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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Aug 01. 2023

죽여주는 여자는 왜 죽여줘야만 했을까 (完)

우리 모두가 마주할 수 있는 언젠가의 삶에 대하여

죽여주는 여자 (The Bacchus Lady)

감독: 이재용

2016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노년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의사항: 이 글은 의사 조력 존엄사와 웰 다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해당 주제에 대하여 필자의 가치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하였고, 언론에서 보도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만, 경우에 따라 불편함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필자는 의사 조력 존엄사에 대하여 찬성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밝힙니다. 또한 심리적 불안이 유발될 수도 있으니, 다소 불편함이 예상되시는 분들은 글을 읽지 않으심을 부탁드립니다. 참고한 언론 보도는 맨 아래의 참고문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 아래부터 글이 시작됩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심각한 질환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노인들은 자신이 존엄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물론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 모두는 존엄한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대우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심각한 질병의 고통과 뼈아픈 사회의 차별, 절대적 빈곤의 어려움이 우리 사회 노인들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21년 8월 스위스 바젤의 비영리 안락사 단체인 ‘페가소스’에서 조력 자살로 생을 마감한 폐암 환자였던 64세 한국 남성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비유했다고 한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은 책.

삶과 생명의 찬란함은 아무리 축복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력 자살을 통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그분은 자신의 삶을 다시는 읽고 싶지 않은 책에다가 비유했다. 그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카메라에 대고 “나는 아프고, 죽기를 원하며, 죽을 것이다.”라고 말을 했으며,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밸브를 돌려 약물을 투여하고 영면에 드셨다고 한다. 


웰빙 (well-being)의 시대를 지나 이제 웰다잉 (well-dying)이란 무엇인지 논의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기가 참 어려운 논의이다. 그러나 2018년 2월부터 시행된 한국의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웰다잉과는 거리가 먼 벼락치기 형태로 실시되고 있는 듯하다. 연명의료 중단을 시행한 사람의 83%가 임종 상황에 임박해서 당사자가 아닌 가족이 결정하는 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조력 존엄사의 핵심은 자신의 죽음을 늦지 않게 자신의 의지로 직접 선택한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소영은 중풍으로 쓰러지고, 치매와 가난으로 고통받고, 우울증으로 힘겨워하는 노인들이 자기 삶의 향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죽여주는 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가 의사는 아니지만.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죽여주는 여자>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00506#


2016년에 개봉한 이 비극적인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픽션을 빙자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소영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던 청년이 다큐멘터리를 종국에 완성했다면 이 영화와 같았을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노인들의 사연을 주로 다루었지만, 이 영화의 인물들이 처한 현실을 모두 다 소개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노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적 취약 계층의 삶을 한곳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결코 과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취약 계층은 결국 사회의 한 지점, 한 공간으로 모여들기에 그곳으로 시선을 두면 자연스럽게 모든 인물이 한눈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그것이 취향 따라 삼삼오오 모이는 자발적인 양상이었다면 참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다가 어쩔 수 없이 그들은 한 곳으로 모이게 된다.


입을 조금만 떼도 ‘틀딱’이니 ‘꼰대’니 하는 말로 사람을 아주 못살게 구는 사회에서는 입을 아예 다물고 살 수밖에 없으니 세상 사는 흥미가 떨어질 것이다. 키오스크가 사람을 대체한 식당에서 햄버거 하나 제대로 주문하지 못하게 된 사람은 현금이 있어도 외식조차 마음 놓고 할 수가 없다.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지하철 하나 쉽게 타지 못하는 도시에서는 앞으로의 내 미래가 긍정적일 것이라 결코 낙관할 수 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청년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늙어본 적이 있는가? 당신 옆의 노인들은 젊어 본 적이 있다.

그들도 이렇게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우리도 언젠가 그렇게 될지 모른다.



hiphopstep.



8월 3일: 마블 특집 1. <로르샤흐 검사와 대혼돈의 멀티버스>

8월 4일: 마블 특집 2. <가오갤 3, 옥자 그리고 하이틴 무비>


8월 5일부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분석이 시작됩니다



참고문헌


신성식. (2023. 05. 23). “존엄사 사각 요양병원...연명의료중단 도와야. 중앙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4348


신아연. (2023. 04. 04). 밸브 돌리기 전 그의 말이 걸린다... 조력자살 지켜본 작가의 소회. 중앙일보. retrieved from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2337#home 



힙합스텝이 쓴 영화 <죽여주는 여자> 분석 다시 읽기


1부: https://brunch.co.kr/@hiphopstep/39

2부: https://brunch.co.kr/@hiphopstep/40

3부: https://brunch.co.kr/@hiphopste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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