볼 정도의 능력도 없고, 비교해도 정확한 분석을 할 재량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분명 새로운 번역이 달랐다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도끼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장황스럽고 세세한 묘사들이 좋으면서도 때론 고리타분하다는 것입니다. 매력에 빠지면 계속 읽게 되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고리타분한 분위기를 견딜  있을까 하는 고민이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학동네 번역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19세기 러시아 소설임에도 현대소설로 읽힌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재 우리가 쓰는 용어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니  그렇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분에서 얼마나 원문에 충실하냐는 의문을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정확하게 비교할 능력이 없을 더러 순전히 독자로서의 느낌임을 밝힙니다), 요즘 소설로 읽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소설의 내용은 변함이 없지만 새로운 소설을 만난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요? 처음에 들었던 혼란스러움을 잠시 접고 이 분위기에 빠져들자 굉장히 흡인력 있게 읽혔고, 제가 좋아하는 소설이 새로 번역이 되면 일단 무조건 관심을 갖기로 새로운 다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원문을 비교할 능력이 없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만끽하자는 또 다른 즐거움을 찾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자, 각설하고 제가 이렇게 느낀 부분들을 조금 비교해보고자 합니다. 비교라고 해봤자 두 출판사의 번역을 알려주고, 간단히 제 느낌을 남기는 것이 전부지만 새로운 번역에 대해 궁금했던 분들이나, 이 책을 읽으실 계획이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전해봅니다.





#번역 판본 비교





열린책들에서 참조한 번역 대본입니다.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다만 판본에 차이가 없는 한 옮긴이가 번역 대본을 임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부분일 것 같습니다. 두 가지 판본 중에서 임으로 선택한 부분도 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문학동네 번역은 나우카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을 번역 대본으로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열린책들에서 두 번째로 번역 대본으로 쓴 책과 같은 출판사입니다.




#번역가




문학동네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김희숙 교수님이 번역하셨습니다.





열린책들의 번역은 경북대학교 노어노문과 이대우 교수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목차 차이

7권과 7편의 [알료샤] 파 한 뿌리 vs 양파 한 뿌리







열린책들은 "파 한 뿌리" 문학동네는 "양파 한 뿌리" 라고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문학동네         두번째: 열린책들



여기서도 이렇게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차이일까 처음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파 한 뿌리와 양파 한 뿌리는 그냥 비교해도 다르듯이 다른 분이 찾아주신(위키피디아에서도 제가 찾을 능력이 안 됩니다.^^) 위키피디아의 양파 사진을 첨부합니다.


https://ru.wikipedia.org/wiki/%D0%9B%D1%83%D0%BA%D0%BE%D0%B2%D0%B8%D1%86%D0%B0




#문장 비교










  

문학동네 2권 133쪽


마지막 한 해 동안은 다리가 부어올라 전혀 걷지도 못했던 병든 홀아비 삼소노프는 장성한 자기 아들들에겐 폭군이었고 수십만 루블을 가진 엄청난 부호이면서도 노랑이에다 완고한 인간이었지만 자신의 피후견인 앞에서만은 꼼짝도 못했는데, 하긴 그녀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아주 엄격하고 혹독하게 단속하고, 독설가들이 빈정대던 대로 ‘금식일의 식단’으로 단단히 길들이려고 했다.



열린책들 상권 610쪽


최근 1년 동안 부은 다리 때문에 거동을 못하는 병자인 삼소노프는 성인이 된 아들들에겐 폭군과 다를 바 없는 홀아비였으며, 고집불통의 인색한 인간이자 수십만 루블의 재산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에 가혹하게 다루어 왔고, 당시 독설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식물성 기름>을 쥐어짜듯 학대했던 자식들로부터 거센 간섭을 받으며 병상에 누워 있는 처지였다.



- 같은 문장이지만 느낌은 확연히 다릅니다. 열린책들에 있는 <식물성 기름>은 문학동네에 전혀 없고, 후견인 그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여기서 열린책들의 번역이 아쉬운 것은 소설을 읽다 보면 삼소노프가 아들들에겐 폭군이었지만 피후견인 즉 '그루셴카'를 가르키며 그녀에게는 쩔쩔맨다는 사실이 드러나는데, (다음 문장에 드러난다해도)그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금식일의 식단'으로 길들이려 했던 모습도 그렇고요. 또한 '최근 1년 동안'과 '마지막 한 해'가 말하는 것에서도 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도끼 옹 특유의 장황함은 문학동네 번역에서 더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도끼 옹의 장황스러움은 끝이 없거든요.^^








열린책들 하권 1213쪽


왜냐하면 만일 그 삼두마차에 자신의 주인공인 사바께비치나 노즈드료프, 혹은 치치꼬프를 매어 놓았더라면 누가 삼두마차를 몰더라도 그런 이야기는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들은 옛날 이야기이며, 오늘날의 우리 나라 언어와는 비교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치치꼬프는 훨씬 더 능수능란하기 때문입니다.



문학동네 3권 367쪽


만약에 그의 트로이카를 그저 소바케비치, 노즈드료프, 치치코프와 같은 그의 주인공들더러 끌게 한다면, 그런 말들로는 누구를 마부로 앉히더라도 결코 의미 있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이것들은 그저 예전의 말들로, 지금의 것들과는 거리가 멀며, 우리 시대의 말들은 훨씬 고단수입니다……

 -여기서는 '이야기'와 '말'로 비교가 됩니다. 마지막 문장에는 '언어'로 표현되었는데 문학동네에서는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언뜻 문장으로 읽으면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랬고, 이게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말' '언어'를 떼어놓고 비교해보면 역시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개인적인 느낌이라 읽는 분들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게 더 자연스럽고 느낌이 섬세한지 비교해봐도 될 듯 싶습니다.






열린책들 하권 1000쪽


「뜬소문」에 실린 지금 그 기사는 <스꼬또쁘리고니예프스끄125에서(아아, 그건 우리 읍의 명칭인데 나는 오랫동안 그 사실을 숨겨왔다)


주석: 125 가축 시장이 있는 마을이란 뜻.


문학동네 3권 126쪽


<풍문>의 이번 보도는 ‘스코토프리고니옙스크*(슬프게도 이것이 우리 소도시의 이름인데, 오랫동안 나는 이 이름을 숨겨왔다)에서,


주석: * ‘가축떼를 몰아넣는 곳’이라는 뜻으로, 가상의 도시이다.


- 이 부분은 언뜻 보기에 '가축떼'와 '가축 시장'이 비슷한 뜻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카라마조프가'가 인간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집안(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이라는 의미로 가축과 비교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문을 정확히 비교할 수 없지만, 특히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의 행태를 보면 그런 느낌으로 마을 이름을 말한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렇다면 주석의 의미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학동네 번역본은 약 1,600쪽, 열린책들은 약 1,400쪽입니다. 이 방대한 분량에서 이렇게 몇 군데만 비교했는데도 기가 빨리는 느낌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쓴 저자부터, 번역하고, 편집하는 과정까지 하나하나 짚어보며 우리말로 다시 풀어낸 과정이 경건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역할은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읽히는 것인 만큼 독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할 때 독자도 분명 알게 될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도끼 옹을 좋아하는 저는 앞으로 이 작품을 또 읽을 것입니다. 그 사이 또 다른 번역본이 나온다면 역시나 비교하면서 읽어볼 것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부족한 이런 비교 느낌을 참고할 뿐, 어떤 글이 나와 더 맞는지 선택하고 읽는 것도 독자의 몫이라고 여겨줬으면 좋겠습니다. 조금은 뜬금없을지라도, 다시 한 번 외국작품을 우리 언어로 번역, 편집하는 수고로운 과정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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