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가요코, 매거진 하우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사람을 볼 때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듯이, 책이 주는 첫인상도 큰 역할을 한다. 더군다나 책이 주는 첫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면, 내용이 뒤바뀌어 주지 않은 한 편견은 굳혀져 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인지, 책에 대한 첫 인상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무척 얇은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에 치우쳐 있는 나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남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첫 인상이 뒤바뀐 경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첫 인상만 보고 멋대로 판단해 버린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처럼 얇은 책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고, 이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고, 세계가 100명의 마을로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룬 거라 생각했다. 나의 짐작이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에피소드의 대부분은 현재의 세계를 종합해서 다룬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아이들의 살아갈 미래는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그 안에서 100명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이질적이었다. 51명은 도시에서 49명은 농촌이나 사막, 초원에서 살고 있다고 시작하는 책 내용은 갈수록 더 비극적이었다. 26명은 전기를 쓸 수도 없고, 16명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으며, 아이들은 26명인데 4명은 일을 하고 12명은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계로 해서 세계를 100명의 마을로 보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점점 열악해져 가고,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100명이 사는 마을의 이야기는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세계를 축소시켜놓은 것일 뿐, 그 이야기는 세계 곳곳에서 행해지는 현실이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축소를 시켜 놓으니, 피부에 확 와 닿으면서도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100명의 사람이 사는 마을에는 모두가 먹고도 충분한 음식이 있음에도, 48%만이 사람이 먹고, 35%는 가축이, 17%는 자동차의 연료 등에 쓰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마을에는 여전히 굶주린 사람, 가난한 사람, 문명의 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왜 이렇게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자연의 훼손은 막을 길이 없는 것일까. 100명이 사는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풍족하고 평화롭게 살 수는 없을 것일까?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100명이 사는 마을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을 인정하게 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했으며, 100명 모두가 풍족하게 사는 것, 현실의 60억이 넘는 세계 인구가 그렇게 사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이 아님을 피력하고 있다. 100명이 사는 마을 이야기는 이 짧은 책에서 약 50페이지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 페이지는 '유엔 정상회의 개발목표 2008'을 통해 세계가 다뤄야 할 공동 목표를 확실하게 제시했다. 빈곤과 기아를 없애며, 누구라도 학교를 다니게 하고, 질병을 예방하며,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등 세계 각국이 헤쳐 나가야 할 공동 목표를 다시 새겨 주었다. 그 이외에도 <빈곤의 종언>을 쓴 저자 제프리 삭스의 인터뷰를 실어 '미래는 기술로 바꿀 수 있다'는 모토 하에 세계가 하나 될 수 있음을 피력하고 있었다. 또한 베트남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가정을 다뤄 밀착 취재함으로써 농촌의 미래, 신흥국의 미래를 따라가기도 했다.
100명이 살고 있는 마을의 이야기를 벗어나 다양한 의견과 삶의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실질적인 움직임이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 아쉬움을 알고 있는 듯, 세계를 바꾼 10명의 사람들을 통해 곳곳에서 노력하고 있는 손길을 드러내 보였다. 그 손길들이 대표적인 예라고 단정 지을 수 없대도, 그런 손길들이 많아지는 한 세계의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데에 생각이 모아졌다. 지금까지 환경에 관한 책이나, 세계의 미래에 관한 책을 살펴보면 일부분만 드러내 보여 내 자신이 한 없이 작아졌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좀 더 나아지는 자연과 도움의 손길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한없이 멀어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책들과는 다르게 이 책은 한 마을을 축소시켜 놓음으로써, 세계의 상황을 전체로 볼 수 있는(통계로 그려낸 마을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육안을 갖게 했다. 전체를 봄으로써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어느 정도 직시할 수 있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무척 얇은 한 권의 책 속에 세계의 모습이 축약되어 있는 느낌이라, 세계 곳곳의 정황을 살피고 온 기분이 들 정도다. 그 안에 내가 속해있는 나라와 그룹 속에서 안도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내가 그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내가 누리고 있는 풍요에 전혀 만족하기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풍요로운 선진국의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 인정 안에서 나보다 많은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보다 부끄러움이 더 들었다. 나의 부끄러움을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작은 노력이라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 나 또한 자신할 수 없다. 느낀 것을 실천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무엇을 당장 이루려는 마음보다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잡고 나아가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은 움직임이 큰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믿음이 세계의 벽을 허물고, 서로간의 평화와 공통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발걸음에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으로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