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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Jul 30. 2023

죽여주는 여자는 왜 죽여줘야만 했을까 (2)

우리 모두가 마주할 수 있는 언젠가의 삶에 대하여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감독: 이재용

2016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노년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인물들이 모여 사는 도시 공간을 아주 친절하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소영의 집에서는 무려 남산타워가 훤히 보이는데, 이를 통해 그녀가 사는 곳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달동네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영이 활동하는 주요 무대인 서울의 종로구와 중구는 실제로 도심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곳이다. 소영과 한집에 사는 트랜스 여성 티나는 이태원에 있는 한 유흥업소에서 무대에 선다. 이태원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차별받는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용산에 미군기지가 있을 당시 소위 서울의 이방인들이 이태원으로 모여들면서 이태원 일대는 지금과 같은 독특하고 찬란한 지역 문화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과연 성소수자들이 진정 이태원으로 모여들고 싶어서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냐는 것이다. 성소수자든 나이 든 노인이든 어느 곳에서나 차별받지 않고 존재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태원동이든 흑석동이든 화양동이든 그냥 어디에서나 모두와 어울려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그러나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온갖 핍박과 차별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그나마 존재의 위협이 가장 덜한 이태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탑골공원의 노인들도 마찬가지다. 성수동의 힙한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따뜻한 홍차를 마시고 있는 70대 노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잘 없을 것이다. 노인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노인을 위한 카페는 점점 없어지고 있는 듯하다. 2023년 3월, 카페에서 다이어리를 정리 중이던 60대 여성에게 “카페는 젊은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며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요구한 20대 청년들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사회적 공분을 샀다. 또 최근에는 노키즈존에 이어 노시니어존까지 왕왕 생기며 노인들이 도시에서 마음 편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정말 물리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혹자는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공공장소에서 무례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일부 노인들에게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노인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말이다. 젊은 청년의 입장에서 때로는 노인들의 행동이 무례해 보일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세대 간에 살아온 삶의 환경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인정해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은 청년과 노인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우리 사회의 기술 환경은 너무도 달라졌다. Chat GPT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는 앞으로 더 높은 소통의 장벽이 쳐질 것이다. 핀테크 (financial technology)를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사람과 계좌 이체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은행의 지점을 찾아야만 하는 사람. 이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청년과 노인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기술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것을 보고 들으며 성장해 왔다. 모습과 양상이 다른 것에는 언제나 불편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불편함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 사회는 젊음의 권력을 앞세워 노인의 모습을 사회 속에서 아예 지워 버리는 편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 모두 언젠가 나이 들어 늙게 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3부에서 계속]



참고문헌 


방제일. (2023. 03. 31). “카페는 젊은 사람이 오는 곳이에요” 노인 밀어낸 20대. 아시아경제. retrieved from https://www.asiae.co.kr/article/202303311406485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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