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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Jul 31. 2023

죽여주는 여자는 왜 죽여줘야만 했을까 (3)

우리 모두가 마주할 수 있는 언젠가의 삶에 대하여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감독: 이재용

2016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노년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노인도 청년에게 똑같은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박카스 할머니의 삶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한 청년이 등장한다. 그는 소영에게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민다. 소외된 그녀들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명분을 들먹이며 청년은 허락도 없이 소영의 삶의 터전으로 침범한다. 무례하기도 짝이 없는 그의 행동에 소영은 벌컥 화를 낸다. 노인은 청년의 공간인 카페에 침입해서는 안 되지만, 청년은 노인의 삶에 깊숙이 관여해도 무어라 비난받지 않는다. 오히려 적적한 노인네를 상대해 주는 친절하고 공손한 보기 드문 청년으로 인정받는다. 청년은 소영에게 좋은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한다. 박카스 할머니로서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감상하면 그만인 작품으로 남는다. ‘삶의 현장’과 ‘체험! 삶의 현장’은 다르다.


탑골공원에서 소위 죽여주는 여자로 이름을 날리던 소영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정말 말 그대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병들어 죽어가는 노인들의 부탁을 받아 그들의 자살을 도와주게 된 것이다. 맞춤 양복만 깔끔하게 입고 다니며 멋쟁이 소리를 듣던 소영의 옛 고객은 풍을 맞고 쓰러져 이제 병상 위에 누워 하루하루를 보내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간병인 없이는 대변도 가리지 못하고 죽고 싶어도 혼자의 힘으로는 죽지도 못한다.

 

사는 게 창피해. 죽고 싶어. 나 좀 도와줘.

- 영화 <죽여주는 여자> 中


소영은 풍을 맞아 쓰러진 노인, 치매에 걸린 저소득층 노인,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노인 등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죽여주는 죽여주는 여자로 거듭난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60세 이상 고령자의 우울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7년부터 2021년까지의 우울증 진료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7년 60대 우울증 환자의 수는 12만 9,330명으로 전체 우울증 환자 수의 18.7%를 차지해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울장애 1년 유병률의 경우 남성은 60대가 2.1%, 여성은 70대가 5.4%로 전 연령대에 걸쳐 가장 높다. 우울은 자아 개념에 상처를 남기며 사람들의 자아존중감을 훼손하는 요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년기에 접어들며 노인들은 여러 영역에서 상실을 경험한다. 노인들은 은퇴하면서 직업 정체성을 잃고, 주요 수입원을 잃게 된다. 때로는 사별을 하여 평생의 반려자를 먼저 잃기도 한다. 신체 건강과 인지기능도 이전보다 쇠퇴하면서 노인들은 쉽게 무력해진다. 거기에다 온갖 노인 차별과 노인 혐오를 견디며 사회적으로는 사망 선고에 가까운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치매나 뇌졸중 진단을 받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날로 외부 활동이 매우 힘들어진다. 어느 정도 자산이 있거나 자신을 부양해 줄 가족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아직 의사 조력 존엄사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국가이다. 



[다음이 죽여주는 여자 분석의 마지막화입니다]



참고문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2). 최근 5년(2017~2021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현황 분석. 원주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립정신건강센터. (2021). 2021 년 정신건강실태조사. 서울특별시: 국립정신건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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