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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나 Feb 10. 2021

굿바이 지난날! (2021.0209)

비폭력대화(nvc)를 삶으로 살아내기 -38화


1.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쓰는 것이다.

모두에게 시간은 24시간이다.

없고 말고 할 게 없다.






2. 꿈



침대에 누워 두 다리를 책상에 턱~ 하니 꼬아 올리고 있다.  
 
최신 음악을 틀어놓고
노트북으로는 채팅을 중간중간하며
'오늘은 뭘 하지?' 생각한다.

읽고 싶은 책을 좀 읽다가
생각나는 친구한테 전화를 건다.

" 이번 설에 너 언제 시간 되냐~?
거기서 볼까?

나?
뭐 할아버지네나 갔다 오겠지 뭐~
그래~ 콜~~~! 빠이~"

엄마가 밖에서 부른다.

"밥 먹어!"

"잠만~"

차려놓은 밥.
배 터지게 먹고 가끔은 설거지도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최신영화가 뭐가 있나 검색하다가
눈여겨보던 쇼핑몰에서 핫딜이 뜨자 얼른 들어가 본다.  



이상은 어제 꾼 꿈이다.
(꿈이었는지 회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 아빠 집에 얹혀살던 하숙생 신분이 그립다.


하려고만 하면 며칠 동안도

식음과 잠을 선택적으로 전폐하고

한 가지에 집중할 수도 있었던 시절이 그립다.
 







3. 며칠 만에 글을 쓰려고 앉는다




지금은 밤 10시.


며칠 동안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아니지.
고쳐 말해본다.


시간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시간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24시간이 있었는데
다른 곳에 시간을 썼다.


보통 브런치 글은 밤 11시-새벽 2시에 썼었다.
 40일 동안 그랬다.  
심야 외에 나머지 시간은 일상으로 꽉 차있다.
딱. 이 새벽 시간만
혼자 있고, 핸드폰도 울리지 않고. 아무도 집에서 날 부르지 않고,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다.


그런데 며칠 동안은
12시 정도가 되면 일부러 자버렸다.

40일간 잠을 안 자고 글을 썼더니 몸이 축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복직 D-10이다. 
이렇게는 글이든 삶이든
'지속 가능할 수가 없겠다' 싶었다.
실험적으로 아침형 인간 되기를 해봤다.


 
원래는 일찍 잔만큼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려했지만,
내가 일어나면 신기하게도 세상모르게 자고 있던 애가 "엄마~"하며 따라 일어났다.

그러면 그날 글 쓸 시간은 쫑난거다.
그리고 둘 다 괜히 피곤하기만 하다.
 

나. 글 쓰는 사람으로 계속 생존할 수 있을까?
 
현실이 피부로 확. 느껴졌다.

잠을 줄여가며 새벽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좀처럼 집중할 시간.

글을 쓸 시간을 낼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덜컥 겁이 났다.

슬펐다.
암담했다.
불안했다.

불혹이 다되어 내 것 같이 된, 글 쓰는 기쁨을
계속 밀고 나가고 싶은데
앞으로의 삶이 그렇게 시간을 순순히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한편 내 무의식은 과거를 그리워했다.


"밥 먹어!"라고 부르면 입에 밥만 넣고 돌아섰던 그 시절을.








한 가정을 유지/보수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것일까!?


기본적인 생활들.


아침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점심은 대충 때운다.
그리고 저녁을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상.

식사를 매끼 기획하고
집에 식거리가 떨어지지 않게 확인하고 채워 넣고
맛이 간 음식물들을 처분하고
반찬을 사서 먹든 배달해먹든,
어쨌든 배달도 기획은 해야 한다.
어른 메뉴와 함께 아이 메뉴도 듀얼로 기획한다.
  

진공청소기가 한다는 청소.
세탁기가 한다는 세탁.
건조기가 한다는 건조.
그리고 밥통이 한다는 밥.
에어 프라이기와 전자레인지가 한다는 조리.
그리고 집 앞에 분류해 놓기만 하면 가져간다는 분리수거.
통에 넣기만 하면 처리해준다는 음식물쓰레기.
결재만 하면 집 앞에 가져다준다는 물건들.  

아이가 커가면서는
매일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몰라 불안하고.

시시때때로 돌아오는 양가 경조사에.

전등을 갈거나
가구를 사들이거나
세면대가 막히거나 등 등
돌아가면서 온 집이 나를 부른다.

어느 하나 그냥 되는 일은 없구나.  



다~ 해준다는데~
이렇게 편리한 세상이 역사 이래 없다는데~
요즘 엄마들은 참 편하겠다는데~
기본적이라는데~
 
대체 뭐가 기본이라는 건지.

기본만 하는데도 하루가 꽉 찬다.

기본만 했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는 날은

나만 그런가?
내가 잘 살고 있는가?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옆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게다가,
예전의 나는 가정의 '팔 한쪽' 정도였다면
이제는 '허리'다.

뭐가 대단해서 허리가 된 게 아니다.

나이가 먹으며 엉겁결에 집안의 '허리'가 되었다.


위로는 부모님들이 있고
아래로는 아이들이 있다.


허리가 허투루 살면 바로 티가 난다.

하루 허투루 살면 내가 알고
이틀 허투루 살면 같이 사는 가족들이 안다.
삼일 허투루 살면 집 꼴이 쑥대밭이 된다.


지금까지!


기본적인 살림을 하면서 + 잠도 충분히 자면서 + 매일 글까지 쓸 수는 없다.


는 것을 깨닫게 되어
대단히 충격받은 한 주부의 푸념이었다.









 4. 지금은 애도할 때



비폭력대화를 가르쳐주셨던 이윤정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축하와 애도.
이 두 가지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라고.

우리 삶의 매 순간에
축하와 애도가 너무나 필요하다고.

인생에는 축하 거리도 많지만
애도 거리는 얼마나 많으냐고.

이루지 못한 꿈.
오해 상황.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들.
사랑하는 이들의 병. 죽음.

사람과 물건만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절의 상실  등.

그런데 이 애도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듯
무기력하고 힘이 쭉 빠져 있는 게 아니란다.

애도는
내가 지금 무엇을 슬퍼할지 분명히 알고

애써 미화하지 않고
인정하고 실컷 슬퍼하고
그러고 나서 그 상실에 대해
Good Bye!
하며 온 마음으로 흘려보내는 것.

이것이 애도란다.



오늘.
작정하고 애도해본다.


집에서 해주는 따신 밥,
집에서 해주는 빨래,
부모가 감당해주는 생활비,  
밥에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자유,
청소에 대한 거의 없다시피 했던 책임감,

내 꼴리는 대로 살아도
아래는 없었고,
옆도 가벼웠고 (있어봤자 애인, 시댁은 없음)
위로는 지원자가 있었

그 시절은 갔다.

세계 어떤 곳도 홀홀 단신으로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그 시절은 갔다.

Good Bye.


Good Bye.



이제 다시 그 시절은 안 온다.

그리워해도 안 온다.


나는 어찌 되었건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대고 서서
허리로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이 지나가버린 시절에 볼을 비비고
소중히 껴안는다.

다시는 못 볼 사람을 껴안아 주듯이.


이 시절은 끝이 났다.

확실히 인정하고,

똑바로 보고
그만큼 대놓고 슬퍼한다.





5. 이러니
 



20대. 그 시절에는 늘 '자유'가 화두였다.

부모님이 학비를 대주었는데도
과외를 평소에 세 개나 하며 내 주머니 돈을 챙긴 것은 뭔가 더 더 더 자유롭고 싶어서였다.


이제 내가 내 돈 벌어
내 살림을 꾸리고
내가 결혼하고 싶었던 사람이랑
내 애 낳고
방 한 칸이 아니라 내 집 전체를 활보하는 자유가 주어지니

얹혀살았던 시절을 애도하고 앉아있다.

게다가
결혼 초기에는 이 똑같은 것들이 '축하 거리'였잖아?



어머!

이 아이러니란!


갑자기 민망해진 마음을 부여잡고
애도와 축하는  쌍임을 깨닫는다.


내 가정을 내 맘대로 꾸릴 수 있는 자유를 축하하며
동시에
내 가정을 어떻게든 꾸려내야 하는 묵직한 삶을 애도한다.


막살 수 없는 허리로서의 존재감을 애도하며
팔 보다 더 큰 자율성과 독립성을 누릴 수 있는 허리의 신분을 축하한다.


대낮.

정신 맑은 시간에  여유 있게 글을 쓸 시간을 찾기 힘든 내 일상을 애도한다.
오늘은 그래도 12시 전에 뭔가를 쓸 수 있었던 것을 축하한다.

남편의 생일이었던 오늘.


릴레이처럼 이어졌던 집안일과

그 와중에도 엄청나게 맛있었던 와인 시음 시간을 껴넣을 여유를 챙겼던 것을 축하한다.






수건을 개키며 생일 기념 와인을 먼저 따서 마신다. 주부의 삶을 애도하고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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