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그 시작은 고마움과 상처였다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by Hippy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고, 한참을 그 안에 멈춰있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쉴 틈 없이 시끄러웠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어딘가로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적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매장에서 직원 뽑을 건대 너 면접 한번 보지 않을래? 합격하면 우리 집에서 일단 지내면 돼."

고향에선 취직하고 싶지 않았고 퇴직금도 바닥나가고 있던 참이라 나는 서울로 향했다. 그게 다시 시작하는 첫걸음이 될 줄은 몰랐지만.


면접에는 합격했고, 나는 강남의 코스메틱 매장에서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매장 근무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람들은 밝고 에너지가 넘쳤고, 그들 사이에 섞여 나도 조금씩 웃을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바쁘고 정신없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오랜만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친구집에 함께 지내는 동안 모든 게 안정되는 듯했지만, 어느 날 고향에서 올라온 친구 어머니의 한마디가 나를 다시 흔들었다.

"너네 엄마는 너 살 집도 안 해두고 지금껏 뭐 하셨대?"

어릴 적 딸처럼 대해주던 친구 엄마의 무심코 던진 그 말은 꾹 눌러온 감정을 건드렸다. 그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었고, 고마움보다 자존심이 더 아팠다.


그날 이후, 나는 출근하던 매장 가까운 곳에 셰어하우스를 들어가며 친구집에서 독립했다. 아파트 안에 방한칸이 내 공간, 작지만 내 몫의 독립이었다.


시간이 흘러, 매장 로테이션이 결정됐다. 새로운 근무지는 명동이었다. 내가 배정된 매장은 오래된 백화점 안에 있어 강남 매장보다 훨씬 한산했고, 손님도 드물었다. 활기 대신 적막이 있었고, 그만큼 인센티브도 받기 어려워 예상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아야 했다.


마침 셰어하우스 계약도 끝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결국 매장에서 가까운 고시원으로 숙소를 옮겼다. 좁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나만의 문이 있는 공간. 매일 밤, 그 문 안에서 나는 '나만의 삶'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스스로를 옮겨본 적 있나요?

그 말이 상처였든 위로였든, 그 순간을 지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던 기억, 당신에게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