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작은 것이라도) 선물을 주는 것이 좋았다. 그 사람의 상황과 가장 어울리는 것을 고르는 고민의 과정이 좋았고, 상대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다.
며칠 전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선물을 줄까 생각했다.
고민만 하다가 어영부영 친구의 생일이 되었고그날 우연히 그 친구가 쓴 글을 보게 되었다. 받았던 생일 선물 목록을 감사함으로 적어 내려 간 것이었다.
순수한 의도로 쓰인 글인데 마음이 즉시 혼탁해졌다.
'나... 왜 이렇지?' 당황스러웠다.
'저 선물들보다 더 세게, 멋지게 해주어야 하나? 그럴 자신이 없는데...'
갑자기 마음과 재정에 부담이 확~! 됐다.
또, '저렇게 생일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은데, 나와 저 친구와의 관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별게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쪼다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이게 다 뭐람?
생일은 그 사람의 탄생을 정말로 축하하고, 그 축하하는 마음을 잘 전하면 되는 건데.
선물? 그게 뭐라고. 이렇게 심난하냔 말이다.
게다가 내가 하는 생각들이 앞으로 친구와 나와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 거면 또 말을 안 해~
알지도 못하는 친구의 지인과 나와의 비교, 그 지인이 해준 선물과 내가 할 선물의 비교라니.
나 참~ '생일 선물'의 본질에서 벗어나도 한참이나 벗어났다.
정말 별로다.
그래서 일부러 친구에게 선물을 안 해버렸다.
비교하고 경쟁하고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으로 주는 '선물'은 하지를 말자 싶어서.
안 하고 지나가는 마음도 그리 편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결단한 대로 살고 있는데서 오는 편안함과 내면의 힘이 있었다.
잘 모르겠는데 습관적으로 go! 하는 건 앞으로는 안하리라 다짐했으니.
의무감. 죄책감. 수치심. 이 삼종세트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는 건
의식하고 중단해보기로 결심했으니.
2. 선물에 얽힌 흑심
흑심
나는 아마도 선물을 주는 행위를 통해 '나 이렇게 뭔가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야~' 라는 나의 유능함? 너그러움? 괜찮음? 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또는, '나는 당신하고 찐 친구지'라는 인맥 다지기. 같은 걸 하고 싶었을까?
연예인들이 자주 하는, 생일 인스타 직찍 같은 거?
확인을 자꾸 하려 할 때는 '불안'해서 그런다는데 내가 혹시 불안한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주는 것'에 대한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영혼을 꿰뚫고, 더 이상 전처럼 살지 못하게 만든다.
(책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대충 기억나는 대로 내용을 적어본다)
"돕는 것, 주는 것을 통해 '자아'를 채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꽤나 관대해 보이고 이타적 이어 보이지만, 지극히 이기적이고 의존적인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주는 행위'를 통해서만 자신이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주는 것을 통해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 지속되기를 기대합니다. '주는 것'으로 상대방이 관계를 끊지 못하도록, 족쇄를 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직면하는 것을 회피합니다.
회피의 수단으로 타인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 글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바로 이해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그렇다는 증거였다.
항상. 은 아니더라도 많은 순간 내 선물의 동기는 이랬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뭘 주려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 왜 주려고 해?' '주는 행위를 통해 너의 무엇을 채우려고 해?'
그래서, 요즘에는 내 '선물'에 조금이라도 흑심이 껴있는 것 같을 때는 하려던 선물을 없던 것으로 하기도 하고,
마땅히 주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날 말고 다른 날 뜬금없이 '깨끗한 의도'로 주기도 한다.
이렇게 저렇게 선물에 대한 나의 태도를 '알아 차림 중'이었다.
그 와중에 비폭력대화 책에서 아래의 글을 만났다.
3. 나를 선물로 준다고?
"저에게 '우리 자신을 준다'는 말의 뜻은 이 순간 내 안에 생생한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 언제라도 상대방 안에 지금 무엇이 생동하여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입니까?
자신을 선물로 주는 것은 사랑의 구현입니다.
어떤 순간에라도 내 안에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솔직하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 외에 다른 의도 없이 자신을 드러내 보일 때 그것은 선물입니다.
비난이나 판단, 또는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니고, 단지 "내가 여기 이렇게 있어요. 그리고 나는 이것을 원해요"라고
그 순간 나의 취약한 점(vulnerability)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nvc와 영성》 18.19p)''
우와.............
우와.............
아름답다................
'자신'을 '선물'로 준대.
다른 의도가 하나도 없고 그저 '내 마음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라고 나를 드러내는 게 '자신을 선물로 주는 거'래.
우와.....
이 잡힐 듯 안 잡힐 듯. 아름다운 표현들에 나는 한참이나 매료되었다.
'나 너 좋아'라는 고백을 먼저 하면 얼마나 취약해지는지. 누구를 좋아해 본 사람이라면 알지 않는가?
직장에서 '두려워요. 걱정돼요. '라는 표현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나를 드러내면 취약해지고, 약한 걸 드러내면 더 얕잡아볼 것 같아서 센 척. 강한 척. 괜찮은 척. 척척척.
오늘도 아가씨가 안 맞게 된 옷을 몇 벌 나에게 주며 말했다. "복직하면, 일단 옷을 좀 세게 깔끔하게 입어야지 얕잡아보지 않아요"
"아니~ 일은 더럽게 못하면서 옷만 세게 입으면 더 욕먹어요~"
우린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킥킥댔지만, 둘 다 직장에서는 나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 안 된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 이런 정글 같은 세상에서 내가 취약해지더라도 내 느낌과 욕구를 온전히 표현한다는 것?
그건 대단한 용기고, 대단한 사랑이고, 대단한 선물이다.
우리는 표현하는 매 순간 세상이 어떠하든 '내쪽에서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상대에게 '나'라는 선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선물.
이런 선물이라면 매일이라도 모두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돈도 안 들어.
아참!
마음이 들지.
돈 쓰는 게 제일로 쉽고 (있기만 하다면) 마음 쓰는 게 제일로 어렵다.
4. 글을 선물로 드립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매우 오염되어 이제 '사랑'이라는 두 음절로는 제대로 된 사랑을 표현할 수 없게 되었다.
선물도 이와 같다.
선물이 너무 오염되어 선물로는 내 진심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가격을 생각하게 되고 품목을 생각하게 되고 내가 받은 걸 기억해서 어느 정도 맞추게 되고 남과 비교하게 되고 마음에 들까 걱정하게 된다.
그런 선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옵션으로 하고, 앞으로는 나를 선물로 주고 싶다.
나를 선물로 주는 데는 돈도 필요 없고 특별한 날도 필요 없다. 내 안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다른 의도 전혀 없이 솔직히 보여주는 것. 그래서 스스로 취약해지는 것만 각오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