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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Jan 02. 2022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최근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라는 작가에 대해 재조명을 하게 되면서, 그의 작품을 하나씩 찾아서 읽어보고 있다. <사고>밖에 읽진 않았지만, 그 작품이 너무 강렬해 다른 작품도 찾게 되었다. <사고>만큼이나 유명한 작품인 이 책을 작년 가을에 구입해 놓고 읽지 못하다, 얼마 전 <사고>를 다시 읽고 자연스레 이 책을 꺼내 읽게 되었다. 독특한 매력을 풍기고 있는 작가인 만큼, 내게 두 번째로 오게 된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책을 다 덮을 때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어 차분히 읽어갔음에도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책은 한 형사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도로변에 세워진 차량에서 베른경찰청 소속의 슈미드 형사의 시신이 발견된다. 슈미드 형사의 상관인 베를락 형사에게 사건이 보고되었고, 그때부터 슈미드 형사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연결 고리로 깊게 펼쳐진다. 베를락 형사는 외국에서 오랫동안 형사로 이름을 알렸고, 고국인 스위스로 영구 귀국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런 터에 슈미드가 죽는 사건이 발생했고, 사건을 추적해가는 그의 행동은 슈미드 형사의 직접적인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슈미드 형사가 람보잉에 살고 있는 지역 유지인 가스트만의 연회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가스트만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베를락 이외에 사건을 맡은 찬즈 형사는 그런 태도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가스트만의 변호사와 국장 사이에 오간 대화로 베를락과 찬즈 형사가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슈미드 형사의 죽음은 단순히 범인을 잡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슈미드 형사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가스트만의 연회에 참석했다는 점과 가스트만은 자신의 집을 사업가와 정치가들의 은닉처로 제공했다는 점이 걸렸다. 그런 민감한 사안에다 가스트만이 가지고 있는 이력 때문에 담당 변호사는 가스트만을 내버려 두라고 했고, 국장도 베를락 형사에게 그런 부분을 전달했다. 베를락 형사는 순순히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시각에서 가스트만을 추적해 간다. 그 추적이라는 것이 적극적이거나 흥미진진하다고 할 수 없었던 것은 가스트만과 베를락은 오래전부터 숙적의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40년 전, 둘의 내기로 인해 베를락은 가스트만의 죄를 드러내려 했고, 가스트만은 그런 베를락을 농락하며 교묘하게 자신을 포장해 또 다른 죄들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40년 동안 가스트만의 뒤를 쫓는 베를락은 슈미드 형사의 죽음으로 또 한번 편치 않은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40년 전,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우연이 작용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범죄 행위가 필연적으로 밝혀질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은 베를락이었다. 그에 반해 '인간은 그런 불확실성 때문에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은 가스트만이었다. 두 사람은 상반된 의견 앞에 내기를 걸었고, 며칠 후 가스트만은 베를락이 보는 앞에서 사업가 한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것을 증명하려 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가스트만에게 어떠한 죄를 덮어씌울 수 없었고 둘은 그렇게 40년의 시간동안 내기의 끝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슈미드 형사의 죽음으로 다시 조우하게 된 그들은 여전히 불편했고, 지병으로 인해 죽음이 다가오는 베를락을 농락하듯 가스트만은 교묘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슈미드 형사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야 했기에, 베를락과 찬즈 형사는 나름대로 사건을 추적해 나갔다. 두 형사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지 않는 베를락 형사를 찬즈 형사가 무조건 따를 리 없었다. 모든 것을 밝히지 않고, 소신대로 밀고 나가려는 베를락의 속을 알 수 없었을 뿐더러 지병으로 인해 휴가를 가려는 베를락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런 베를락 앞에 가스트만은 태연히 나타나 그를 조롱하고, 그를 죽이겠다는 충고를 한다. 그런 가스트만을 향해 그를 재판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며, 오늘 밤 사형 집행관이 가스트만을 찾아갈 거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베를락은 뱉어낸다. 그리고 가스트만은 그의 심복 두 명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를 사형 집행한 사람은 찬즈 형사였고,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베를락의 속내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책은 거의 끝나가고, 가스트만은 죽었고, 베를락이 속 시원히 무언가를 말해 주지 않고 있어 긴장감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베를락은 슈미드 형사를 초대해 가스트만의 죽음을 자축한다는 의미를 갖다 붙였지만, 둘의 식사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것을 밝히고 뒤집는 시간이었다. 슈미드 형사를 죽인 사람이 누군지, 가스트만을 재판한 사람은 베를락 자신이지만, 집행하는 사람은 찬즈 형사인 이유를 모두 밝힌다. 분명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는 복선을 저자가 곳곳에 깔아 놓고 있었음에도, 결말에 가서야 베를락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름대로 꼼꼼하게 읽었다 생각했음에도 종종 마음속에 걸려드는 의문을 완전히 수면에 올려놓지 않은 채, 저자가 닦아 놓은 길을 따라가서야 책 제목 안에 내포된 메시지를 간파할 수 있었다.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의미도 없이 그냥 저지르는' 가스트만의 행동에 대해 온전한 비난을 던질 수 없었던 것은 반전을 던져준 찬즈 형사 때문이었다. 베를락이 우연과 필연성에 의해 모든 범죄가 필연적으로 밝혀질 수 없다는 것을 가스트만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정확한 일례를 보여 준 이가 찬즈 형사였다. '비록 법으로는 단죄할 수 없었지만 완벽한 작위적 우연으로 죄를 응징' 했다고 표현한 옮긴이의 말마따나 어느 정도 가스트만의 의견에도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가스트만의 의견을 참착한듯 찬즈형사가 그대로 움직여 주었고, 결국 자신이 자신을 단죄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길지 않은 책임에도 간단치 않은 줄거리와 의미 때문에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베를락과 가스트만의 사고와 행동에 어느 곳으로 마음이 기울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편치 않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양심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바탕과 그 안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이끌어 가야 하는지에 대한 무언의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한낱 에피소드로 지나쳐버리기에 석연치 않은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어 마음이 계속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이론과 생각에 자신의 삶을 치부해 버리기 보다, 그것을 무시할 수 없는 삶이 존재한다고 해도, 자신의 의지와 인간의 기본 심성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그것을 잃어버리면, 가스트만과 찬즈 형사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것 같아 심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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