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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Jul 29. 2023

죽여주는 여자는 왜 죽여줘야만 했을까 (1)

우리 모두가 마주할 수 있는 언젠가의 삶에 대하여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감독: 이재용

2016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노년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노인 빈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2년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만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 위험도는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자살률 또한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 변화를 살펴보면 80세 이상의 경우 2009년에 그 수치가 무려 127.7%였다.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70-79세, 80세 이상의 자살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는 종로 일대에서 남성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박카스 할머니’ 소영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소영은 주로 서울의 탑골공원을 배회한다. 남성 노인들에게 박카스 한 병을 들이밀며 “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해 드릴게.”라고 말한다. 모텔비 포함 3만 원. 그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존엄을 팔아가며 얻는 돈이다.


이들은 자신의 존엄을 파는 행위에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소영은 탑골공원 입구에서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다른 박카스 할머니와 말다툼을 벌인다. 소영과 비슷한 차림을 한 그 할머니는 소영이 임질에 걸렸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소영은 가격 후려치지 말고 동종업계의 상도덕을 지키라고 응수한다. 그들은 그렇게 다투며 자신의 자리를 처절하게 지켜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죽여주는 여자>가 독특한 점은 소영과 같은 박카스 할머니를 다루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거의 모든 취약 계층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소영이 거주하는 달동네의 허름한 주택은 그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장소다. 그곳에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MTF 트랜스 여성,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남성, 한국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코피노 남자아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문화 이주여성 등이 모두 모여 산다. 혹자는 이것을 사회 취약 계층을 한 영화에서 한꺼번에 조명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로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만약 감독의 의도라면, 매우 효과적인 설정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 공간으로 밀집되는 양상은 영화적 장치라기보다 현실에 더욱 가깝다.


도시 공간에서는 사회적 계층에 따라 주거지가 뚜렷하게 분리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산업의 발달과 자동차의 보급이 도시 공간을 어떻게 재구성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대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국가의 주요 산업이 농경 산업에서 제조 산업으로 바뀌게 되자 농촌의 소작농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야 했다. 이 과정에서 도시는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팽창하게 된다. 도시 공간으로의 지나친 인구 밀집은 순식간에 그곳을 질병과 범죄에 취약한 곳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산업화로 인한 도시의 환경오염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중산층 이상의 도시 자본가들은 더 나은 주거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도심 탈출을 적극적으로 계획한다. 안전하고 깨끗한 곳에서 살고 싶은 중산층의 욕망과 당시 토목, 건설 업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도심 외곽의 근교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마침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까지 얻게 된 중산층은 도심을 떠나 잘 개발된 근교의 신도시로 이사를 떠난다.


근교의 새집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자동차를 살 수도 없는 가난한 노동자 계층은 그대로 도심에 남게 된다. 안전과 위생을 위한 인프라는 모두 도시 외곽 지역으로 이동해 버렸기 때문에 기존의 도심은 더욱 황폐해진다. 과거 산업화의 영광으로 가득하던 도심 공간은 그렇게 취약 계층만의 취약한 보금자리로 남는다.


[2부에서 계속]


추신: 이 글은 아래의 여러 참고문헌과 필자가 수강한 학사, 석사 과정의 강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여 서술하였다. 특히 근대 산업화와 도시 공간의 형성에 대한 내용은 과거 한국의 실정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밝힌다. 다만, 취약 계층이 도시 공간의 어느 한 지점으로 모여드는 양상은 비교적 뚜렷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모두 확인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태완. (2023. 02. 01). [기획 1]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실태와 대응방향. 참여연대 월간복지동향. retrieved from https://www.peoplepower21.org/welfarenow/1926404


이보람. (2022. 04. 06). 66세 이상 빈곤 위험도 OECD 최고…노인 저소득 문제도 ‘심각’. 중앙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61336#home


황종아, 구자훈. (2019). 서울시 취약계층 밀집지역 분포와 주거지 특성 분석: 민간임대주택 거주 기초생활수급자를 중심으로. 국토연구, 102, 99-116.


Giles J. & Middleton T. (1999). Studying culture : A practical introduction. Black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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