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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Aug 30. 2021

일곱번째날 - 돌봄을 받음(0830)

오늘의 나를 안아주세요 - 날마다 욕구 명상

돌봄을 받음



1. 일곱 번째 욕구 단어는 '돌봄을 받음'이었다.


'돌봄을 받음'




'돌봄을 받음'




'돌봄을 받음'




세 번 읽는데

그냥 몸과 마음이 훅~~~ 풀린다.



왜~

 뜨끈뜨끈한 반신욕탕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랄까.






2.

별생각 없이

핸드폰 사진첩을 켜고

몇 달 동안 찍은 사진을 훑는다.




'내가 돌봄을 받았던 순간이 언제였지?'


정말 별생각 없이.



그런데

나에 대해 몰랐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됨!




내 사랑의 언어'음식을 내 입에 대주는 거'였다!



'돌봄을 받았다'라고 고른 사진은 모두!

먹을 것을 받은 순간!


음식을 입에 대주면,

돌봄을 받았다고 느껴 버려~



단순하기 짝이 없다.

우리 집 5세 수준.

(젤리 주면 '엄마 사랑해' 바로 입에서 발사)



지금도 이 사진들을 보면

울컥한다.




고맙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뭐지.


나....


70대 아저씨 같은 사랑의 언어 같으니라고.

70대 아저씨. 쏘리요~~

 방금 명예 훼손했어요.

70대 아저씨도 요즘 마누라하고 같이 살려면  요리하지요





좀 세련돼 보이고 싶은데

사랑의 언어가 완전 구수~하다.







(더빙 화법으로 읽어야 함)


"브랙퍼스트는~엄~

찐~하게 내린 캡슐 coffee 한 잔에~베이글.. 하나면 충분해요.


런치는 간단히.. 엄...

디톡스 주스 and 닭가슴살?


저녁은 스킵할 때도 있고

허기가 느껴지면.. 엄... 고구마와 브로콜리 샐러드? 정말 이거면 되죠~

(feat. 어깨 으쓱 슈러그 동작)"



뭐 이렇게 말하면

뭔가 해 보일 것 같은데


내가 고른 사진은 그쪽 부류와는 전혀 아니올시다~다.


너무나 코리언스럽다.



수술 후 아빠한테 받아낸 밥상-90프로 사왔다지만 감동함




어느날 저녁 시어머님이 차려준 밥상




8월 중순 - 맘모톰 수술 후 시어머님이 주신 100핸드메이드 닭죽
옆자리 부장님이 아침에 간헐적으로 주는 직접 갈아서 만든 ABC 건강주스


만삭의 임산부 친구네 집에 방문했다가, 예상치 못하게 받은 밥상 ㅠ.ㅠ....






3.

한편!

나에 대해 몰랐던 사실 또 발견!




남편에게 돌봄을 받는다고 느낄 때는

사진을 훑어보니

남편이 저~~~ 멀리서

(최대한 나한테서 머얼리 머얼리)

애랑 놀고 있을 때다 ㅎㅎ




'딴 거 다 필요 없고

날 사랑한다면

 혼자 있게 해 줘'



온몸으로 말한다.



(근데 조건 ㅈㄴ 많음 ㅎㅎㅎ

 '딴 거 다 필요 없고'는 구라 중의 구라


근데 TV 틀지 말고

핸드폰 보여주지 말고

성의 있게

자연 속에 서면 더 좋고

몸으로 놀아주면 더 좋고)





그래서인가.


내 핸드폰 속에는

남편과 아이가 노는 사진이 많다.



이런 사진을 보면

마음과 몸이 훅... 이완된다.



편안하다.


행복하다.


반신욕 욕조 두 번째 잠수.





다른 게 아니라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남편에게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남편이 애랑 노는데,

내가 남편한테 사랑받는 것만 같다.







이 발견 또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


남편과의 관계가

너무 간접적이잖아?


그리고 너무 엄마스러워.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  여성이라면

아이와 상관없이 남편과 독립적으로 구축된 관계가 있어야 할 거 아니겠어?'


내 안의 Mr.Gray가 말한다.



내 애가 돌봄 받고 있는 것을 볼 때

내가 돌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거. 말이야.


그리고 그 장면을 볼 때

'내 가정이 안전하는구나'

직감적으로 안도하는 거. 말이야.



구석기시대 동굴 속

일부다처제에 속

두 번째 부인의 욕구랑 뭐가 다르냐.






그..




그.. 러고보니...





그러네..





4.


어쨌든 오늘도 욕구 명상을 하며

예상치 못하게

나에 대해 새로운 걸 많이 알았다.



요약하자면


나는 차려준 밥상에 취약하고
나는 내 자식이 돌봄 받을 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너무나 세련되어 맘에 쏘옥~ 들든,

사무치게 전형적이라 애써 부인하고 싶든,

어쨋든 나는 이렇다.



어쨌든

내가 돌봄 받는다고 느끼는 포인트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 내가 나에게든 남에게든

필요할 때 부탁만 하면 되겠다.




정말 위로가 필요한 날


아무도 나에게 밥해주지 않으면

한정식 집에 가서 당당히 한 상 시켜서 혼밥을 하겠다.

(음식이 남든지 말든지)




정말 너무 지치는 날

 


남편에게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아이랑 내가 보이는 곳에서 전심으로 즐겁게 놀아달라'라고 부탁을 하겠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지난 날의 사진이라도 보련다.



5.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사는 동안

다른 거 한다고 문어발식 확장할 것 없다.



내가 정말 누군지

그거 하나

제대로 알고 죽으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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