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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Apr 26. 2021

바지 구멍처럼 살자

 

1.

"엄마!!!!"


'쿵!'


"으앙~~~~~~"



뒤돌아보니 준이가 나를 쫒아오다 제대로 엎어졌다.


깜짝 놀라 일으켜 세우고

다친 데가 없는지 살핀다.


바지에 구멍이 났다.


바지를 걷고 무릎을 살핀다.

양호하다.



아프지 않은지 바로 일어나 뛰어다닌다.


다행이다.





2.

집에 와 벗어놓은 바지를 보니

앞으로 못 입겠다 싶다.


많이 아까워하며 쓰레기통에 넣는다.


고맙다.


자신의 찢김을 통해

타인을 구했다.



구멍이 나기 전까지는

그냥 몇 개의 바지 중 하나였는데


구멍이 나고 나니

아이와 바지는 특별한 인연이 되었다.


'마워.

덕분에

아이의 무릎이 안녕했어'





3.

자는 아이의 무릎에 후시딘을 바르고 나오며

나의 바지는 누굴까... 생각한다.



몸살이 걸리도록 집밥을 풍성히 차려내시는 우리 어머님일까.


평생을 쌔빠지게 돈 벌어다 우리 엄마와 나와 동생에게 가져다준 우리 아빠일까.


가족일이라면 덮어놓고 헌신하는 내 남편일까.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바지 구멍이 되고 싶었는데'



조부모, 부모, 시부모, 직장동료, 친구는 고사하고

때로는 내 자식에게조차

구멍 나지 않으려고

자주 인색해진다.




구멍이 나서
더욱 아름다운 건데


구멍이 나서
비로소 연결되는 건데




쓰레기통 앞에 서서

바지 구멍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한다.



'래.

구멍처럼 살자고'





양쪽에 난 바지 구멍


 

덕분에 없다시피한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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