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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Apr 13. 2021

그렇게 직장은 놀이터가 된다

4월의 병꽂이

1.




 "화원 가자!" 


"왜?"


남편이 묻는다.


"나한테 꽃 사주러~!"






매달 1일은  나에게 꽃을 사준다.


지난달을 살아낸 나를 격려하고

이번 달을 살아낼 나를 축하다.


헌데 4월 초는 아프고 정신이 없어

이 특별한 의식을 건너뛰어버렸다.


두고두고 아쉽다.


그냥 넘길까 하다가

늦게나마 는데...


'지천이 꽃인데 뭔 돈을  또 꽃이냐?'


내 안의 검열관이 눈을 흘기며 핀잔을 준다.



-> 이분은 Mr. Gray


이 검열관은  삶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다.

하도 자주 끼어들어서 예의상 이름도 붙여줬다.


Mr. Gray!


매사를 회색으로 보고

어릴 때 어른들한테 들었음직한 잔소리 쏘아댄다.


몸과 마음이 쭈그러들어있을 때는

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지만

오늘은 아니다.


 Mr.Gray에게 크게 외친다


내 맘이거든!
그리고 그 꽃이랑 그 꽃이랑
나한테는 다르거든?!






2.

두 남자를 대동하고 화원에 간다.


사람들은 봄을 맞 모종과 작은 화분을 산다고 바글바글이다.


나 같은 똥 손은  '해당 없음'이다.






한번 속지 두 번 속냐?

아무리 발로 기른다는 식물들도

내 손에 오면 틀림없이 죽다.


그러니

어차피 이미 죽은 생화를 산다.


생화가 시드는 건 내 탓이 아니다.


유유상종하기 힘든 황금손 사람들을 뚫고

유유히 생화 코너로 간다.


그런데 1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장님.  


밖에서 모종을 파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에라~

내가 한다.


내가 고르고 묶고

집에서 가져온 꽃병에 넣었다 뺐다 가늠해본다.


다 해놓고 소리를 지른다.


"사장님!

돈 낼게요!

이거 얼마에 주실 거예요?" 




돈!



돈 낸다는 말에

1초 전까지 겁나 바쁘셨던 사장님이 

1초 만에 뛰어오신다.



그리고 나는

얼결에 병 꽂이 성공!



포장도 안 한다니까

사장님이 고마워하며 2000원 깎아주시기까지.




지난 달 

병 꽂이를 퇴짜 맞을 때랑은 대우가 다르네.



그때는 플로리스트가 매우 한가한 데다

생화를 엄청 사랑하셨는데...



https://brunch.co.kr/@hisilver22/73

 -> 2월 self 꽃 선물



앞으로 병 꽂이를 위해서는

아주 바쁜 화원을 가야겠구나.


한 가지 배웠다.

 






3.


출근길 좌석에 꽃병이 탔다.


안전벨트도 채워준다.


가자! 궈~~!




한달만에 미니멀리즘을 포기한 책상


월요일 오전이 너무 바빠

일단 꽃병을 방치한다.


오후쯤

꽃병 자리도 잡고, 물도 채우고, 뽁뽁이도 벗기려 했는데

소리 소문 없이 향기가 먼저 소식을 퍼뜨린다.



"흐음~~~~ 이거 무슨 향기예요?"


"어디서 나는 향기예요?"


" 이거 무슨 냄새나는데?"


교무실이 난리다.


에잇. 안 되겠다. 만사 제쳐두고 이거 먼저 해야지!



좌,우에 드리는 선물



일단,

양옆 자리 선생님께 꽃 한 송이씩 선물한다.

(협찬: 다이소 꽃병,

천 원인가 이천 원인가)



메시지도 날린다.




하루 내내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손으로 스친다.


건조하고 팍팍한 일터는

그렇게 잠시나마 놀이터가 된다.




오늘의 교훈
1. 향기는 숨길 수 없구나
2. 꽃을 공공재로 만드니 훨씬 기쁘다
3. 스스로 절 받기도, 받고 나면 흡족하다
4. 일터를 놀이터로 만드는 건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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