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따뜻한 마을 판키시 따뜻한 사람 체첸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서 느긋하게 걷기 시작하면,
놀랍게도 온 세상은 당신에게 다가오게 되어 있다.
- 비키 마이런, 브렛 위터 <듀이>
이른 아침 눈이 떠져 혼자 동네 산책을 나왔습니다.
겨울을 대비해 모아놓은 나무 장작, 소 달구지를 몰고 일 나가는 어르신,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해사하게 웃으시는 아주머니들이 보입니다.
동이 터 해가 비추니 노랗게 물든 소담한 마을이 눈부십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빵, 쨈, 치즈, 감자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코키, 히또미와 산책을 하고 근처 구멍가게에서 산 초콜릿, 과자, 우유로 작은 선물을 드렸습니다.
아침과 비슷한 점심 식사를 하고 이번엔 엄마도 함께 좀 더 멀리 산책을 나갔습니다.
어딜 가든 반겨주는 동네 사람들의 따스한 온정에, 팔짱 끼고 나란히 가는 히또미와
엄마의 뒷모습에, 아마도 그리움 같은 것에 빠져있는 코키의 모습에 자꾸 제 마음도
말랑말랑해집니다.
온종일 먹고 걷고 먹고 걷고 하릴없이 한가로운 하루를 보내네요.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고 또 다들 난로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눈꺼풀이 반쯤 감긴 채 속닥속닥 웃고 떠드는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참 좋은데... 그런데....
걱정스러운 구석이 하나 있습니다.
식구들은 꼭 손님인 우리가 먼저 먹고 나면 그 후에 모여 앉아 남은 음식으로 식사를 하셨습니다. 겨울을 대비해 음식을 저장해 놓은 부엌 겸 창고도 이미 본 터라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얼마나 먹고 얼마나 남겨야 식구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지 잘 몰라 조심스럽습니다.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이야 말로 정말 나쁜 일’이라는 체첸 사람들이라지만
혹시라도 내가 부담스러우면 어쩌지요.
다음 날 아침,
코키와 히또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먼저 트빌리시로 돌아갈까 해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오래 머무는 것이 미안해서요."
벌써 정들어 버린 많은 사람들이 마중 나왔습니다.
한참을 기다렸을 때 버스가 왔고 체첸 엄마는 나를 꼭 껴안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난 원래 딸이 하나였는데, 이젠 둘이야. 네가 내 둘째 딸이야. 꼭 또 와야 해.”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내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이 노란 마을에 다시 올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엄마만큼 따뜻한 온기를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내 마음속 얼음 한 조각이 녹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