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고시니/ 장 자끄 상뻬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
얼마 전, 우연히 버려진 이삿짐에서 '꼬마 니콜라' 시리즈를 발견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뻬가 삽화를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늘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버리려고 내 놓은 책 더미에서 상태가 괜찮은 책을 발견한 것이다. 혼자서 막 흥분을 하고, 본격적으로 '꼬마 니콜라' 시리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찰나,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주문을 하고, 이사짐 더미에서 찾아낸 책 보다 먼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순차적으로 읽기보다, 새로나온 책에서 니콜라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책이 너무 예뻐서 책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면서 읽었는데, 아끼는 마음이 순식간에 흩어질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이 책에는 꼬마 니콜라의 이야기가 10편이 실려있다. 익살맞고, 앙증맞고, 능글맞은 꼬마 니콜라를 중심으로 펼쳐진10편의 에피소드는 무척 재미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혼자서 킥킥대며 니콜라의 행보를 좇다보니, 어느새 덮여진 책을 보며 아쉬워 하다 이삿짐에서 발견한 꼬마 니콜라 시리즈를 꺼내서 읽을 정도였다. 그 시리즈를 읽고나면, 나머지 시리즈도 다 모으겠노라고 벼르며 꼬마 니콜라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 나를 발견하고 설핏 웃음이 났다. 상뻬의 삽화를 찾아 헤매다가 이 책을 발견했음에도, 너무 많은 시리즈 앞에 좌절했던 것이 사실이다. 언젠가는 읽어보겠노라 했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찾아와 주어서 마냥 고마울 뿐이다. 무엇보다 꼬마 니콜라의 일상으로 들어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의 모습이 무척 즐거웠기에 더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첫 이야기는 <부활절 달걀>에 관한 에피소드로 아빠의 익살맞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달걀에 그림을 그린답시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엄마를 화나게 만들고, 그 달걀을 숨기면서 이웃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친구들과 함께 먹은 초콜릿 때문에 배탈이 나는 상황의 연속이다 보니 부활절은 평탄한 행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니콜라의 집, 학교, 친구들과의 놀이를 통해 니콜라가 속한 곳곳에서 활약상이 여지없이 펼쳐진다. 스웨터 하나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텔레비전, 새로 생긴 식료품점, 빨간 풍선을 통해서도 니콜라의 일상이 드러난다. 우리와 정서가 다른 프랑스 아이의 시선이라지만, 소소한 일상을 통해 익살을 맛보고 장난기 가득한 니콜라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애늙은이로 보일 때도 있고, 철없는 아이처럼 보일 때도 많아 니콜라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충분히 지켜볼 수 있었다.
니콜라의 시선으로 쓰였다고 하지만, 오로지 니콜라를 중심으로만 펼쳐졌다면 금세 식상해졌을 지도 모른다. 니콜라의 성장해가는 모습이 담겨 있으므로, 그 주변에 얽힌 관계들도 무척 중요하다. 가정에서도 또렷이 드러난 니콜라를 비롯해 엄마, 아빠의 개성도 드러났고, 무엇보다 또래의 친구들과 투닥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니콜라가 친구들 때문에 속상해 할 때도 많고 싸울 때도 많았지만, 그런 모습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별거 아닌 것으로 마음 상해하고, 친구들과 싸운 모습이 나 역시 어렴풋한 추억으로 남아 있고, 철딱서니 없었던 어린 시절을 거쳐 왔기 때문이다. 물론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철없음을 완전히 벗어 버린 것은 아니지만, 니콜라의 시선이 때론 날카로워 나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해 질 정도였다. 니콜라는 자신의 시선에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느껴지는 그대로 감정을 드러냈다. 그 드러냄을 통해 웃고, 울고, 짜증에 동참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은 문화가 다르고 삶의 양상이 다를지라도 어느 정도 비슷한 성장과정을 거쳐 왔다는 공통점이 존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꼬마 니콜라에게 단박에 마음을 뺏긴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모습을 비춰주는 니콜라를 어느새 친근한 캐릭터로 생각하고, 다른 에피소드를 느껴하고 싶은 마음이 내 안에도 맴돌았다. 남자아이의 장난기가 늘 서려있어 종종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랑해 마지않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거기다 상뻬의 삽화가 니콜라의 행보를 돋보여주고 있었으므로, 니콜라를 마음속에서 밀어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늘 상뻬의 삽화가 중심이 된 책들만 보다가, 이렇게 많은 글 속에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나는 삽화를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글과 삽화의 조화는 꼬마 니콜라를 표현하기에 제격이었고, 니콜라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듯 했다. 상뻬의 삽화로 반가움을 느끼는 동시에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뚜렷함을 느끼고, 니콜라를 통해 나의 내면을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어 색다른 시간이었다.
꼬마 니콜라 시리즈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린 사람이라면, 이 책이 무척 반가웠을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꼬마 니콜라지만, 꼬마 니콜라 탄생 50주년 기념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이야기가 실린 거라고 한다. 꼬마 니콜라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깜짝 선물이 될 것이고, 나처럼 처음 마주하는 독자에게는 꼬마 니콜라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셈이다. 책머리에는 르네 고시니의 자녀가 미발표 원고를 들고 상뻬를 찾아가 삽화를 그려달라는 사연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 책이고, 상뻬의 삽화를 통해서 발표되지 않았던 꼬마 니콜라의 이야기는 그제야 제 모양을 갖추고 탄생한 것이다. 그 동안 상뻬의 삽화가 삽입된 다른 책들을 떠올려 보건데, 이 책에서 상뻬의 삽화가 없었다면 어땠을지 르네 고시니의 자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꼬마 니콜라를 마주한 적이 없다고 해도, 상뻬의 삽화는 글과 어우러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므로, 미발표 원고에 삽화를 그려 출간을 한 것에 참 감사한 마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